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이야기는 피해가자…

 

예전에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왜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이지?”


그러자 친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려운 이야기는 피해가자….”


세례자 요한이 왜 엘리야일까요?


 


 오늘 1독서에서는 위대한 예언자 엘리야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불마차를 타고 불소용돌이 속 하늘로 올라갔는데 심판날에 하느님의 분노가 터지기 전에 그 분노의 불을 끄고 아비들의 마음을 자식에게로 돌리며 야곱의 지파들을 재건하리라고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말라기 예언서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라기 4,5-6


이 야훼가 나타날 날, 그 무서운 날을 앞두고 내가 틀림없이 예언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엘리야가 어른들의 마음을 자식들에게, 자식들의 마음을 어른들에게 돌려 화목하게 하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세상을 모조리 쳐부수지 아니하리라.




오늘 복음에서는 그 엘리야가 바로 세례자 요한임을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인가?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가 아니라면 즉 하느님의 약속이 실현되지 않았다면 예수께서 메시아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엘리야가 와서 모든 준비를 갖추어 놓으리라는 것에 대해서 동의하셨지만 엘리야가 이미 왔는데도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놀라운 단정을 덧붙이십니다.




이것은 바로 세례자 요한의 행적을 보고서 그가 바로 엘리야임을 알아보았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길을 고르게 하고 골짜기를 메우며 언덕을 낮춤으로써 모든 것을 준비한 세례자 요한이 바로 엘리야의 정신과 능력을 가지고 주님보다 먼저 온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손에 키를 드시고 타작 마당에서 곡식을 가려 쭉정이는 불에 태우고 알곡은 하느님의 곳간에 들이시기 위해 이미 와 계신 더 강한 자의 도래와 마지막 날을 선포한 세례자 요한이 이름은 엘리야가 아니었지만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백성들을 준비시킨 마지막 때의 예언자로서 엘리야의 임무를 수행하였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러한 “시대의 표징”을 알아보지 못했다면 메시아의 표징을 알아볼 자세는 더더욱 되어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결국 예수님께서 고통을 당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입니다.


요한의 죽음은 단순히 한 왕의 방자한 변덕과 경솔한 맹세의 결과가 아니었으며 요한은 헤로디아의 증오의 희생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한 예언자가 아니라 죽음을 통해 메시아적인 구원의 준비자가 된 것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요한은 예수님과 극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땅에 묻힌 다음에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밀알처럼(요한 12,24) 예수께서도 죽으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눈을 들어 바라봅시다. 귀를 열어서 들어봅시다. 내가 보려고 조금만 노력하면, 내가 들으려고 조금만 노력하면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임을, 그리고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수 있을 것입니다. “회개하라”는 그 말씀에, “하늘나라가 다가왔다”는 그 말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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