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3주일
제 1 독서 : 에제 33, 7-9
제 2 독서 : 로마 13, 8-10
복 음 : 마태 18, 15-20
제 1 독서 : 에제키엘서 33-39장은 예루살렘 멸망 후(기원전 587-573년)의 예언에 속하다. 예루살렘 멸망 전에 행해진 예언 (1-24장)에는 심판과 단죄가 대부분이지만 33-39장에는 복구와 희망이 가득 차있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뽑으시어 백성을 가르치고 백성을 위한 보초와 전령의 역할을 맡기셨다. 에제키엘은 유다인들이 바빌론에 유배 중인 아주 어려운 시기에 이런 역할을 맡아서 성실히 그 임무를 완수했다. 그때는 유배 중인 백성이 절망하고, 민족의 일치가 점점 허물어져 가는 때였다.
오늘 제1독서에서는 보초로서 예언자가 해야 할 일을 명시한다. 보초는 적군이 쳐들어오는 것을 보고 백성에게 비상 나팔을 불어주어야 한다. 만일 보초가 비상 나팔을 불지 않아서 백성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가 적군에게 목숨을 잃는 사람이 생긴다면 보초는 그 사람이 죽은 책임을 져야 한다. 마찬가지로 예언자는 이스라엘의 보초로서 길을 잘못 가고 있는 죄인에게 옳은 길을 가라고 말해 주어야 한다. 만일 예언자가 죄인을 타이르지 않았다면 그 죄인이 죽은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제 2 독서 : 사도 바오로 서간의 많은 부분은 유다인들의 율법주의와 싸우는 데 할애되어 있다. 그 자신이 그리스도 신자들을 박해했던 경험이 말해 주듯이 이런 율법주의는 사람을 완고한 태도 속에 가두어 버린다는 것을 사도 바오로는 알고 있었다. 주님의 자비로우신 사랑을 발견한 덕분에 그는 이런 율법주의에서 구원받을 수 있었다. 이제 참다운 율법이 무엇인지를 사도 바오로는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이웃 사랑이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율법을 완성했다는 것이다.
복 음 : 오늘 복음의 주제는 일치이다 교회의 구성원들이 한마음으로 기도할 때 어려움을 극복하고 비로소 일치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 가운데 주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쿰란 공동체의 규칙서에도 잘못한 형제에 대한 규정이 있는데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15-17절은 죄인을 공동체에서 즉시 내쫓으려고 했던 열성저인 초대 교회 신자들을 자제시키는 내용이다. 일단 감싸 안으려고 노력하고 형제적 사랑으로 교정하도록 애쓰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앞으로 교회 공동체 안에 존재하게 될 어려움과 분열 상황을 알고 계셨고 또 그런 어려움을 통해서 결국에는 일치로 나아가게 될 것임을 알고 계셨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일치의 직무를 맡기셨다. 제자들은 주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주님께서 이루신 일치의 직무를 계속해야 한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의 말씀은 교회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사명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형제들의 잘못에 대한 단죄가 아니라 대화와 관용으로써 그들을 감싸 안고 받아들임으로써 하느님과 화해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와 유혹에 떨어지기 쉬운 인간 삶의 모습은 평신도나 수도자, 성직자 다 마찬가지이고 누구에게도 예외는 없습니다. 몇 년 전 미국의 아틀란타 대교구 교구장인 유진 마리노 대주교가 비키 롱(Vicki Long)이란 여 가수와 스캔들을 일으켜 환속한 충격적인 사실은 이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당시 뉴스위크(News Week)지에서는 “죄악이 대주교에게도 왔는가?”라는 기사의 제목을 달고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었는데 이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그 누구도 ‘죄’라는 점에서는 예외없고, 항상 ‘죄’와 ‘유혹’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 교리에서는 삼구 즉 영혼의 세 가지 원수는 마귀, 세속, 육신이라고 가르치면서 항상 경계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에제키엘 예언자는 예언자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예언자가 잘못된 형제나 그릇된 길을 가고 있는 자들의 잘못을 이야기해 주지 않고 그들이 잘못했을 때에는 죄에 대한 책임을 지지만, 그렇기 않았을 때에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언자의 예언은 다가올 모든 위험에 대하여 경고하여 제때에 자기 백성들이 삶의 길, 회개의 길을 걷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죄인의 죽음을 원하지 않으시고 그가 회개하여 살기를 원하시는, 자비와 용서의 주님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깨우쳐주어야 할 사명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사명의 완수를 위해서 우리는 모두 공동체로서 책임감과 연대성 아래 서로 충고하고 잘못을 일깨워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갈 때에는 본인도 죄책감을 전연 느끼지 않게 되고 모든 것이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또 본인의 잘못을 깨우치게 하기 위해서는 지혜로운 자세가 필요합니다.
