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성서에 나타난 하느님 체험-(아)

3.2.3. 종속론적 경향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하느님은 어떤 분인가, 아버지와 로고스/아들과의 관계은 어떠한가, 예수에게서 인성과 신성의 관계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아주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3세기 말부터 시작된 이 신학 논쟁은 모두가 모두를 반대하는 다툼이라고까지 표현할만큼 격렬하고 복잡한 양성을 보였다.
단원론과 종속론은 기본경향에서는 공통적이다. 즉 하느님의 유일신론적이고 절대적인 초월을 보전(保全)하고자 한 점은 공통적이었다. 종속론자들은 성자와 성령을 중간 존재로서 하느님 밑에 종속되어 있다고 봄으로써 ‘지고하신’ 하느님의 초월을 구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단원론은 이 중간 존재를 알지 못하였다. 즉 단원론은 어떤 관계로도 이완되지 않는, 하느님의 당신 자신과의 극도의 동일성을 주창하였다.
큰 대결은 4세기에 알렉산드리아의 사제 아리우스(Arius, +336)와의 논쟁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아리우스는 기원후 260년경 리비아(Lybia)에서 출생했고, 오리게네스의 신학적 후예인 안티오키아의 루치아노의 제자였다. 아리우스는 중기 플라톤 철학을 근거로 최고의 唯一者인 신은 근접할 수 없는 초월성을 지니고 그래서 인식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로고스/아들은 진정한 신이라고 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이런 초월성을 지닌 신으로서는 결코 인간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리우스는 315년경부터 한편으로는 신적인 말씀, 로고스는 항상 하느님과 함께 있다, 하느님의 특성을 지닌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로고스는 아버지 하느님과 같이 영원하지 않다, 그는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아버지로부터 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자신의 존재를 직접 받았지만 그러나 아버지와 같은 본체에서가 아니라 무에서 지음을 받았다, 그러므로 하느님 안에서 로고스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이 있었다고 가르쳤다. 여기서 로고스는 피조물 중의 으뜸이요 가장 탁월한 피조물인 동시에 창조사업의 중개자로, 하느님과 세상의 중간 존재, 일종의 제2급신으로 파악되었다. 로고스는 하느님의 아들로 받아들여지기 위한 시험을 받기 위해서 인간이 되어야 했다. 로고스는 인간 나자렛 예수의 영혼의 자리를 차지하였고, 그래서 예수는 인간의 영혼이 없었다. 예수는 자신의 생애동안 윤리적으로 진보하여 완벽하게 되었고 그래서 합당하게 “하느님”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았다. 그래서 아리우스는 예수가 아들, 그리스도로서 아버지에게 종속되어 있다는 성서적 표현들을 상당히 강조하였다. 이렇게 볼 때 아리우스에게서는 철학자들의 신이 성서의 하느님보다 우위를 차지한 것이 분명하다. “그의 신학은 그리스도교의 헬라화를 의미하며 이 헬레니즘화는 사실 심각했다”. 발터 카스퍼, 『예수 그리스도』, 314.


3.2.4. 단원론에 반대한 교회 최초의 신학

라틴 교회에서는 두 신학자가 단원론과의 투쟁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떼르뚤리아노와 노바씨아노(Navatianus, +260년경).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떼르뚤리아노는 서방에서 최초로 삼위일체 신학을 시도한 인물이라고 하겠다. 그는 단원론자 프락세아스를 반대해서 쓴 책에서 여러 가지 철학적 개념을 삼위일체 신학에 도입하였다. 그는 하느님의 본체(본질)을 “substantia”라고 부르면서 하느님의 영적인 본체는 오직 하나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였다. 이 영적인 유일성은 구원사에서 -“구세경륜적”-에서 삼중으로 계시되었다. 이것은 떼루뚤이아노에게 양태론(modalism)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하느님 계시의 순서는 단지 탈(prosopon)을 바꾸는 식이 아니라 하느님 자신에게, 하느님 內在的(immanent)으로도 어떤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떼르뚤리아노는 하느님 안의 삼중의 구분을표상들을 통해서 분명하게 표현하려고 시도하였다. 즉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은 태양과 태양광선, 그리고 태양광선의 날카로움과 같은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떼르뚤리아노는 성서에 나타난 셋을 “personae”(위격들)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러나 셋이 모두 같은 순위에 있다고 보지는 않았다. 아버지의 “위격”은 창조와 인간에 관련하지 않고서도 생각될 수 있으나, 아들과 영은 하느님의 세상에 대한 관계 때문에 하나의 본체에서 단계나 형태(status)로서 나오게 되었다. 떼르뚤리아노가 사용한 삼위일체의 표현은 나중의 신학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한분이신 하느님의 세 “위격”(tres personae unius divinitatis).
로마의 노바씨아노는 자신의 저서 “De Trinitate”에서 단원론자들에 대항하여서 삼위일체 신학을 전반적으로 전개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는 떼르뚤리아노처럼 하느님의 영적인 유일성에서 출발하지 않고 그리스 철학과 같이 하느님의 순수성과 세상에 대한 초월성에서 출발한다. 신적인 말씀(그는 이를 “sermo”라고 불렀다)은 세상에로의 파견과 결부되어 유래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고 불변하는 하느님 안의 내적인 과정이라고 보았다. 즉 하느님은 내재적으로, 무시간적으로 말씀을 하시고 이를 통해서 영원하고 시작이 없으며 비가시적인 하느님의 본체는 이 본체를 드러내는 당신 자신의 말씀과 관계(relatio)를 갖게 된다. 이렇게 해서 노바씨아노는 하느님의 내적인 구분의 특징에 이르게 된다. 즉 아버지는 출산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특징은 출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서 아들 혹은 말씀은 출산되었다. 그러나 이로써 하느님의 본체에 무슨 차이가 생긴 것은 아니다: 유일하고 분리될 수 없는 하느님의 본체가 아버지와 아들 모두에게 공통으로 해당되고 이렇게 해서 신적인 근본은 손상되지 않는다.
