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열심한 신자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 자매님은 매우 신실한 사람이어서 항상 기도하고, 그 기도 안에서 하느님의 응답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 자매님이 어느 건물에 있었는데, 그 건물에 불이 났습니다. 사람들은 얼른 질서있게 대피 하기 시작하였고, 119에도 연락을 했습니다. 그 와중에 이 자매님은 계속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 저희를 살려 주십시오. 지금 저희에게 살 길을 마련해 주십시오.”
사람들이 하나 둘 빠져 나갈 때에도 그 자매님은 계속 기도를 했습니다. 자기 같이 열심한 사람의 기도는 분명히 들어 주실 거라 확신하면서 더욱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대피를 하다가 도무지 대피할 생각은 하지 않고, 이렇게 기도만 드리는 자매님을 보고서 얼른 다그쳤습니다. “지금 대피하십시오. 지금 대피하시면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그 자매님 왈, “아닙니다. 하느님은 저의 기도를 들어 주셔서 저희를 살려 주십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사람들이 거의 빠져 나갔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그 자매님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대피하셔야 합니다. 급합니다.” 그 자매님은 여전히 이 말에는 귀기울이지 않고, 계속 기도하면서 분명히 하느님께서 살려 주시리라고 확신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사람이 “지금 대피하지 않으면 죽게 됩니다. 얼른 대피하십시오.”라고 이야기 하였지만, 그 자매님은 끝까지 하느님의 기적적인 손길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불에 타 죽었습니다.
그 자매님은 죽은 다음에 하느님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매님은 하느님께 따졌습니다. “하느님, 당신은 겨자씨 만한 믿음을 가진다 해도 기적을 베풀어 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제가 그토록 열심하신 것도 잘 아시고, 제가 건물에 불이 났을 때 얼마나 기도 하였는지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저에게 도움의 손길 한 번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하느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말이냐.. 나의 딸아..? 나는 너에게 세 번씩이나 그 건물에서 피신하라고 사람들을 보냈었단다. 그런데 너는 나의 말을 듣지 않고, 계속 동문서답식으로 기도하더구나.”
예… 어쩌면 우리의 기도도 비슷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손길은 기적적인 것으로만, 영화에서 등장하는 멋진 사건들처럼으로만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평범한 우리의 일상 안에 하느님의 손길은 담겨져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너무나 무심하게 지나치기 쉬울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하십니다. “이 세대가 기적을 구하지만 요나의 기적밖에는 따로 보여 줄 것이 없다.” 그토록 기적을 많이 베푸셨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렇게 많은 기적을 베푸셨어도 그 사람들에게는 전혀 기적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마음이 굳었으면 그렇겠습니까? 얼마나 예수님 말씀따나 악하였으면 그 기적들을 보고도 하느님께 눈물을 흘리며 돌아가지 않았겠습니까?
이제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기적은 요나의 기적입니다. 요나가 사흘 동안 고래의 뱃 속에 들어갔다가 살아나 이방인들인 니느웨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여 회개하도록 하였던 그 기적말입니다. 예수님도 역시 저승에 가시어 사흘만에 부활하시고,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회개하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요나의 기적은 바로 회개의 기적이요, 변화의 기적이고, 빠스카의 기적입니다.
그렇습니다. 빠스카의 기적입니다. 빠스카란 곧 건너감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기적은 죽음에서 부활로, 미움에서 사랑으로, 다툼에서 화해로, 고통에서 참 평화로 건너가는 빠스카의 기적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열기만 하면 우리가 만나는 모든 것들이 이 빠스카의 기적을 불러 일으키는 하느님의 손길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김은진: 요나보다더 큰이의파스카기적 [09/15-19: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