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적인 행동과 내적인 태도의 일치. 그렇게만 된다면야 모든 위선의 위험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할까요? 어느 신부님께서 해 주신 말씀이 더 오릅니다. “강론을 할 때 그렇게 살지 못한다고 자책하지 마십시오. 강론의 일차적인 청중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행이 일치되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누구나 원할 것입니다. 사제도 마찬가지이고, 자식을 둔 부모도 마찬가지이고,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이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