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제5주일 강론

 

나해 연중제5주일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연중제 5주일입니다.


오늘 1독서에서는 사탄의 시험을 받고 있는 욥이 너무도 괴로워서 밤새 뒤척거리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병의 상태가 너무도 심해서시간이 전혀 지나지 않는 것 같고, 차라리 죽어서 이 처절한 고통에서 벗어나고픈 염원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속에서도 욥은 하느니께서 자신을 사랑하고 계심을 알고 또 믿고 있습니다.




오늘 2독서에서는 사도 바오로가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자랑거리가 될 수 없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며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화가 미칠 것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일이든 할수 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온갖 병자들을 고쳐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열병으로 누워있는 시몬의 장모, 병자와 마귀들린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치유해 주심으로써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찾게 됩니다.




우리는 오늘 독서와 복음을 통해서 고통과 치유에 대해서 묵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의 어떠한 고통도 자신의 고통보다는 크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다리가 잘리는 그러한 고통이 있더라도 나의 손에 생긴 작은 상처의 고통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고통을 호소하는 모든 이들의 병을 낫게 해 주십니다. 그러나 그들이 바라는 것은 육체적인 치유였지만 예수님께서 치유하신 것은 영혼과 육신이었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치유였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약이 입에 쓴 것처럼 예수님을 따른 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지금 어려울수가 있습니다. 고통스러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고통은 그분앞에서면 깨끗하게 치유될 것입니다. 오히려 그 고통이 영광스럽게 나를 만들어 줄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오로도 모든 이가 예수님으로부터 치유를 얻을 수 있도록 어떠한 수고라도 할 각오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나에게는 지금은 욥처럼 그렇게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오고 있을지 모릅니다. 어느 누가 위로해 줘도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궁극적으로 바라본다면 고통이 아니라 오히려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 고통을 기쁨으로 바꿔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고통이 주님께서 나를 시험하는 것이라면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이 글은 카테고리: 복음 나눔 8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