삼위일체 신학과 관련에서 동방에서는 알렉산드리아의 신학자들을 꼽을 수 있는데, 그중에서 으뜸은 오리게네스(+ 253/254년경)이다. 그는 조직적으로 삼위일체 신학을 전개하려고 노력하던 신학자중에서 제일 먼저 성령을 분명하게 하느님의 내적인 삼중성에 포함시켰다. 그에 의하면, 아버지, 아들, 성령은 본질상 동일하지만, 일종의 종속성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적인 로고스는 절대적인 신적인 원천인 아버지로부터 流出(emanatio)되었고, 성령은 아들로부터 유래되었기에 그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셋이 서로 다른 것은 로고스/아들과 성령의 임무가 서로 다른 데에서 기인한다.

3.2.5. 381년까지의 삼위일체에 대한 교회 교도권의 가르침

로마-가톨릭 교회의 신학사에서는 중대한 문제에 관련해서 항상 로마의 주교의 입장 표명과 전체 교회를 대표하는 보편 공의회의 결정에 주목하여 왔다. 삼위일체에 대한 로마 주교들의 초기의 입장 표명은 상세한 원문 채로 보존되어 있지는 않다. 그리스인 테오도투스의 단원론을 단죄한 교황 빅토리오(Victiorius, +198) 1세의 서한과 사벨리우스에 대해서 반대한 교황 칼리스토(Callistus, +222) 1세의 견해가 알려져 있을 뿐이다. 칼리스토 교황은 고유한 삼위일체 이해를 제시하였다고 하는데, 이에 따르면 성부와 성자가 본질상 동일하지만 상이한 주체이기에 (단원론적 “성부수난설”의 추종자들이 주장하듯이)성부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교황 디오니시오(Dionysius, +268)가 양태적 단성론자들과 三神論(Tritheism)에 반대해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디오니시오에게 보낸 편지가 부분적으로 보존되어 있다(DS 112-115). 편지에서 교황은 유일하고 동일한 하느님의 본질, 하느님 안의 세 “위격”의 상이함 그리고 동시에 그 위격들이 동등한 등급을 고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4세기에 아리우스는 자신의 주교인 알렉산드리아의 주교를 그리스도론에 관련해서 공격하면서 분쟁을 일으켰다. 여러 차례의 지역 시노드는 이 분쟁을 끝내기 위해서 노력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두 시노드는 아리우스를 편들어서, 한 시노드는 그를 반대해서 결정을 내렸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이렇게 공개적으로 진행되는 분쟁으로 인해서 자신의 제국의 일치가 깨질 것을 염려하였다. 그래서 325년 소아시아의 도시 니체아에서 제국 공의회를 소집하였는데, 이는 최초의 보편 공의회로 간주된다. 황제가 의장이 되었고 대부분 동방의 그리스 지역에서 온 300여명의 주교들 참석하였다. 아리우스파를 대표하는 17명의 주교들도 참석하였다. 그러나 반 아리우스적 다수의 견해가 관철되었다. 그들은 이미 이전에 시리아/팔레스티나 지역에서 형성된 체사리아 신경(信經)의 두 번째 항목에 아리우스를 반대하는 표현을 삽입하여서 재수용하면서 아리우스파를 단죄하였다. 이 신경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한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곧 하느님의 아들을 믿습니다. 그분은 아버지, 곧 아버지의 본질로부터 낳음을 받으신 외아드님이시며 하느님으로부터의 하느님, 빛으로부터의 빛, 참 하느님으로부터의 참 하느님이시요, 낳음을 받으셨지 지음을 받지 않으셨으며 성부와는 동일본질이십니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 위의 모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분은 우리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고 우리 구원을 위하여 내려오사 살을 입으시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DS125). 이 신경에서 핵심되는 말마디는 “homoousios”(동일본질)이란 단어이다. 그리고 아리우스파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단죄하였다. “그러나 하느님의 아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거나, 그가 태어나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거나, 그가 무(無)로부터 혹은 다른 실체(hypostasis: substantia)나 본질(ousia: essentia)로부터 생겨났다거나, 하느님의 아들이 변화될 수 있다거나 영원하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은 공번되고 사도적인 교회에서 제외된다”(DS 126).
아리우스파는 니체아 신경에 동의하였지만 내적으로는 완전히 수용하지 못하고 그 신경을 자신들의 주장에 맞게 해석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공의회는 하느님의 내적인 삶에 대해서 어떻게 정확하게 생각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공의회는 단지 잘못된 가르침을 방어하는 경계표만을 설정한 것이다. 삼신론에 반대해서 하느님의 유일성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아리우스파의 종속론과 사벨리아니즘에 반대해서 성서에 근거를 두고서 아들의 신성을 고수하였다. 아들이 아버지로터 유래하는 것을 “낳음을 받았다”는 말로서 그리고 빛의 표상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하느님의 “구세경륜적” 삼위일체, 즉 구원역사에서 삼위의 체험은 같은 명확성으로 말해지지는 않았다. “예수의 참된 하느님임을 긍정하는 이 존재론적 언표(言表)들의 근본적 의도는 다른 것이 아니다. 아드님은 피조물 측에 속하지 않고 하느님 측에 속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드님은 지음을 받지 않고 낳음을 받았으며 성부와는 동일본질(homoousios)인 것이다. 발렌티노계의 영지주의의 이른바 유출설(流出說)에서 유래하는 이 homoousios라는 개념은 니체아에서는 철학적이요 전문적인 의미로 알아듣지 않았다. 성서적 신표상이 희랍적 본질개념으로 덮어씌워져서는 안되었던 것이다. 이 개념은 그저, 아드님이 그 본성에 따라 하느님이시고 성부와는 동일한 존재층(存在層)에 서 계시다는 것을 밝히자는 것이었다. 따라서 아드님을 만나는 사람은 바로 성부 자신을 만나는 것이다”. W.카스퍼, 『예수 그리스도』, 315-316.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아리우스파의 형식적인 굴복이 있은 후에 공의회의 결정에 대해 토론과 해석이 계속되는 것을 용인하였다. 아리우스파는 그 이후 여러 부류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그 하나는 니체아 공의회에 반대해서 아들은 아버지와 비슷하지 않다는 부류(“anhomoios”파)이고 다른 하나는 성서의 진술을 위해서 모든 사변(思辯)을 포기하고자 하면서 “성서에 따라서” 아들은 아버지와 비슷하다고 주장하는 부류(“homoios”파),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들은 무에서 시간적으로 창조되었다는 아리우스적인 견해를 거부하였지만 엄격한 “homoousios”도 받아들이지도 않고 아들은 아버지와 모든 점에서 비슷하다(homoiousios)고 표현하는 중도적 아리우스파(semiarianism)로 나뉘었다. 주교들 중에서도 마지막 견해를 추종하는 이들이 많았고 황제도 이를 선호하였다. 이렇게 된 데에는 homoousios라는 개념의 불확실성에도 원인이 있었다. 사실상 많은 이들이 성부와 성자 사이의 구분이 이 개념으로 보장되지 않는다고 보았으며 그래서 이 개념안에 일종의 양태설(樣態說)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을 두게 되었다. 공의회가 hypostasis와 ousia라는 말을 구분없이 다 같이 본질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것도 이런 의심을 강하게 하였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적지 않은 주교들이 중도적 아리우스파를 추종하였던 것이다.
