“요한이 잡힌 후에 예수께서 갈릴래아에 오셔서 하느님의 복음을 전파하시며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 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하셨다”(마르 1,14-15)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30세에 이르기까지 우리와 똑같은 생활을 하셨다. 예수님은 평범한 한 사회인으로서 부모님을 모시고 나자렛에서 30년간 살으셨다. 그리고 그 후 3년간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시다가 돌아가셨다. 그래서 예수님의 생애를 크게 두 시기로 나누어 나자렛에서 사신 시기를 그분의 사생활이라 부르고 구세주로서 복음을 선포하신 시기를 공생활이라 부른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이 공생활 기간에 외치셨던 하느님의 기쁜 소식에 관해 알아보고자 한다. 예수님이 구세주로서 세상에 오시어 무엇을 알려 주셨고 가르쳐 주셨는가? 이것이 우리가 이제부터 알아 보려는 주 요점이다.
1. 예수님의 복음선포와 하느님 나라
복음서가 우리에게 알려 주는 바에 의하면 예수님은 30세쯤 되던 해 어느날 세례자 요한에게 가서 세례를 받으셨다(마태 3,13-17; 루가 3,1-22). 그 다음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서 40일간 재를 지키며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신다. 그 후로 예수님은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시작하신다. 예수님이 받으신 세례와 유혹은 따라서 복음을 선포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이 두 사건은 매우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그것을 논하지는 않겠다. 우리가 보고자 한 것은 나자렛에서 사시던 예수님이 이제 구세주로 활동하시기 시작하셨다는 점이다. 백성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신 예수님의 활동 시작은 바로 인류 구원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예수님이 가르치신 복음은 바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구약을 통해 인류에게 약속됐던(시편 2,109) 하느님의 왕권이 시작됐고 그 나라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세상을 다스리러 오신다. 온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리시고 만백성을 공정하게 다스리시리라”(시편 98,9). 이것이 메시아의 나라, 하느님의 나라의 모습이다. 하느님이 당신 아들을 보내어 악의 지배 하에 놓인 이 세상을 해방시키고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로 다스림으로써 하느님의 나라는 나타난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로서 그러한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당신으로 말미암아 시작됐고 사실 가까이 왔다는 것을 가르치신 것이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은 하느님의 왕권을 오해하여 현세적인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었다. 그들은 메시아가 오시면 그들의 적이었던 인근 이방인을 제압하고 자기들로 하여금 세상을 다스리게 하리라는 뜻으로 하느님의 왕권을 알아 듣고 고대했다. 따라서 예수님이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하자 그들은 적이 흥분했다. 왜냐하면 당시 그들을 지배하던 로마제국의 세력에서 해방되리라는 희망에서였다. 하지만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는 그러한 현세적이고 민족적 부흥이란 물질적인 성취가 아니었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의 왕권은 인간을 악의 굴레에서 해방시키고 구원하는 영신적인 하느님의 통치를 의미한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행적을 통해 드러난다. 예수님은 많은 기적을 통해 하느님의 권능이 인간을 해방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심으로써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또한 말씀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신비에 대해 가르쳐 주셨다.
2. 행적을 통해 보여주신 하느님 나라
예수님은 당신의 권능으로 수많은 병자와 불구자들을 고쳐 주시고 악령에 사로잡혀 고생하는 사람들을 해방시켜 주셨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성한 사람을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병들고 고생하는 인간을 구하시기 위함이었다(마르 2,17). 그래서 예수님은 당시 천대받던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며 그들에게 기쁨을 주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렇게 나타났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인간이 병들고 고생하는 것은 죄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불구자와 병고에 신음하는 사람들을 죄인으로 취급하며 멀리했다(요한 9,2-3).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을 모두 고쳐 주시어 죄를 사해 주시고 낫게 해 주셨다(마르 2,1-12). 이야말로 하느님의 손길이 인간에게 미친 것이다. 하느님 나라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행적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다음의 복음 말씀으로 잘 알 수 있다. 어느날 세례자 요한이 제자 둘을 보내어 예수께 이렇게 묻게 했다.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또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겠습니까?(루가 7,19). 이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려라. 소경이 보게 되고 절름발이가 제대로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다“(루가 7,22-23). 예수님의 이 대답은 구원이 시작됐으니 다른 구세주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 당신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이다. 이것은 이미 이사야 예언서 35장 5-6절에 예언된 하느님 나라의 모습과 일치한다. 예수님이 마귀를 쫓아내고 죄와 죽음과 병약함에 대해 자신의 권능을 쓰시어 고쳐 주심은, 이제 악의 지배가 끝나고 하느님의 다스리심이 시작됐다는 표시이다. ”나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성령의 힘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있다. 그러니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마태 12,28).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느님 나라는 바로 예수님 자신을 두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느님 나라가 언제 오겠느냐 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에서도 이 사실은 또 증명된다. ”하느님 나라가 오는 것을 눈으로 볼 수는 없다. 또 ‘보아라,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하고 말할 수도 없다. 하느님 나라는 너희들 가운데 있다“(루가 17,20).
