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을 사랑하신 예수님

우리의 사랑이시며 중재자이신 예수그리스도

저희 생활 안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중재자의 역활일 얼마나 중요한지
종종 경험하게 됩니다.
오해의 요지도 진실보다 전달과정에서 잘못됨으로 생기기 쉽상이고,
불목의 관계에서도 중간의 역활이 어떻게 현명하게 도와 주느냐에 따라
화해의 장을 이루기도 힙니다.
이렇듯 사소하고 작게 보이는 일에서 부터 인간의 생사가 오가는 중대한 거사에가지
중재자의 역활이 너무나 중요한지요.
하지만 사림과 사람 사이에 중재의 역활은 우리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튼튼한 버팀목을 세우고 있다면 별 문제가 없을 듯 싶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사이에 모세라는 중재자의 역활을 봅니다.
우상숭배에 떨렁진 이스라엘 백성에게 화가 나신 하느님은 그들을 모조리 쓸어버리려는
생각까지 하십니다.
모세는 “그런 주 하느님의 노기를 풀어 드리려고 애원을 했다.”라는
성서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백성은 당신이 선택하신 백성이 아닙니까?’ 라는 협박아닌 협박조로로
간절히 애원하는 모세의 모습을 그려보게 됩니다.
이런 모세의 말을 들은 주님께서는 당신백성에게 내리겠다던 재앙을 거두시는 뜻의 전환.

이렇듯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모세의 중재자의 역활은 한 민족을 구원으로 이끄는 길목이
되어줌을 봅니다.

오늘 복음 또한 유다인들에게 하느님과 그들의 중재자는 예수님이심을 드러내시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만 유다인의 구원을 위해서 아버지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맡기신 사명을 하시려 합니다.
하지만 아둔한 유다인들을 그 뜻을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단적인 예를 들어 주시는데요.
성서 속에선 영원한 생명을 찾으려고 하면서 그 성서가 증언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과
진정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신 예수님을 곁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고는
왠 뜬 소문에 좀 유명세를 타는 사람이 있으면 혹하는 마음으로 우르르 몰려드는 모습을
이야기 하십니다.
저희가 남의 이야기처럼 들으면 얼마나 어리석은가?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 생활 속에서 우리 자신이 그런 해프닝을 겪고 있는 것은 않은지 반성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다만 이 세상을 사랑하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고 오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외아들을 보내셨다.”
요한 복음 3장 16절의 말씀이 있습니다.
삶이 삭막해질때,
욕심과 이기심으로 자유롭지 못할때
저는 종종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스스로에게 반문하면서 요한복음 3장 16절을
어릴적에 배웠던 노래로 간혹 흥얼거리며 힘을 얻을때가 많습니다.
단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중재자 되어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이웃과 이웃 안에서 어떤 중재자가 되고, 어떤 전파자가 되고 있는지 살펴봐야 겠습니다.
그리하여 주님께 영광을 드리는 좋은 하루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 매일 흔적없이 들어왔다 실속만 챙겨 얌체같이 나가는 게 죄송해서 간만에 글을 남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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