니체아 공의회에서 정신적 주도 역할을 담당하였고 그 후에도 공의회의 가르침을 수호하는 데에는 앞장섰던 사람은 부제요 후에 주교가 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아타나시오(Athanasius, +373)였는데, 그는 이 때문에 황제로부터 여러 차례 유배를 당했다. 아타나시오가 가장 중요시한 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본질 동일성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셋의 구분에 대해서는 분명하지가 않았다. 즉 그리스어를 사용하던 그에게 서방에서 떼르뚤리아노가 꺼리낌없이 사용하였던 “위격”(persona)과 같은 말마디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위격에 상응하는 희랍어 “prosopon”를 사용하지 않으려 했는데, 왜냐하면 그는 이 단어에 사벨리아니즘이 담겨있다고 간주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결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하는 데에 결정적으로 이바지 한 사람들이 곧 카파도치아의 세 교부 곧 체사리아의 바실리오(Basilius, +379),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오(Gregorius, +390), 그리고 닛사의 그레고리오(+395)였다. 이들은 처음으로 (하느님 안에서) 단일한 본질(ousia)과 세위격(hypostasis)을 구별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의 영원한 하느님의 본질(ousia)은 파악할 수 없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이 유일한 본질은 하느님 내부에서 아버지, 아들, 영이라는 이해할 수 있는 삼성(三性)으로 생동적으로 전개된다. 이 셋은 위격적, 말하자면 고유한 특성을 지닌다. 즉 성부에게는 태어나지 않음, 성자에게는 태어남, 성령에게는 發出됨이라는 특성이 주어진다. 본질에 있어서 셋은 하나, 다시 말해서 아버지의 무한한 본질 안에 하나이고, 그로부터 본질을 잃음이 없이 아들과 성령이 유래한다. 그러므로 셋의 차이는 단지 發出됨과 發出되지 않음에만 있을 뿐이다. 이렇게 기원을 중심으로 해서 서로 연관된 관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유일한 신적 본질은 세 위격 안에서 생활한다. 카파도치아의 교부들이 출발점으로 삼는 성서의 증언에서 하느님이 자신을 계시하는 중에 삼중으로 구분되어서 인식되는데, 그러나 삼중의 계시를 통해서 하느님의 유일한 본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신앙의 묵상을 통해서 “밖으로” 나타난 하느님의 이러한 구분은 “내적인” 위격적 구분, (이 구분은 세가지 본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에 상응하는 것이라는 것을 점차로 깨닫게 된다. 즉 구세경륜적 삼위일체(救世經綸的 三位一體, Trinitas oeconomica)는 내재적 삼위일체(內在的 三位一體, Trinitas immanens)와 단일하다는 것이다. 내재적 삼위일체란 구체적 인간 역사와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영원으로부터 내재하는 천주성삼의 실재를 지칭하고, 구원경륜적 삼위일체란 세계와 역사 안에서 역사(役事)하시는 삼위의 실재를 가리킨다.
하느님 안의 세 hypostasis을 같은 hypostasis(인격)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는 인간 셋과 비교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인간 셋은 모든 인간에게 공동적인 하나의 인성, 인간임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 인성은 세 인간에게서 각 사람의 구체적인 인격을 통해서 즉 저마다 고유한 표시와 특성들의 총체를 통해서 표현되고, 각기의 고유한 의식(意識)을 통해서 유지된다. 하지만 하느님은 이와 같지는 않다고 카파도치아의 교부들을 가르친다. 하느님에게서 위격은 다양하고 구체적이며 고유한 특징들을 지니는 것이 아니고 단지 한가지 특징만 있을 뿐이다. 즉 아버지에게는 근원임, 아들에게는 태어남, 성령에게는 발출됨이라는 특징만 있을 뿐이다. 이 특징만으로는 셋이 각자 자립적인 주체로 형성되기 “부족”하다. 물론 하느님의 본질 혹은 신성은 세 위격과는 구분된 “고유한” 무엇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하느님의 본질은 성자와 성령이 전달을 통해서 나누임없이 참여하는 아버지의 본질을 말한다.
카파도치아의 교부들은 성령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즉 그들은 아리아니즘을 바탕으로 종속론적 견해를 성령에게 철저히 적용한 신학을 거슬러 투쟁하였다. 성령의 참된 신성에 시비를 걸던 이들 “마체도니아파”(Macedonians) 4세기 중반의 콘스탄티노플의 주교 마체도니우스(Macedonius, +364)의 이름에서 유래된 명칭인데, 실상 마체도니우스는 그런 주장을 내세우지 않았다.
, 혹은 “성령배격론자”(pneumatomachos)라고 불렀다. 이들에 따르면 성령은 히브 1,14에 의거해서 천사와 같은 유형의 중간 존재로 파악된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시종으로서 권력과 능력 면에서 그리스도의 밑에 종속된다는 것이다. 카파도치아의 교부들은 이들에 반대해서 니체아 공의회의 표현 “homoousios”를 성령에게 적용하였다. 아들과 영은 형제라고 주장하는 아리아니즘에 반대해서 닛사의 그레고리오는 영은 아들을 통해서 아버지로부터 유래한다고 대답하였다.
