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하느님

구약의 하느님 이해는 체험에서 비롯된다. 계속적으로 장소를 이동하며 생활하는 그들은 자신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일을 가능케해 주는 미지의 세력을 체험하고 자연스럽게 이를 하느님으로 공경하였고, 그들의 능력을 벗어나는 만사를 하느님께 돌렸다. .
 출애굽 사건이 이스라엘의 신체험의 중심이라고 한다면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신체험의 시작으로 소개된다. 
 아브라함이 체험한 하느님은 토재신이 아니라 대인신이었으며, 인격신이었다.
떠돌이였던 그들을 보호해주고 촉복해준 실재로서의 하느님은 이방인들처럼 어
떤 장소의 신이 아니라 인간들의 신이었다. 그렇기에 어디든지 사람이 있는 곳
이면 존재하면서 권능을 드러내시며 인간과 함께 하시는 신이었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즉 선조들의 하느님은
‘길의 신’, ‘초원의신’으로 ‘엘’ 또는 ‘엘로힘’으로 불리웠다. 엘신은 이방인들
의 만신전에서 임금으로 군림하고 있는 엘신의 이미지의 영향을 받고 있다. 
 유일신을 고집하면서도 엘의 복수형 엘로힘을 사용한 의도는 야훼는 하나이면
서 너무나 위대하고 자신의 단수와 복수를 초월한 저 피안의 세계의 존재로서
그분의 다양한 신의 특성을 묘사하기 위해서 단수였던 엘을 엘로힘으로 바꿀 수
밖에 없었다.


  야훼라는 하느님은 모세로부터 이해된 하느님이다. 구약의 신 이해와 신에 대
한 신앙고백의 핵심적 발언은 불타는 가시덤불 사건(출애 3장)이라고 볼 수 있
다. 여기서 신의 정체를 묻는 모세와 하느님의 대화가 이루어진다.하느님은 내
가 있노라하는 이로다.하는 야훼의 명칭이 주어진다. 이어서 나는 너희 조상들
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이라는 설명이 보태어 지고 있다.(출애3,13-15)
이것은 야훼라는 이름을 결정적인 하느님의 이름으로 확립하고자 하는데 있다.
야훼라는 이름을 있다.또는 내가 있노라 라고 해석하는데 곧 이 야훼가 바로 선
조들의 하느님 ,아브라함의 하느님,이사악의 하느님,야곱의 하느님이라는 풀이
에서 이스라엘이 이제껏 엘 또는 엘로힘으로 불러오던 하느님과 이 야훼 하느님
이 동일한 분이라고 말함으로써 야훼라는 말의 이해를 더 심화시키자는 의도가
깊이 깔려있다.
 분명히 야훼라는 이름은 모세 이전에는 ,또 이스라엘 밖에서는 찾아 볼 수 없
다.야훼라는 이름은 바로 이스라엘 신앙이 이룩한 것이며 모세의 업적이다.


하느님의 이름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은
 1.위격적 존재자로서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시는 하느님이라는 것.
    (즉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대인신이었다는 것)
 2.엘신은 위격의 주체로서 아버지로서 피조물의 창조주로서,임금으로서 가장  
   높은 하느님이었다는 점. 즉 야훼는 모든 권세들을 초월하시는 하느님이라는 
   것
 3.약속의 신이었다는 것.
    인간에게 자신의 역사가 향해가고 있는 미래의 현실을 가르키고, 궁극적 의 
    의와 목표를 제시하며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해 살도록하고 그렇게 도와 주는 
    계약의 하느님이였다.


야훼라는 이름


 야훼라는 이름은 너무도 잘 알려진 현실을 다시 미지의 현실,숨은 현실,감추임
과 동시에 드러남이 있도록 해주는 이름으로 보인다.
 1.모세가 하느님의 이름을 물었을때 나는내가 있노라 하는 자이다.바꾸어 말하 
   면 나는 나다. 즉 이것은 거절의 표현으로 볼수 있다는 것.
 2.판관13,18에서 삼손의 아버지 마노악이 하느님의 이름을 물었을때 내이름이 
   비밀이거늘 어찌 너는 묻느냐?
 3.창세32,30에서 야곱이 하느님의 이름을 물었을때 내 이름은 왜 묻느냐?하는 
   부정적인 답만 받는다.


 여기서 나는 있다 라는 말은 나는 너희를 위해 있다. 즉 이스라엘을 위한 신의
현존을 의미한다고 본다. 야훼라는 이 말이 인간을 돕고 보호하시는 하느님이심
을 표명하고 실제로 이 가시덤불에서 계시된 하느님은 이어서 출애굽의 사건을
통해 그것을 입증한 것이다.
 그리고 이름의 개념에서 하느님이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은 사회관계 안으로 들
어섰다는 것을뜻한다. 따라서 야훼라는 이름은 하느님이 인간들에게 자신을 내
주어 불리울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것이며 이렇게 함으로써 인간들과의 공동존
재 안으로 들어서서 인간과 접할 수 있게되고 인간을 위해 있게 되었다는 것이
다.