이렇게 예수님은 행적으로써 현실적으로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시며 하느님 나라의 모습과 그 시작에 대해 가르치셨다. 예수님 자신에게서 나타난 하느님 나라, 예수님과 함께 시작된 이 하느님의 나라에 속함으로써 인간은 구원을 누린다. “그리스도는 하느님 나라를 지상에 건설하시고, 업적과 말씀으로 당신 아버지와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으며, 또한 죽음과 부활과 영광스러운 승천과 성령의 파견으로 당신의 사업을 완성하셨다. 홀로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간직하고 계신 그리스도는 왕으로부터 높이 달리시어 모든 이를 당신에게로 끌어당기신다”(계시 17)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신 예수님(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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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 잡힌 후에 예수께서 갈릴래아에 오셔서 하느님의 복음을 전파하시며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 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하셨다”(마르 1,14-15)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30세에 이르기까지 우리와 똑같은 생활을 하셨다. 예수님은 평범한 한 사회인으로서 부모님을 모시고 나자렛에서 30년간 살으셨다. 그리고 그 후 3년간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시다가 돌아가셨다. 그래서 예수님의 생애를 크게 두 시기로 나누어 나자렛에서 사신 시기를 그분의 사생활이라 부르고 구세주로서 복음을 선포하신 시기를 공생활이라 부른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이 공생활 기간에 외치셨던 하느님의 기쁜 소식에 관해 알아보고자 한다. 예수님이 구세주로서 세상에 오시어 무엇을 알려 주셨고 가르쳐 주셨는가? 이것이 우리가 이제부터 알아 보려는 주 요점이다.
1. 예수님의 복음선포와 하느님 나라
복음서가 우리에게 알려 주는 바에 의하면 예수님은 30세쯤 되던 해 어느날 세례자 요한에게 가서 세례를 받으셨다(마태 3,13-17; 루가 3,1-22). 그 다음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서 40일간 재를 지키며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신다. 그 후로 예수님은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시작하신다. 예수님이 받으신 세례와 유혹은 따라서 복음을 선포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이 두 사건은 매우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그것을 논하지는 않겠다. 우리가 보고자 한 것은 나자렛에서 사시던 예수님이 이제 구세주로 활동하시기 시작하셨다는 점이다. 백성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신 예수님의 활동 시작은 바로 인류 구원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예수님이 가르치신 복음은 바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구약을 통해 인류에게 약속됐던(시편 2,109) 하느님의 왕권이 시작됐고 그 나라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세상을 다스리러 오신다. 온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리시고 만백성을 공정하게 다스리시리라”(시편 98,9). 이것이 메시아의 나라, 하느님의 나라의 모습이다. 하느님이 당신 아들을 보내어 악의 지배 하에 놓인 이 세상을 해방시키고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로 다스림으로써 하느님의 나라는 나타난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로서 그러한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당신으로 말미암아 시작됐고 사실 가까이 왔다는 것을 가르치신 것이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은 하느님의 왕권을 오해하여 현세적인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었다. 그들은 메시아가 오시면 그들의 적이었던 인근 이방인을 제압하고 자기들로 하여금 세상을 다스리게 하리라는 뜻으로 하느님의 왕권을 알아 듣고 고대했다. 따라서 예수님이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하자 그들은 적이 흥분했다. 왜냐하면 당시 그들을 지배하던 로마제국의 세력에서 해방되리라는 희망에서였다. 하지만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는 그러한 현세적이고 민족적 부흥이란 물질적인 성취가 아니었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의 왕권은 인간을 악의 굴레에서 해방시키고 구원하는 영신적인 하느님의 통치를 의미한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행적을 통해 드러난다. 예수님은 많은 기적을 통해 하느님의 권능이 인간을 해방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심으로써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또한 말씀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신비에 대해 가르쳐 주셨다.
2. 행적을 통해 보여주신 하느님 나라
예수님은 당신의 권능으로 수많은 병자와 불구자들을 고쳐 주시고 악령에 사로잡혀 고생하는 사람들을 해방시켜 주셨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성한 사람을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병들고 고생하는 인간을 구하시기 위함이었다(마르 2,17). 그래서 예수님은 당시 천대받던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며 그들에게 기쁨을 주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렇게 나타났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인간이 병들고 고생하는 것은 죄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불구자와 병고에 신음하는 사람들을 죄인으로 취급하며 멀리했다(요한 9,2-3).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을 모두 고쳐 주시어 죄를 사해 주시고 낫게 해 주셨다(마르 2,1-12). 이야말로 하느님의 손길이 인간에게 미친 것이다. 하느님 나라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행적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다음의 복음 말씀으로 잘 알 수 있다. 어느날 세례자 요한이 제자 둘을 보내어 예수께 이렇게 묻게 했다.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또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겠습니까?(루가 7,19). 이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려라. 소경이 보게 되고 절름발이가 제대로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다“(루가 7,22-23). 예수님의 이 대답은 구원이 시작됐으니 다른 구세주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 당신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이다. 이것은 이미 이사야 예언서 35장 5-6절에 예언된 하느님 나라의 모습과 일치한다. 예수님이 마귀를 쫓아내고 죄와 죽음과 병약함에 대해 자신의 권능을 쓰시어 고쳐 주심은, 이제 악의 지배가 끝나고 하느님의 다스리심이 시작됐다는 표시이다. ”나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성령의 힘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있다. 그러니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마태 12,28).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느님 나라는 바로 예수님 자신을 두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느님 나라가 언제 오겠느냐 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에서도 이 사실은 또 증명된다. ”하느님 나라가 오는 것을 눈으로 볼 수는 없다. 또 ‘보아라,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하고 말할 수도 없다. 하느님 나라는 너희들 가운데 있다“(루가 17,20).
이렇게 예수님은 행적으로써 현실적으로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시며 하느님 나라의 모습과 그 시작에 대해 가르치셨다. 예수님 자신에게서 나타난 하느님 나라, 예수님과 함께 시작된 이 하느님의 나라에 속함으로써 인간은 구원을 누린다. “그리스도는 하느님 나라를 지상에 건설하시고, 업적과 말씀으로 당신 아버지와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으며, 또한 죽음과 부활과 영광스러운 승천과 성령의 파견으로 당신의 사업을 완성하셨다. 홀로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간직하고 계신 그리스도는 왕으로부터 높이 달리시어 모든 이를 당신에게로 끌어당기신다”(계시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