아리아니즘이 계속됨으로써 교회와 국가의 일치가 위협을 받자 테오도시오 황제는 381년에 콘스탄틴노플에서 다시금 공의회를 소집한다. 여기에는 카파도치아의 교부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오와 닛사의 그레고리고를 포함해서 150명의 동방 지역의 주교들이 참석하였다. 제2차 보편공의회로 인정되는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우선 니체아 신앙고백을 확인하였는데, 그렇다고 무조건 글자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생동적으로 이루어졌다. “이것은 공의회가 니체아의 교리정식 중에서 오해될 수 있고 또한 그 동안에 발전한 신학에 비추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난 부분을 변경하는 데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도 잘 드러난다. ‘성부의 본질로부터 낳음을 받으셨다’(DS 150)는 니체아의 표현이 탈락되었다”. W.카스퍼, 『예수 그리스도』, 318.
또한 니체아의 그리스도론을 구세경륜적 관점에서 더 보충되었다. “또한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음을 믿나이다.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저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수난하시고 묻히셨으며…”. 그리고 성령의 참된 신성을 부정하던 이들을 거슬러서 성령의 신성을 분명하게 고백하였다. 니체아에서는 단순히 “성령의 믿나이다”만 고백하였던 것이 콘스탄티노플에서는: “또한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나이다.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영광과 흠숭을 받으시며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나이다”(Et in Spiritum Sanctum, Dominum et vivificantem, qui ex Patre Filioque procedit, qui cum Patre et Filio simul adoratur et conglorificatur, qui locutus est per prophetas: DS 150). 이 신앙고백에서 하느님께 해당되는 술어(주님, 생명을 주시는 분)가 성령에게 적용되었고, 성령은 아버지로부터 발하시는 분으로서 하느님께만 해당되는 영광과 흠숭을 받을 권한이 있다고 선언하였다.
니체아―콘스탄티노플 신앙고백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공식적 전례용 신앙고백이며 오늘날까지 동방과 서방의 모든 교회를 이어주는 유대이기도 하다. “즉시 전례에 사용된 이 신앙고백은 그 이후로 오늘날까지 공동체의 신앙을 확정하는 데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교회의 삼위일체 신앙에 대한 최종적인 해석을 제시하였다. 동방에서는 더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데, 즉 이 신앙고백과 그 배경에 있는 카파도치아 교부들의 신학과 함께 삼위일체 신비의 신학적 전개와 통찰이 근본적으로는 종결되었다고 간주하였다”. L.Scheffczyk, in: MySal, II, 1967, 182.


3.2.6. 부설: “성자로부터”(Filioque)의 문제

381년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성령은 아들을 통해서 아버지로부터 유래된다는 카파도치아 교부들의 가르침을 수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라틴 교회에서는 점차로 성령의 유래를 성자와도 관련시켜 생각하게 된다. 이런 생각은 5세기부터 7세기 사이에 스페인에서 사변적인 사고 과정을 거쳐서 형성되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發할 때 아버지는 아들에게 모든 것을 전달하였다. 이는 원천이 되는 것까지도 전달하였다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의 원천으로 생각되는 바, 아버지는 본래부터 원천의 되고,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전달을 받아서 원천이 된다고 하겠다. 그래서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Filioque) 나온다는 것이다. 이렇게 “성자로부터”란 표현은 성령이 발출되는 데에 있어서 성부와 성자를 전적으로 동등하게 배열한다. 동방교회는 ‘통해서’(dia)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말한다. 성령은 세계 창조의 제2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성자를 통해서 성부로부터 중재되어 발출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성령의 기능이 보다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8세기에 “Filioque”란 표현은 갈리아와 이탈리아에 이르게 되었다. 807년 예루살렘에 있는 프랑크족 수도자들이 이 표현을 사용하려고 하자 그리스인들로부터 이단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마침내 황제 하인리히 2세(Heinrich II, 1002-1024)의 압력에 의해서 1014년 로마에서 “Filioque” 표현이 니체아 콘스탄틴노플 신앙고백에 첨부된다. 동방교회는 9세기 이래로 이 표현에 대해서 격렬하게 반대하였다. 예를 들어서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 포시우스(Photius, 820-891)은 이 표현 때문에 로마를 이단이라고 비난하였다. 마침내 Filioque란 표현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1054년 결정적으로 분리되는 하나의 계기 ―권력, 정치적인 동기와 함께― 가 되었다. 서방교회에서는 동방교회의 반대에 저항하기 위해서 자신의 입장을 더욱 굳게하였다. 그래서 Filioque 표현은 1215년 제4차 라테란 공의회(DS 805), 1274년 제2차 리용 공의회(DS 850), 1439년 피렌체 공의회(DS 1331)에서 거듭 확인되었다.
삼위일체론에 관련해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모두 하느님의 단일성이 세 가지 완전한 “위격” (Hypostasis)안에 존재한다는 확신을 공동의 기반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세 위격에서 각기의 개별적인 고유성을 빼앗는다면 계시된 삼위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 된다. 개별적인 고유성이란 낳음을 받지 않음, 혹은 아버지임, 낳음을 받음 혹은 아들임, 발출됨 혹은 영(靈)이다. 동방교회가 “Filioque”에 반대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 말마디를 추가함으로써 낳음을 받지 않은 유일한 기원이라는 아버지의 개별적인 고유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염려에 있다. 즉 아들에게 삼위일체 내재적으로 오직 아버지에게만 해당되는 것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냐는 것이다. 이렇게 동방교회가 “Filioque”를 반대하는 것은 “내재적” 삼위일체의 차원과 관련된 것이다.
그러나 “구세경륜적” 삼위일체, 즉 세상과 관련해서 밖으로 드러난 하느님의 활동의 측면에서는 동방교회가 “Filioque”를 수용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요한 15,26에 따르면 성령은 아들로부터 유래되어서 세상에 보내진다. “내가 아버지로부터 여러분에게 보낼 협조자, 곧 아버지로부터 나오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은 나에 관해 증언할 것입니다”. 교회일치를 위한 대화에서 만일 로마-가톨릭 교회가 “Filioque”가 단지 구세경륜적으로 그러하다는 것이지 삼위일체 내재적으로 그러하다는 것은 아니라고 선언한다면 동방교회와 이치에 이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제안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제안은 거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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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서에 나타난 하느님 체험-(아)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3.2.3. 종속론적 경향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하느님은 어떤 분인가, 아버지와 로고스/아들과의 관계은 어떠한가, 예수에게서 인성과 신성의 관계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아주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3세기 말부터 시작된 이 신학 논쟁은 모두가 모두를 반대하는 다툼이라고까지 표현할만큼 격렬하고 복잡한 양성을 보였다.
