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중심적 하느님 이해-근세의 인간중심적 신관(하)


2. 데카르트(R. Descartes, 1596-1650)는 인간학적 전환을 이룩한 사고의 지평에서 하느님의 존재를 인간의 주체행위의 성취를 가능케 하는 심층소인으로 규정하는 인간중심적 신관을 제시한 선구자로 간주된다.1) 그의 신증명은 그의 인식론에 기여하고 있다. 이 인식론은 ‘방법적 회의’(方法的 懷疑)로부터 출발하여 인식능력의 진실성과 이 인식의 보증인 신의 존재를 파악한 뒤에 전개되고 있다.


데카르트는 세계의 목적론이나 우유성(偶有性)에 의지하는 우주론적 증명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에게서는 이 외적 실재가 바로 회의의 대상이며 이 회의는 하느님의 존재수용과 함께 비로소 극복되기 때문이다. 신존재 정초의 출발점은 데카르트에게서 인간의 주체적 사고가 성취되는 가운데 현시되는 명증성이다. 그래서 모든 논리적 추론에 의지하지 않고 순수직관을 통해서 정신에 다가오는 ‘명석판명(明晳判明)한 관념’(idea clara et distincta)을 곧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로 표현하고 있다.


데카르트는 하느님의 존재가 명석판명한 신관념에 내포되어 있다고 본다. 그는 ‘내가 명석판명하다고 보는 모든 것은 참되다’는 명제를 일반율로 정한 뒤에 자의식을 분석하고 거기서 신의 관념과 존재를 유도한다.2) 인간 의식 안에는 출처가 각기 다른 관념들이 자리하고 있다. 일부 관념들은 감각으로부터 유래한다. 나무나 짐승이나 생선과 같은 실재에 대한 관념들이 이들에 속한다. 다른 관념들은 인간 환상의 산물로서 인간 자신에 의해 형성된 것들이다. 용(龍)이나 도깨비와 같은 가공 실재에 대한 관념들이 바로 이들이다. 또 다른 부류의 관념들은 인간의 탄생과 함께 소여되어 있는 생득적 관념(生得的觀念, idea innata)들로서 ‘본유관념’(本有觀念)이라고도 지칭된다. 진리, 선, 아름다움, 또는 ‘나’와 같은 관념들이 이러한 관념들이다. 이 관념들은 단순한 상념들이 아니라 실재라고 규정된다. 그리고 이 본유관념이 명석성과 판명성을 많이 제시하면 할수록 이 관념은 더욱 실재적이라고 규정된다.


데카르트에 의하면 본유관념들 중에서 일차적이고 가장 탁월한 관념이 바로 명석함과 판명함에서 다른 관념들을 능가하는 무한하고 가장 완전한 본질로서의 신관념이다. 다른 본유관념들이 유한한 실재만을 지시하는 데 반하여 무한한 본질의 이 관념은 무한한 실재를 표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관념이 최고로 명석판명하기 때문에 어떠한 다른 관념보다 객관적 실재를 내포하고 있고, 그 때문에 더욱 진실되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여러 사고과정을 포착한다. 우선 그는 모든 사고행위가 어떠한 활동의 가능성의 전제이기에 반드시 원인이 있기 마련이라는 기본명제에 의지한다. 이를테면 신관념의 출처에 대한 물음이 제기될 수 있는 데, 무한대한 실재로서의 신관념은 인간 정신을 원천으로 삼을 수 없다고 데카르트는 판정하는 것이다. 즉 유한한 인간 정신이 무한한 존재의 합당한 원인일 수 없고결과적으로 무한대한 실재로서의 신관념이 인간 정신으롭터 발원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신을 무한하고 독립적이며 최고의 통찰력과 세력을 지닌 실체로 이해하며, 나 자신이 이 실체에 의하여 조성되었으며, 다른 현존하는 존재자들 역시 조성되게 한 실체로 이해하고 있다. 내가 치밀하게 생각하면 할수록 이것이 나에게서 연유될 수 없음이 명백해진다. 언급한 바에서부터 하느님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결론지어야 한다. 실체의 관념이 내 안에 있으면 그것은 내가 하나의 실체인 때문이며, 나 자신의 실체는 유한하기에 무한한 관념은 참으로 무한한 어느 실체로부터 접촉되지 않으면 진실로 무한한 실체의 관념은 아닐 것이다.”3). “무에서 어떤 것이 생성될 수 없고 완전한 것이 불호완전한 것에서부터 작용하거나 온전한 원인으로서 생성될 수 없다는 것은 자연적 조명에 따라 분명해진다. 내가 가지고 있는 최고 완전성에 나 자신은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이 완전성들은 우리와는 상이한 존재, 즉 하느님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결론이 당연하게 나온다”.4)


데카르트는 신의 관념이나 의식이 인간의 자아상념이나 자의식보다 선언한다고 보고 있다. 인간이 불완전하고 유한한 것을 생각하려면 그 가능성의 조건으로 완전하고 무한한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완전한 본질의 관념이 내 안에 있지 않다면, 내가 의심한다든가 소원을 가지고 있다든가 또는 내게는 무엇인가가 결핍되어 있고 그러므로 나는 전적으로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5) 데카르트는 인간의 불완전성과 예속성, 그리고 우유성으로부터 가장 완전한 존재로서의 하느님의 존재를 추론한다. “내가 회의하는 존재이며 불완전하고 예속적이라는 점을 유의하면 할수록 나로부터 독립적이고 완전한 존재로서의 하느님의 명석판명한 관념이 제공된다. 이러한 관념이 내 안에 있고, 이러한 관념을 가진 내가 존재하는 데에서 하느님 역시 존재하고 나의 실존이 그에 의하여 지속적으로 예속되어 있음이 분명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6)


데카르트는 인간에게 신관념이 소여되어 있는 것은 마치 예술가가 자기 작품에 자기 표지를 주입하듯이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에 이 관념을 주입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였기 때문에 인간이 특정하게 그의 모상으로서 그와 유사하게 창조되었다는 것은 믿을만하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관념이 담겨있는 이 유사함은 인간이 자신을 포착하는 같은 능력에 의하여 나로부터 포착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논증은 하느님의 존재가 부정되면 하느님의 관념을 가지고 있는 인간 본성과 더불어 인간 자신의 존재 가능성마저 함께 부정된다는 통찰에 근거를 두고 있다.


데카르트의 신존재 증명에서 특기할 점은 하느님의 무한성과 인간의 유한성이 인간 주체성 안에서 함께 사유된다는 사실이다. 하느님의 관념을 통해서 자신의 유한성을 인식하는 인간만이 하느님을 자신의 남[他者]으로서 자신 위에 정초하도록 요청한다는 것이다. 데카르트에 의해 정립된 이러한 신관은 스피노자(B. Spinoza, 1632-1677), 칸트(I. Kant, 1724-1804)를 거쳐 독일 관념론(J.G. Fichte, 1762-1814; G.W. Hegel, 1770-1831; F.W.J. Schelling, 1775-1854)에서 심화된다. 금세기에 이르러 가톨릭 신학계에서 칼 라너가 인간학적 초월신학(超越神學, Transzendentaltheologie)을 전개하면서 인간학적 신관념이 결정적으로 수용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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