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연중제18주일 강론-

 

연중 제18주일


제 1 독서 : 이사 55, 1-3


제 2 독서 : 로마 8, 35.37-39


복     음 : 마태 14, 13-21




제 1 독서 : 바빌론 유배 중(기원전 587-538년)에 이스라엘 백성은 매일의 빵을 얻기 위한 고된 삶을 체험했다. 제2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새롭게 부흥될 미래를 말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양식이 거저 주어진 때를 예고한다. 거저 주어지는 이 양식은 거저 베풀어지는 구원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빵이 아니라 하느님의 호의로 맺게 된 계약이다(3절).


“그런데 어찌하여 돈을 써가며 양식도 못되는 것을 얻으려 하느냐?”(2절) 이 말씀은 루가복음 15장의 탕자를 연상시켜 준다.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많아서 일군들이 먹고도 남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게 되었구나!”(루가 15, 17)라는 자각이 탕자의 발길을 아버지의 집으로 돌려놓았듯이, 매일의 빵을 얻기 위한 고된 삶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상의 구원을 알게 해주었다.




제 2 독서 :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당신의 아들을 아낌없이 내주신 데에서 우리는 거저 베풀어지는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다. 오늘 제2독서는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기쁨의 탄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한 사람에게 있어서 삶은 기쁨에 찬 용약이 된다. 비록 일상의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그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도 남는다. 하느님의 사랑이야말로 우리를 살게 하는 참된 양식이다.




복      음 : 두 가지 이야기(병자의 치유와 빵의 기적)에서 공통점은 예수의 측은지심이 다. 예수께서는 “군중을 보시자 측은한 마음이 들어 그들이 데리고 온 병자들을 고쳐주셨다”(14절). 제자들은 군중을 돌려보내자고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들을 보낼 것 없이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말씀하셨다(16절).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에서도 예수께서는 군중이 불쌍하다고 말씀하셨다(마태 15, 32; 마르 8, 2).


예수께서는 당신의 능력을 자랑하기 위해서나 당신의 말씀에 무게를 싣기 위해서 기적을 행하시지 않았다. 예수께서 기적은 이웃이 당하는 불행 때문에 상처받은 마음의 즉각적인 반응이었으며 동시에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표지였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의 복음 말씀은 빵의 기적을 통해 인간의 간절한 소망을 충족시켜 주시는 분이 바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빵으로 표상되는 영원한 생명의 양식, 그 양식을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주고 계시고 그 양식으로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그분 안에서 편히 쉬게 하시고 위안을 받도록 해주십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는 바다같이 넓고, 하늘같이 높은 거룩한 마음 자체를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굶주린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의 말씀에 넋을 잃은 채 귀기울이고 있었지만 허기진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를 불쌍히 여기신 측은지심의 예수께서는 아버지 성부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많게 하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이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은 수많은 병자들의 병을 낫게 하셨으며 그들의 목말라하는 갈증을 사랑의 샘으로 해소해 주신 것입니다.


제1독서 이사야서에서도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먹고 마시라고 하시면서 하느님이 진정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자이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로니아 유배생활 중에 목말라한 것은 일시적으로 배부르게 하는 빵이 아니라 생활이신 하느님 곁에 사는 삶,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나날의 매순간순간마다 하느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면 어떤 외로움이나 쓸쓸함도 견뎌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오로께서 제2독서 로마서에서 어떤 것도, 즉 박해와 환난과 핍박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없다고 신앙 고백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 마음을 우리와 같이 알아줄 사람, 그분은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외로움을 느끼고 사람들로부터 오해와 불신을 살 때, 그리고 모든 이들이 우리에게서 떠나갔다고 느낄 때,  그 때 바로 우리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실의와 좌절과 절망의 바다에서 우리가 표류할 때 희망의 지표로 우리를 비추어주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조용한 가운데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서로 가진 바를 나누려는 그 사랑의 마음을 보시고 풍성한 잔치를 베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그것은 장정만 오천 명이 넘는 군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미소한 것이었지만 이 미소함을 바탕으로 엄청난 능력의 기적을 행하셨던 것입니다.


몹시 추운 날 밤, 뉴욕 전화 회사의 회장 버치 포래커는 다른 회사의 사장들과 영화를 관람하고 극장을 나서고 있었습니다. 극장 문을 열자 찬바람이 훅 밀려들어 왔습니다. 포래커는 일행들과 추위에 떨며 운전 기사가 자동차를 가져오기를 기다리고 서있었습니다. 그때 포래커는 저만치 떨어진 곳에 ‘수리 중’이라는 글씨가 쓰여진 삼각대가 놓여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뉴욕 전화 회사의 인부들이 맨홀에 들어가 전화선을 수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포래커는 일행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사 중인 지점으로 걸어갔습니다. 구멍 밑에서 두런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포래커는 땅바닥에 주저앉는가 싶더니 사다리를 타고 기어 내려갔습니다. 포래커의 생각대로 지하에서는 두서너 명의 작업조가 전화선을 수리하고 있었습니다. 인기척에 놀란 인부 한 명이 손전등을 비추었습니다. “누구슈?” “어~! 날세. 버치 포래커!” 눈이 부신 포래커가 손등으로 눈을 가리며 대답했습니다. 포래커가 누구인지 안 인부들이 몹시 당황하자 포래커가 얼른 말했습니다. “이 추운 날, 고생이 많구만. 내 지나가다가 모두 무사한가 보려고 잠시 들른 것일세! 내가 방해를 한지 모르겠네. 그럼 나 먼저 올라가지.” 포래커는 수고하라는 말을 끝으로 돌아섰습니다. 그러자 인부들이 일제히 포래커의 발 밑을 손전등으로 비춰 길을 밝혀 주었습니다. 포래커가 엉금엉금 기어서 밖으로 나오자 일행들이 무슨 일이냐는 듯 잔뜩 호기심 어린 얼굴로 서있었습니다. 포래커는 손바닥에 묻은 흙을 털며 그들을 향해 웃어보였습니다. “아, 저희 직원들인데 인사나 하고 가려구요.” 포래커의 이런 행동은 5분도 안 걸리는 것이었지만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게 만들었습니다.


포래커의 자기 직원들에 대한 작은 관심은 곧 그의 직원들에 대한 큰사랑이 되었고 직원들로부터 큰사랑을 불러일으킨 결과를 낳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나눔을 통해서 더 많아지고 풍성해진다는 진리가 바로 여기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체성사는 바로 이 나눔의 잔치를 통해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풍요 속의 빈곤, 빈익빈부익부 현상을 드러내는 오늘날의 모습과는 정반대로 모든 이가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서로 아낌없이, 거짓없이, 가식없이 나눌 때 거기에 사랑의 기적이 있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생활하신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누는 성체성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계급, 신분, 빈부, 교육, 인종 차이를 넘어서서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자매가 되는 것입니다


남에게 대접받기를 바라지 않고 스스로 기꺼이 봉사하는 자로서 꾸밈없고 가식없는 진정한 사랑과 겸손한 자세 안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는 그 모습 안에서 사랑의 기적은 나날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기적이 매일의 생활 안에서 일어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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