    단원론과 종속론은 기본경향에서는 공통적이다. 즉 하느님의 유일신론적이고 절대적인 초월을 보전(保全)하고자 한 점은 공통적이었다. 종속론자들은 성자와 성령을 중간 존재로서 하느님 밑에 종속되어 있다고 봄으로써 ‘지고하신’ 하느님의 초월을 구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단원론은 이 중간 존재를 알지 못하였다. 즉 단원론은 어떤 관계로도 이완되지 않는, 하느님의 당신 자신과의 극도의 동일성을 주창하였다.
    큰 대결은 4세기에 알렉산드리아의 사제 아리우스(Arius, +336)와의 논쟁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아리우스는 기원후 260년경 리비아(Lybia)에서 출생했고, 오리게네스의 신학적 후예인 안티오키아의 루치아노의 제자였다. 아리우스는 중기 플라톤 철학을 근거로 최고의 唯一者인 신은 근접할 수 없는 초월성을 지니고 그래서 인식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로고스/아들은 진정한 신이라고 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이런 초월성을 지닌 신으로서는 결코 인간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리우스는 315년경부터 한편으로는 신적인 말씀, 로고스는 항상 하느님과 함께 있다, 하느님의 특성을 지닌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로고스는 아버지 하느님과 같이 영원하지 않다, 그는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아버지로부터 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자신의 존재를 직접 받았지만 그러나 아버지와 같은 본체에서가 아니라 무에서 지음을 받았다, 그러므로 하느님 안에서 로고스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이 있었다고 가르쳤다. 여기서 로고스는 피조물 중의 으뜸이요 가장 탁월한 피조물인 동시에 창조사업의 중개자로, 하느님과 세상의 중간 존재, 일종의 제2급신으로 파악되었다. 로고스는 하느님의 아들로 받아들여지기 위한 시험을 받기 위해서 인간이 되어야 했다. 로고스는 인간 나자렛 예수의 영혼의 자리를 차지하였고, 그래서 예수는 인간의 영혼이 없었다. 예수는 자신의 생애동안 윤리적으로 진보하여 완벽하게 되었고 그래서 합당하게 “하느님”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았다. 그래서 아리우스는 예수가 아들, 그리스도로서 아버지에게 종속되어 있다는 성서적 표현들을 상당히 강조하였다. 이렇게 볼 때 아리우스에게서는 철학자들의 신이 성서의 하느님보다 우위를 차지한 것이 분명하다. “그의 신학은 그리스도교의 헬라화를 의미하며 이 헬레니즘화는 사실 심각했다”. 발터 카스퍼, 『예수 그리스도』, 314.

    3.2.4. 단원론에 반대한 교회 최초의 신학

    라틴 교회에서는 두 신학자가 단원론과의 투쟁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떼르뚤리아노와 노바씨아노(Navatianus, +260년경).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떼르뚤리아노는 서방에서 최초로 삼위일체 신학을 시도한 인물이라고 하겠다. 그는 단원론자 프락세아스를 반대해서 쓴 책에서 여러 가지 철학적 개념을 삼위일체 신학에 도입하였다. 그는 하느님의 본체(본질)을 “substantia”라고 부르면서 하느님의 영적인 본체는 오직 하나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였다. 이 영적인 유일성은 구원사에서 -“구세경륜적”-에서 삼중으로 계시되었다. 이것은 떼루뚤이아노에게 양태론(modalism)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하느님 계시의 순서는 단지 탈(prosopon)을 바꾸는 식이 아니라 하느님 자신에게, 하느님 內在的(immanent)으로도 어떤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떼르뚤리아노는 하느님 안의 삼중의 구분을표상들을 통해서 분명하게 표현하려고 시도하였다. 즉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은 태양과 태양광선, 그리고 태양광선의 날카로움과 같은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떼르뚤리아노는 성서에 나타난 셋을 “personae”(위격들)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러나 셋이 모두 같은 순위에 있다고 보지는 않았다. 아버지의 “위격”은 창조와 인간에 관련하지 않고서도 생각될 수 있으나, 아들과 영은 하느님의 세상에 대한 관계 때문에 하나의 본체에서 단계나 형태(status)로서 나오게 되었다. 떼르뚤리아노가 사용한 삼위일체의 표현은 나중의 신학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한분이신 하느님의 세 “위격”(tres personae unius divinitatis).
    로마의 노바씨아노는 자신의 저서 “De Trinitate”에서 단원론자들에 대항하여서 삼위일체 신학을 전반적으로 전개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는 떼르뚤리아노처럼 하느님의 영적인 유일성에서 출발하지 않고 그리스 철학과 같이 하느님의 순수성과 세상에 대한 초월성에서 출발한다. 신적인 말씀(그는 이를 “sermo”라고 불렀다)은 세상에로의 파견과 결부되어 유래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고 불변하는 하느님 안의 내적인 과정이라고 보았다. 즉 하느님은 내재적으로, 무시간적으로 말씀을 하시고 이를 통해서 영원하고 시작이 없으며 비가시적인 하느님의 본체는 이 본체를 드러내는 당신 자신의 말씀과 관계(relatio)를 갖게 된다. 이렇게 해서 노바씨아노는 하느님의 내적인 구분의 특징에 이르게 된다. 즉 아버지는 출산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특징은 출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서 아들 혹은 말씀은 출산되었다. 그러나 이로써 하느님의 본체에 무슨 차이가 생긴 것은 아니다: 유일하고 분리될 수 없는 하느님의 본체가 아버지와 아들 모두에게 공통으로 해당되고 이렇게 해서 신적인 근본은 손상되지 않는다.
