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드 푸코는 트라피스트회 수도자로서
시리아에 있는 가장 가난한
아크베 트라피스트 수도원을 택했습니다.
어느날 그ㅢ 장상이 그를
수도원 가까이에 있던 상가에
보내 밤샘을 하도록 했습니다.
죽은 사람은 가난한 집에서 사망한
아랍인 그리스도 신자였습니다.
샤를 수사는,
그 망인의 오두막에 도착해서
시신 옆에서 굶은 자녀들과
그 다음날 먹을 빵에 대한
아무런 대책없이 멍하니 맥을 놓고 있는
과부의 진짜 가난을 목격했을 때,
트라피스트를 나와 전혀 다른
수도생활의 영역을 찾아 나서야
했을 만큼 영적 위기를 맞았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본받기로 한 우리가
이 사람들이 당하고 있는 시련과 고통,
불안과 가난에서 너무 멀리 있습니다."
"나는 더 이상 너무나 안정된 수도원을 원치 않습니다.
나는 다음날 일거리와 빵을 찾을지 불확실하고
세상의 고통에 온 존재로 참여하는 가난한
노동자의 오두막집처럼 작은 수도원을 원합니다."
"오! 예수님, 나는 당신이 우리 가운데
오셨을 때 하신 것처럼 나를 낮추고 죽일 수 있는
나자렛의 당신 집과 같은 수도원을 원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트라피스트회를
나와 사하라의 베니 압베스(Beni Abbes>에
최초로 자신의 수도회를 만들고 그 뒤
타만라세트(Tanmanrasset)에 수도회를 건설합니다.
그리고 그는 거기서 투아레그족에 의해 학살당하게 됩니다.
그 수도단체는 나자렛의 집을 본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길을 따라 가는 중에 만나게 되는
수많은 짐승들 가운데 하나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관상생활을 거부했습니까?
열렬히 타오르는 기도의
영을 악화시켰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갔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이 가는 길과 같은
그 세상의 길을 따라가는 관상생활을
살기를 받아들였습니다.
훨씬 더 힘든 그 길을 말입니다!
까를로 까레또의 매일 묵상 중에서
♬Abide with me - Hazell- Anthony W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