모세 이후에서 왕정 이전 시기의 이스라엘의 하느님에 대한 생각을 보면
 여호수아가 세켐집회를 통해 야훼 신앙을 재확인하듯이
이제 유목민이었던 이스라엘 미족이 가나안이라는 일정한 지역에 정착함으로써
농경 생활로 전환함에 있어서 바알과 아스다롯이라는 풍산신을 무시할 수 없었
던 배경이 깔려 있다고 보겠다.성서의 작가들이 하느님을 질투하는 신으로 소개
하는 것이 바로 절충이나 타협할 수 없는 절대 유일신앙의 한 표현이라고 본다.


본격적인 유일신 사상은 바로 8세기 이후의 예언자들에 의해서 시도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있다.아브라함을 비롯한 족장들이 하느님을 유일한 신으로 믿
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막강한 앗시리아의 군대에 대해서 이스라엘은 저희 민족신의 한계성을 느꼈
다. 현재 이들이 처한 긴박한 상황에서는 야훼도 조금도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없는 신이었다.그러나 예언자들은(아모스나 호세아 이사야,제2이사야,요나등)현
제 벌어진 사건들 앞에서 야훼가 무력하다고 보기는 커녕 그 사건들은 이스라엘
의 죄에대한 야훼의 심판일 따름이라고 헤석하고 비이스라엘 민족들을 도구로
이용하신다는것을 말한다.
 결국 이스라엘을 핍박해 온 시리아인들이나 모두 그 기원과 역사가 바로 야훼
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그들의 신들도 결국 야훼께 속한것이라는 결론이 나
온다.
 그러므로 이러한 예언자들로 말미암아 나이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라는 신조는
이스라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온 우주에도 해당되는 신앙 고백으
로 본격적인 유일신 신앙이 시작된다는 점에서 이스라엘의 신학사상에 있어서
중대한 발전을 보여주는 셈이다.


 지혜문학은 하느님이 인간과 자연의 창조주 이심을 고백하면서 창조활동에 있
어서 어떤 인격화된 말씀, 또는 지혜하는 중재자를 언급하면서 신약의 제2 위격
인 ‘말씀'(Logos)에 대한 사상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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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하느님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구약의 하느님 이해는 체험에서 비롯된다. 계속적으로 장소를 이동하며 생활하는 그들은 자신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일을 가능케해 주는 미지의 세력을 체험하고 자연스럽게 이를 하느님으로 공경하였고, 그들의 능력을 벗어나는 만사를 하느님께 돌렸다. .
     출애굽 사건이 이스라엘의 신체험의 중심이라고 한다면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신체험의 시작으로 소개된다. 
     아브라함이 체험한 하느님은 토재신이 아니라 대인신이었으며, 인격신이었다.
    떠돌이였던 그들을 보호해주고 촉복해준 실재로서의 하느님은 이방인들처럼 어
    떤 장소의 신이 아니라 인간들의 신이었다. 그렇기에 어디든지 사람이 있는 곳
    이면 존재하면서 권능을 드러내시며 인간과 함께 하시는 신이었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즉 선조들의 하느님은
    ‘길의 신’, ‘초원의신’으로 ‘엘’ 또는 ‘엘로힘’으로 불리웠다. 엘신은 이방인들
    의 만신전에서 임금으로 군림하고 있는 엘신의 이미지의 영향을 받고 있다. 
     유일신을 고집하면서도 엘의 복수형 엘로힘을 사용한 의도는 야훼는 하나이면
    서 너무나 위대하고 자신의 단수와 복수를 초월한 저 피안의 세계의 존재로서
    그분의 다양한 신의 특성을 묘사하기 위해서 단수였던 엘을 엘로힘으로 바꿀 수
    밖에 없었다.

      야훼라는 하느님은 모세로부터 이해된 하느님이다. 구약의 신 이해와 신에 대
    한 신앙고백의 핵심적 발언은 불타는 가시덤불 사건(출애 3장)이라고 볼 수 있
    다. 여기서 신의 정체를 묻는 모세와 하느님의 대화가 이루어진다.하느님은 내
    가 있노라하는 이로다.하는 야훼의 명칭이 주어진다. 이어서 나는 너희 조상들
    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이라는 설명이 보태어 지고 있다.(출애3,13-15)
    이것은 야훼라는 이름을 결정적인 하느님의 이름으로 확립하고자 하는데 있다.
    야훼라는 이름을 있다.또는 내가 있노라 라고 해석하는데 곧 이 야훼가 바로 선
    조들의 하느님 ,아브라함의 하느님,이사악의 하느님,야곱의 하느님이라는 풀이
    에서 이스라엘이 이제껏 엘 또는 엘로힘으로 불러오던 하느님과 이 야훼 하느님
    이 동일한 분이라고 말함으로써 야훼라는 말의 이해를 더 심화시키자는 의도가
    깊이 깔려있다.
     분명히 야훼라는 이름은 모세 이전에는 ,또 이스라엘 밖에서는 찾아 볼 수 없
    다.야훼라는 이름은 바로 이스라엘 신앙이 이룩한 것이며 모세의 업적이다.