    삼위일체 신학과 관련에서 동방에서는 알렉산드리아의 신학자들을 꼽을 수 있는데, 그중에서 으뜸은 오리게네스(+ 253/254년경)이다. 그는 조직적으로 삼위일체 신학을 전개하려고 노력하던 신학자중에서 제일 먼저 성령을 분명하게 하느님의 내적인 삼중성에 포함시켰다. 그에 의하면, 아버지, 아들, 성령은 본질상 동일하지만, 일종의 종속성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적인 로고스는 절대적인 신적인 원천인 아버지로부터 流出(emanatio)되었고, 성령은 아들로부터 유래되었기에 그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셋이 서로 다른 것은 로고스/아들과 성령의 임무가 서로 다른 데에서 기인한다.

    3.2.5. 381년까지의 삼위일체에 대한 교회 교도권의 가르침

    로마-가톨릭 교회의 신학사에서는 중대한 문제에 관련해서 항상 로마의 주교의 입장 표명과 전체 교회를 대표하는 보편 공의회의 결정에 주목하여 왔다. 삼위일체에 대한 로마 주교들의 초기의 입장 표명은 상세한 원문 채로 보존되어 있지는 않다. 그리스인 테오도투스의 단원론을 단죄한 교황 빅토리오(Victiorius, +198) 1세의 서한과 사벨리우스에 대해서 반대한 교황 칼리스토(Callistus, +222) 1세의 견해가 알려져 있을 뿐이다. 칼리스토 교황은 고유한 삼위일체 이해를 제시하였다고 하는데, 이에 따르면 성부와 성자가 본질상 동일하지만 상이한 주체이기에 (단원론적 “성부수난설”의 추종자들이 주장하듯이)성부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교황 디오니시오(Dionysius, +268)가 양태적 단성론자들과 三神論(Tritheism)에 반대해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디오니시오에게 보낸 편지가 부분적으로 보존되어 있다(DS 112-115). 편지에서 교황은 유일하고 동일한 하느님의 본질, 하느님 안의 세 “위격”의 상이함 그리고 동시에 그 위격들이 동등한 등급을 고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4세기에 아리우스는 자신의 주교인 알렉산드리아의 주교를 그리스도론에 관련해서 공격하면서 분쟁을 일으켰다. 여러 차례의 지역 시노드는 이 분쟁을 끝내기 위해서 노력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두 시노드는 아리우스를 편들어서, 한 시노드는 그를 반대해서 결정을 내렸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이렇게 공개적으로 진행되는 분쟁으로 인해서 자신의 제국의 일치가 깨질 것을 염려하였다. 그래서 325년 소아시아의 도시 니체아에서 제국 공의회를 소집하였는데, 이는 최초의 보편 공의회로 간주된다. 황제가 의장이 되었고 대부분 동방의 그리스 지역에서 온 300여명의 주교들 참석하였다. 아리우스파를 대표하는 17명의 주교들도 참석하였다. 그러나 반 아리우스적 다수의 견해가 관철되었다. 그들은 이미 이전에 시리아/팔레스티나 지역에서 형성된 체사리아 신경(信經)의 두 번째 항목에 아리우스를 반대하는 표현을 삽입하여서 재수용하면서 아리우스파를 단죄하였다. 이 신경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한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곧 하느님의 아들을 믿습니다. 그분은 아버지, 곧 아버지의 본질로부터 낳음을 받으신 외아드님이시며 하느님으로부터의 하느님, 빛으로부터의 빛, 참 하느님으로부터의 참 하느님이시요, 낳음을 받으셨지 지음을 받지 않으셨으며 성부와는 동일본질이십니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 위의 모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분은 우리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고 우리 구원을 위하여 내려오사 살을 입으시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DS125). 이 신경에서 핵심되는 말마디는 “homoousios”(동일본질)이란 단어이다. 그리고 아리우스파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단죄하였다. “그러나 하느님의 아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거나, 그가 태어나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거나, 그가 무(無)로부터 혹은 다른 실체(hypostasis: substantia)나 본질(ousia: essentia)로부터 생겨났다거나, 하느님의 아들이 변화될 수 있다거나 영원하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은 공번되고 사도적인 교회에서 제외된다”(DS 126).
    아리우스파는 니체아 신경에 동의하였지만 내적으로는 완전히 수용하지 못하고 그 신경을 자신들의 주장에 맞게 해석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공의회는 하느님의 내적인 삶에 대해서 어떻게 정확하게 생각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공의회는 단지 잘못된 가르침을 방어하는 경계표만을 설정한 것이다. 삼신론에 반대해서 하느님의 유일성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아리우스파의 종속론과 사벨리아니즘에 반대해서 성서에 근거를 두고서 아들의 신성을 고수하였다. 아들이 아버지로터 유래하는 것을 “낳음을 받았다”는 말로서 그리고 빛의 표상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하느님의 “구세경륜적” 삼위일체, 즉 구원역사에서 삼위의 체험은 같은 명확성으로 말해지지는 않았다. “예수의 참된 하느님임을 긍정하는 이 존재론적 언표(言表)들의 근본적 의도는 다른 것이 아니다. 아드님은 피조물 측에 속하지 않고 하느님 측에 속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드님은 지음을 받지 않고 낳음을 받았으며 성부와는 동일본질(homoousios)인 것이다. 발렌티노계의 영지주의의 이른바 유출설(流出說)에서 유래하는 이 homoousios라는 개념은 니체아에서는 철학적이요 전문적인 의미로 알아듣지 않았다. 성서적 신표상이 희랍적 본질개념으로 덮어씌워져서는 안되었던 것이다. 이 개념은 그저, 아드님이 그 본성에 따라 하느님이시고 성부와는 동일한 존재층(存在層)에 서 계시다는 것을 밝히자는 것이었다. 따라서 아드님을 만나는 사람은 바로 성부 자신을 만나는 것이다”. W.카스퍼, 『예수 그리스도』, 315-316.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아리우스파의 형식적인 굴복이 있은 후에 공의회의 결정에 대해 토론과 해석이 계속되는 것을 용인하였다. 아리우스파는 그 이후 여러 부류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그 하나는 니체아 공의회에 반대해서 아들은 아버지와 비슷하지 않다는 부류(“anhomoios”파)이고 다른 하나는 성서의 진술을 위해서 모든 사변(思辯)을 포기하고자 하면서 “성서에 따라서” 아들은 아버지와 비슷하다고 주장하는 부류(“homoios”파),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들은 무에서 시간적으로 창조되었다는 아리우스적인 견해를 거부하였지만 엄격한 “homoousios”도 받아들이지도 않고 아들은 아버지와 모든 점에서 비슷하다(homoiousios)고 표현하는 중도적 아리우스파(semiarianism)로 나뉘었다. 주교들 중에서도 마지막 견해를 추종하는 이들이 많았고 황제도 이를 선호하였다. 이렇게 된 데에는 homoousios라는 개념의 불확실성에도 원인이 있었다. 사실상 많은 이들이 성부와 성자 사이의 구분이 이 개념으로 보장되지 않는다고 보았으며 그래서 이 개념안에 일종의 양태설(樣態說)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을 두게 되었다. 공의회가 hypostasis와 ousia라는 말을 구분없이 다 같이 본질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것도 이런 의심을 강하게 하였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적지 않은 주교들이 중도적 아리우스파를 추종하였던 것이다.
