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에 있어서의 하느님 이해 양식
데까르트 이후 교회내의 변화
1) 자유주의 신학의 출현 (개신교적 현상)
인간을 강조하고 사회적 정치적 차원에서 바라다 본다. 삼위일체는 주변적인 문제였다.
2) 정통주의 신학 (가톨릭적 현상)
신앙 고백적 신학이다.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해서 하느님이 드러남과 하느님의 삼위성을 강조한다 (개신교의 정통주의 신학 역시 하느님의 삼위성을 강조한다). 가톨릭은 본질변화로서의 의화를 이야기하고, 개신교는 선언으로서의 의화를 이야기한다.
3) 사신 신학의 출현
헤겔, 포이에르 바흐, 니이체의 영향을 받아 초월적 하느님을 배제한다.
4) 세속 신학
1960년대말 발전한 이 신학은 자유주의 신학과 같이 세상적인 것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리스도교의 사회적, 정치적 차원을 강조하는데 그리스도교적 원리로 일관된다. 하느님은 세상을 위해 우리를 책임성 있는 삶에로 인도한다. 우리가 은혜로운 이웃을 체험하는 것이 은혜로운 하느님을 체험하는 것이다.
5) 정치 신학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가 모든 인간, 사회, 정치 실재를 판단하는 원리로 등장한다.
6) 실존 신학
하느님의 구원행위가 발생하는 장소로서 개별적 인간, 개별적 신앙을 바탕으로 한다. 하느님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참원천이다.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에게 계시된 것은 인간 성숙이 개방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7) 과정 신학 ( 떼이야르 샤르뎅 )
하느님은 흐름의 상태에 존재하고, 인간 세계, 역사를 공동으로 창조하고 진화시키시는 분이다. 이 하느님은 부동의 하느님이 아니라 양극성의 하느님이다. 즉 하느님은 절대적이며 상대적이다. 다른 존재와 상관 관계에 있기 때문에, 또 불변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불가항력적으로 완성 (하느님 나라)을 향해 나아간다.
8) 초월 신학 (칼라너)
우주론적 신학사상이다. 인간학적 사상을 신학에 도입한다. 그는 인간이 세계내 존재라는 하이데거의 통찰을 수용한다. 인간이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는 세계내 실재와 관계를 맺어야 한다. (Convertio ab Fontagia ?). 인간은 자기 귀환 운동을 한다. 바로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 가운데 나를 세계 대상과 분리하고, 이를 드러내는 사건이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제기된다. 그러나 인간의 질문의 가능성은 더 많은 것을 의미한다. 즉 그 가능성이 나에게 있다는 것, 누구나 존재에 대해 명시적 인식을 못하더라도 함축적 인식을 가지기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간은 실재 일반을 1 차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개별 대상과의 접촉을 통해서 인식한다. 여기서 일반적 성격을 파악하는 능력은 추상능력이다. 이것은 인간 인식의 배경으로 주어져 있다. 이 존재 지향성 속에 하느님 존재가 함축되어 있다. 인간이 자신을 성취하는 것을 가능케하는 하느님은 이제 인간의 주체적 운동을 가능케하는 내적 소인으로 작용한다. 즉 인간이 세계실재와 관계 맺지 않는 한, 인간 인식은 백지와 같다. 그는 지복직관을 모든 실재의 기반을 명시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따라서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인식 없이는 하느님에 대한 인식이 불가능하다. 그에 있어서는 역시 하느님은 세계내 실재를 통해 인식할 수 있는 분이다.
2차 바티칸 공의회의 하느님 이해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조직적으로 하느님에 대해 명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비그리스도교인의 구원의 가치, 교회의 사명에 대한 질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2차 바티칸 공의회의 1차적 관심은 일치였다. 이는 모든 인류의 일치이다.
비그리스도교인을 위한 교령 “사실 여러 민족들은 단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또한 단 하나의 최후 목적이신 하느님을 모시고 있다. 하느님의 섭리와 착하심의 증거와 구원의 계획은 모든 사람에게 미칠 것이고, 마침내 하느님의 영광이 빛나는 천상 성도에서 간선자들이 다시 모이게 될 것이며, 거기서 여러 민족들이 하느님의 빛속에 거닐겠기 때문이다.”
현대 세계의 사목헌장 41항 “인간의 최후 목적인 하느님의 신비를 밝혀 주는 것이 교회에 맡겨진 사명이므로 교회는 동시에 인간 존재의 의의, 즉 인간에 대한 깊은 진리를 인간에게 밝혀준다. 교회가 섬기고 있는 하느님만이 인간 마음의 가장 깊은 소망을 충족시켜 주실 수 있고 지상 양식으로는 결코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교회는 잘알고 있다. 하느님이 인간을 당신 모상대로 창조하셨고 인간을 죄에서 구해 주셨으므로 그분만이 이런 문제에 완전한 해댭을 주실 수 있다. 하느님은 인간이 되신 당신의 아들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완전한 해답을 주셨다. 그러므로 완전한 인간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스스로 더 완전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하느님에 대한 신학과 인간에 대한 신학이 그리스도론적으로 모아지는 것이다.
계시 헌장 21항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성경 안에서 당신 자녀들을 언제나 친절히 만나 주시고 그들과 말씀을 나누신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은, 교회에 대해서는 지탱과 힘이 되고, 교회의 자녀들에게는 신앙의 힘, 마음의 양식, 영신 생활의 깨끗하고 마르지 않는 샘이 되는 힘과 능력을 간직하고 있다. 따라서 복음 신앙은 가장 요긴한 요소이다.”
교회 헌장 2-4항 : 삼위 일체 “온 교회는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일치에 바탕을 두고 모인 백성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사목 헌장 24항 : 삼위 일체와 하느님 자녀들의 일치사이의 유사성을 말하면서 하느님과 인간이 동떨어진 사이가 아님을 이야기한다.
* 무신론이 우리에게 지적해 주는 바는
1)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쓰지 말라는 것과
2) 이제는 어린 아이가 아니라 성숙한 모습으로
3) 인간의 주체성을 박탈당하고 객체가 되는 하느님을 거부한다. 우리에게 위협을 주고 겁을 주
는 하느님은 이제 거부되어야 한다.
4) 사변적이고 불변하는 하느님은 거부되어야 한다.
5) 이제는 더이상 聖과 俗, 세상과 종교의 이원화를 해소하여야 한다.
6) 하느님이 너무나 평가 절하되어 있다.
현대에 있어서의 하느님 이해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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