스페인의 아라곤 왕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왕은 신하들을 거느리고 보석상을 찾아갔습니다. 그가 주인과 값을 흥정하고 있는 동안 신하들을 보석들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게를 나섰을 때 보석상이 당황한 얼굴로 뒤쫓아 나왔습니다. 아주 비싼 다이아몬드 하나가 없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왕은 신하들 모두에게 보석 가게로 돌아갈 것을 명령했습니다. 왕은 보석상에게 소금을 가득 채운 항아리를 가져오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신하들에게 각자 소금 항아리에 주먹을 넣었다가 꺼내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한 후에 항아리의 소금을 탁자 위에 쏟았더니 과연 소금 속에서 다이아몬드가 나왔습니다. 왕은 관대한 사람이었으므로 다이아몬드를 훔친 사람이 창피를 당하지 않고 잘못을 뉘우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것입니다. 분명 다이아몬드를 훔친 사람은 왕에게 감사하였을 것이고 진정으로 자기 잘못을 뉘우치면서 개인적으로 왕을 만나 용서를 청했을 것입니다.
남의 잘못을 일깨워 주는 것은 단순한 단죄와 심판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훨씬 넘어서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는 우리가 아무리 다해도 다할 수 없는 의무가 바로 사랑이라고 강조하면서 모든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이 쉬워 이웃 사랑이지 참으로 어렵고 힘든 것이 이웃 사랑입니다. 특히 자기 몸이 고달프고 괴로울 때 사람은 먼저 짜증부터 내게 마련이고 괜히 아무것도 아닌 일에 언성을 높이고 신경질을 부리게 됩니다. 이웃을 위해서 자신의 할 바를 다하고 충고해 주며 사랑으로 감싸주는 사람이야말로 율법을 완성하는 자입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은 특히 이웃의 잘못을 깨우쳐주는 방법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1대 1의 대화, 그것도 안되면 두세 사람과의 그룹 대화, 또 그것마저 안되면 교회에 알리고, 그것도 안되면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간주하라고 말합니다. 교회는 죄 지은 형제에 대한 ‘형제적 충고’를 할 책임이 있지만 그것을 끝내 거부할 때에만 교회 공동체의 일치와 단합을 위해서 그 형제를 제명 처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록 이러한 경우라 할지라도 공동체는 그를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욕하고 비난하기는 쉬워도 기도하기는 참으로 어렵지만 서로 기도해 주는 것이 바로 형제애인 것입니다. 공동체의 일치와 화합에 손상을 끼치는 형제는 공동체의 전체적 이익을 위해 과감히 제거해야 하지만 그 형제의 궁극적 구원을 위해서는 아낌없는 기도를 바쳐야 합니다.
이것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사랑의 정신을 구현하는 사랑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슬퍼해야 할 일이 있으면 함께 울어주고, 함께 기뻐해야 할 일이 있으면 함께 웃어주고 기뻐해야 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바로 교회이기에 교회는 모든 신자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동병상련의 하느님 백성의 모임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중에 어떤 형제가 잘못되었을 때 그를 꾸짖고 비난하기에만 열중하지 않았는지, 나 자신만 옳고 남은 그릇되었다고 스스로 편견에 떨어지는 잘못은 범하지 않았는지 깊이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사랑과 관용의 정신으로 우리 이웃의 잘못을 형제적 충고로 올바로 잡는 데 전력을 다하도록 굳게 결심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