    니체아 공의회에서 정신적 주도 역할을 담당하였고 그 후에도 공의회의 가르침을 수호하는 데에는 앞장섰던 사람은 부제요 후에 주교가 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아타나시오(Athanasius, +373)였는데, 그는 이 때문에 황제로부터 여러 차례 유배를 당했다. 아타나시오가 가장 중요시한 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본질 동일성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셋의 구분에 대해서는 분명하지가 않았다. 즉 그리스어를 사용하던 그에게 서방에서 떼르뚤리아노가 꺼리낌없이 사용하였던 “위격”(persona)과 같은 말마디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위격에 상응하는 희랍어 “prosopon”를 사용하지 않으려 했는데, 왜냐하면 그는 이 단어에 사벨리아니즘이 담겨있다고 간주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결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하는 데에 결정적으로 이바지 한 사람들이 곧 카파도치아의 세 교부 곧 체사리아의 바실리오(Basilius, +379),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오(Gregorius, +390), 그리고 닛사의 그레고리오(+395)였다. 이들은 처음으로 (하느님 안에서) 단일한 본질(ousia)과 세위격(hypostasis)을 구별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의 영원한 하느님의 본질(ousia)은 파악할 수 없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이 유일한 본질은 하느님 내부에서 아버지, 아들, 영이라는 이해할 수 있는 삼성(三性)으로 생동적으로 전개된다. 이 셋은 위격적, 말하자면 고유한 특성을 지닌다. 즉 성부에게는 태어나지 않음, 성자에게는 태어남, 성령에게는 發出됨이라는 특성이 주어진다. 본질에 있어서 셋은 하나, 다시 말해서 아버지의 무한한 본질 안에 하나이고, 그로부터 본질을 잃음이 없이 아들과 성령이 유래한다. 그러므로 셋의 차이는 단지 發出됨과 發出되지 않음에만 있을 뿐이다. 이렇게 기원을 중심으로 해서 서로 연관된 관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유일한 신적 본질은 세 위격 안에서 생활한다. 카파도치아의 교부들이 출발점으로 삼는 성서의 증언에서 하느님이 자신을 계시하는 중에 삼중으로 구분되어서 인식되는데, 그러나 삼중의 계시를 통해서 하느님의 유일한 본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신앙의 묵상을 통해서 “밖으로” 나타난 하느님의 이러한 구분은 “내적인” 위격적 구분, (이 구분은 세가지 본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에 상응하는 것이라는 것을 점차로 깨닫게 된다. 즉 구세경륜적 삼위일체(救世經綸的 三位一體, Trinitas oeconomica)는 내재적 삼위일체(內在的 三位一體, Trinitas immanens)와 단일하다는 것이다. 내재적 삼위일체란 구체적 인간 역사와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영원으로부터 내재하는 천주성삼의 실재를 지칭하고, 구원경륜적 삼위일체란 세계와 역사 안에서 역사(役事)하시는 삼위의 실재를 가리킨다.
    하느님 안의 세 hypostasis을 같은 hypostasis(인격)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는 인간 셋과 비교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인간 셋은 모든 인간에게 공동적인 하나의 인성, 인간임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 인성은 세 인간에게서 각 사람의 구체적인 인격을 통해서 즉 저마다 고유한 표시와 특성들의 총체를 통해서 표현되고, 각기의 고유한 의식(意識)을 통해서 유지된다. 하지만 하느님은 이와 같지는 않다고 카파도치아의 교부들을 가르친다. 하느님에게서 위격은 다양하고 구체적이며 고유한 특징들을 지니는 것이 아니고 단지 한가지 특징만 있을 뿐이다. 즉 아버지에게는 근원임, 아들에게는 태어남, 성령에게는 발출됨이라는 특징만 있을 뿐이다. 이 특징만으로는 셋이 각자 자립적인 주체로 형성되기 “부족”하다. 물론 하느님의 본질 혹은 신성은 세 위격과는 구분된 “고유한” 무엇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하느님의 본질은 성자와 성령이 전달을 통해서 나누임없이 참여하는 아버지의 본질을 말한다.
    카파도치아의 교부들은 성령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즉 그들은 아리아니즘을 바탕으로 종속론적 견해를 성령에게 철저히 적용한 신학을 거슬러 투쟁하였다. 성령의 참된 신성에 시비를 걸던 이들 “마체도니아파”(Macedonians) 4세기 중반의 콘스탄티노플의 주교 마체도니우스(Macedonius, +364)의 이름에서 유래된 명칭인데, 실상 마체도니우스는 그런 주장을 내세우지 않았다.
    , 혹은 “성령배격론자”(pneumatomachos)라고 불렀다. 이들에 따르면 성령은 히브 1,14에 의거해서 천사와 같은 유형의 중간 존재로 파악된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시종으로서 권력과 능력 면에서 그리스도의 밑에 종속된다는 것이다. 카파도치아의 교부들은 이들에 반대해서 니체아 공의회의 표현 “homoousios”를 성령에게 적용하였다. 아들과 영은 형제라고 주장하는 아리아니즘에 반대해서 닛사의 그레고리오는 영은 아들을 통해서 아버지로부터 유래한다고 대답하였다.
