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개방된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사귐과 일치(세인격과 하느님의 수난-영광스럽게 하는)

 

다. 영광스럽게 하는 영




    몰트만은 그의 부활의 신학에 초점을 맞추어 성령을 이해한다. “그리스도와의 형제관계는 이 하느님의 역사에 고통 당하면서 능동적으로 참여함을 의미한다. 그 표준은 십자가에 달렸다가 부활한 그리스도의 역사이다. 그 능력은 탄식하며 자유케하는 하느님의 영이다.”1) 몰트만은 이러한 능력을 가진 성령으로 말미암아 모든 만물과 사건, 관계들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또한 그는 역사적으로 이어진 교회에서 고찰된 성령이 단지 ‘구원의 영’으로만 인식하며, 그 장소가 교회라는 것을 말해왔다고 비판한다.2) 그러면서 몰트만은 성령은 생태학적, 우주적 그리스도론적 신학의 이해에서 출발하여 그리스도에 관한 구원의 영과 창조주 하느님의 영의 일치성을 전제해야 함을 제시한다. 이때 창조에서 구원까지 하느님의 전 영역에서 역동하시는 생명의 영을 보게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성령은 교회에 국한되지 않고 온 우주 안에서 의미를 지녀야 함을 말한다.3) 이와 같이 성령은 창조주 하느님의 역사와 그리스도의 전 생애에 내재하며, 온전한 하느님으로서 하느님 나라를 위한 창조사업과 일치에로의 사귐으로 이해해야 함을 의미한다. 


    몰트만은 그의 신학의 정점인 부활을 통하여 성령을 말한다. 성서에 그리스도는 영을 통하여 부활하기 때문이다. 성령 안에서 부활한 아들은 성령을 모든 이에게 부어준다.  이때 성령은 아버지로부터 아들을 통하여 온다. 아버지에 의해 파견된 영은 아들을 통하여 능력을 야기시킨다. 다시 말해서 성령의 역사로 새로운 변화와 죄와 죽음의 상태에서 해방을 가져왔다. 이로써 아버지와 세계의 관계에서 새로운 사귐을 이끌고 인간을 하느님께로 개방시킨다. 시간의 한정으로부터 영원에로 개방한다. 성령의 거함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몸과 몸의 구원이 시작된다. 또한 영은 삼위일체 안에서 주도적으로 아버지와 아들을 영광스럽게 한다. 동시에 세계를 개방시킨 영을 통하여 세계는 삼위일체의 영광 안에 참여하게 된다. 이러한 영을 통한 삼위일체적 개방은 모든 것을 수렴하며, 삼위일체의 삶에 참여시킨다. 이때 삼위일체 되신 하느님은 세계에 머물며 세계를 삼위일체의 영광 안에 두고, 세계는 그 곳에서 존재하게 된다.4)


이 글은 카테고리: catholicdata2020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