    하느님의 이름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은
     1.위격적 존재자로서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시는 하느님이라는 것.
        (즉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대인신이었다는 것)
     2.엘신은 위격의 주체로서 아버지로서 피조물의 창조주로서,임금으로서 가장  
       높은 하느님이었다는 점. 즉 야훼는 모든 권세들을 초월하시는 하느님이라는 
       것
     3.약속의 신이었다는 것.
        인간에게 자신의 역사가 향해가고 있는 미래의 현실을 가르키고, 궁극적 의 
        의와 목표를 제시하며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해 살도록하고 그렇게 도와 주는 
        계약의 하느님이였다.

    야훼라는 이름

     야훼라는 이름은 너무도 잘 알려진 현실을 다시 미지의 현실,숨은 현실,감추임
    과 동시에 드러남이 있도록 해주는 이름으로 보인다.
     1.모세가 하느님의 이름을 물었을때 나는내가 있노라 하는 자이다.바꾸어 말하 
       면 나는 나다. 즉 이것은 거절의 표현으로 볼수 있다는 것.
     2.판관13,18에서 삼손의 아버지 마노악이 하느님의 이름을 물었을때 내이름이 
       비밀이거늘 어찌 너는 묻느냐?
     3.창세32,30에서 야곱이 하느님의 이름을 물었을때 내 이름은 왜 묻느냐?하는 
       부정적인 답만 받는다.

     여기서 나는 있다 라는 말은 나는 너희를 위해 있다. 즉 이스라엘을 위한 신의
    현존을 의미한다고 본다. 야훼라는 이 말이 인간을 돕고 보호하시는 하느님이심
    을 표명하고 실제로 이 가시덤불에서 계시된 하느님은 이어서 출애굽의 사건을
    통해 그것을 입증한 것이다.
     그리고 이름의 개념에서 하느님이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은 사회관계 안으로 들
    어섰다는 것을뜻한다. 따라서 야훼라는 이름은 하느님이 인간들에게 자신을 내
    주어 불리울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것이며 이렇게 함으로써 인간들과의 공동존
    재 안으로 들어서서 인간과 접할 수 있게되고 인간을 위해 있게 되었다는 것이
    다.

    모세 이후에서 왕정 이전 시기의 이스라엘의 하느님에 대한 생각을 보면
     여호수아가 세켐집회를 통해 야훼 신앙을 재확인하듯이
    이제 유목민이었던 이스라엘 미족이 가나안이라는 일정한 지역에 정착함으로써
    농경 생활로 전환함에 있어서 바알과 아스다롯이라는 풍산신을 무시할 수 없었
    던 배경이 깔려 있다고 보겠다.성서의 작가들이 하느님을 질투하는 신으로 소개
    하는 것이 바로 절충이나 타협할 수 없는 절대 유일신앙의 한 표현이라고 본다.

    본격적인 유일신 사상은 바로 8세기 이후의 예언자들에 의해서 시도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있다.아브라함을 비롯한 족장들이 하느님을 유일한 신으로 믿
    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막강한 앗시리아의 군대에 대해서 이스라엘은 저희 민족신의 한계성을 느꼈
    다. 현재 이들이 처한 긴박한 상황에서는 야훼도 조금도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없는 신이었다.그러나 예언자들은(아모스나 호세아 이사야,제2이사야,요나등)현
    제 벌어진 사건들 앞에서 야훼가 무력하다고 보기는 커녕 그 사건들은 이스라엘
    의 죄에대한 야훼의 심판일 따름이라고 헤석하고 비이스라엘 민족들을 도구로
    이용하신다는것을 말한다.
     결국 이스라엘을 핍박해 온 시리아인들이나 모두 그 기원과 역사가 바로 야훼
    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그들의 신들도 결국 야훼께 속한것이라는 결론이 나
    온다.
     그러므로 이러한 예언자들로 말미암아 나이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라는 신조는
    이스라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온 우주에도 해당되는 신앙 고백으
    로 본격적인 유일신 신앙이 시작된다는 점에서 이스라엘의 신학사상에 있어서
    중대한 발전을 보여주는 셈이다.

     지혜문학은 하느님이 인간과 자연의 창조주 이심을 고백하면서 창조활동에 있
    어서 어떤 인격화된 말씀, 또는 지혜하는 중재자를 언급하면서 신약의 제2 위격
    인 ‘말씀'(Logos)에 대한 사상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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