    아리아니즘이 계속됨으로써 교회와 국가의 일치가 위협을 받자 테오도시오 황제는 381년에 콘스탄틴노플에서 다시금 공의회를 소집한다. 여기에는 카파도치아의 교부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오와 닛사의 그레고리고를 포함해서 150명의 동방 지역의 주교들이 참석하였다. 제2차 보편공의회로 인정되는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우선 니체아 신앙고백을 확인하였는데, 그렇다고 무조건 글자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생동적으로 이루어졌다. “이것은 공의회가 니체아의 교리정식 중에서 오해될 수 있고 또한 그 동안에 발전한 신학에 비추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난 부분을 변경하는 데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도 잘 드러난다. ‘성부의 본질로부터 낳음을 받으셨다’(DS 150)는 니체아의 표현이 탈락되었다”. W.카스퍼, 『예수 그리스도』, 318.
    또한 니체아의 그리스도론을 구세경륜적 관점에서 더 보충되었다. “또한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음을 믿나이다.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저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수난하시고 묻히셨으며…”. 그리고 성령의 참된 신성을 부정하던 이들을 거슬러서 성령의 신성을 분명하게 고백하였다. 니체아에서는 단순히 “성령의 믿나이다”만 고백하였던 것이 콘스탄티노플에서는: “또한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나이다.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영광과 흠숭을 받으시며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나이다”(Et in Spiritum Sanctum, Dominum et vivificantem, qui ex Patre Filioque procedit, qui cum Patre et Filio simul adoratur et conglorificatur, qui locutus est per prophetas: DS 150). 이 신앙고백에서 하느님께 해당되는 술어(주님, 생명을 주시는 분)가 성령에게 적용되었고, 성령은 아버지로부터 발하시는 분으로서 하느님께만 해당되는 영광과 흠숭을 받을 권한이 있다고 선언하였다.
    니체아―콘스탄티노플 신앙고백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공식적 전례용 신앙고백이며 오늘날까지 동방과 서방의 모든 교회를 이어주는 유대이기도 하다. “즉시 전례에 사용된 이 신앙고백은 그 이후로 오늘날까지 공동체의 신앙을 확정하는 데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교회의 삼위일체 신앙에 대한 최종적인 해석을 제시하였다. 동방에서는 더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데, 즉 이 신앙고백과 그 배경에 있는 카파도치아 교부들의 신학과 함께 삼위일체 신비의 신학적 전개와 통찰이 근본적으로는 종결되었다고 간주하였다”. L.Scheffczyk, in: MySal, II, 1967, 182.

    3.2.6. 부설: “성자로부터”(Filioque)의 문제

    381년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성령은 아들을 통해서 아버지로부터 유래된다는 카파도치아 교부들의 가르침을 수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라틴 교회에서는 점차로 성령의 유래를 성자와도 관련시켜 생각하게 된다. 이런 생각은 5세기부터 7세기 사이에 스페인에서 사변적인 사고 과정을 거쳐서 형성되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發할 때 아버지는 아들에게 모든 것을 전달하였다. 이는 원천이 되는 것까지도 전달하였다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의 원천으로 생각되는 바, 아버지는 본래부터 원천의 되고,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전달을 받아서 원천이 된다고 하겠다. 그래서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Filioque) 나온다는 것이다. 이렇게 “성자로부터”란 표현은 성령이 발출되는 데에 있어서 성부와 성자를 전적으로 동등하게 배열한다. 동방교회는 ‘통해서’(dia)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말한다. 성령은 세계 창조의 제2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성자를 통해서 성부로부터 중재되어 발출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성령의 기능이 보다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8세기에 “Filioque”란 표현은 갈리아와 이탈리아에 이르게 되었다. 807년 예루살렘에 있는 프랑크족 수도자들이 이 표현을 사용하려고 하자 그리스인들로부터 이단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마침내 황제 하인리히 2세(Heinrich II, 1002-1024)의 압력에 의해서 1014년 로마에서 “Filioque” 표현이 니체아 콘스탄틴노플 신앙고백에 첨부된다. 동방교회는 9세기 이래로 이 표현에 대해서 격렬하게 반대하였다. 예를 들어서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 포시우스(Photius, 820-891)은 이 표현 때문에 로마를 이단이라고 비난하였다. 마침내 Filioque란 표현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1054년 결정적으로 분리되는 하나의 계기 ―권력, 정치적인 동기와 함께― 가 되었다. 서방교회에서는 동방교회의 반대에 저항하기 위해서 자신의 입장을 더욱 굳게하였다. 그래서 Filioque 표현은 1215년 제4차 라테란 공의회(DS 805), 1274년 제2차 리용 공의회(DS 850), 1439년 피렌체 공의회(DS 1331)에서 거듭 확인되었다.
    삼위일체론에 관련해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모두 하느님의 단일성이 세 가지 완전한 “위격” (Hypostasis)안에 존재한다는 확신을 공동의 기반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세 위격에서 각기의 개별적인 고유성을 빼앗는다면 계시된 삼위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 된다. 개별적인 고유성이란 낳음을 받지 않음, 혹은 아버지임, 낳음을 받음 혹은 아들임, 발출됨 혹은 영(靈)이다. 동방교회가 “Filioque”에 반대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 말마디를 추가함으로써 낳음을 받지 않은 유일한 기원이라는 아버지의 개별적인 고유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염려에 있다. 즉 아들에게 삼위일체 내재적으로 오직 아버지에게만 해당되는 것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냐는 것이다. 이렇게 동방교회가 “Filioque”를 반대하는 것은 “내재적” 삼위일체의 차원과 관련된 것이다.
    그러나 “구세경륜적” 삼위일체, 즉 세상과 관련해서 밖으로 드러난 하느님의 활동의 측면에서는 동방교회가 “Filioque”를 수용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요한 15,26에 따르면 성령은 아들로부터 유래되어서 세상에 보내진다. “내가 아버지로부터 여러분에게 보낼 협조자, 곧 아버지로부터 나오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은 나에 관해 증언할 것입니다”. 교회일치를 위한 대화에서 만일 로마-가톨릭 교회가 “Filioque”가 단지 구세경륜적으로 그러하다는 것이지 삼위일체 내재적으로 그러하다는 것은 아니라고 선언한다면 동방교회와 이치에 이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제안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제안은 거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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