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사순제4주일
오늘은 사순제4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에 대해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시켜 구원하시려는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빛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어둠 속에 살고 있는 이들을 단죄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빛을 주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먼저 빛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 묵상해 봅시다.
빛을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사람입니다. 빛은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밝혀 주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분간할수 있도록 해줍니다. 빛은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그 빛에 비추어서 내가 얼마만큼 깨끗한지를,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빛을 사랑하는 사람, 즉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아는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을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고서야 누가 선생님처럼 그런 기적들을 행할수 있겠습니까?”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새로 태어나 마음과 생각과 행동과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철저하게 바꾸라고 요구하시는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렇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빛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예수님 앞에 내놓고 그것이 예수님께 가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과감하게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안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것입니다. 나만을 생각하는 마음을 버리고 내 안에 예수님으로 가득 채울 때 나는 예수님안에서 새로 태어날 수 있고, 빛을 따라 살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어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묵상해 봅시다.
잘못한 사람들의 특징중의 하나가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애써 감추려고 하고 내가 혹시 드러날까 노심초사 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또한 누군가로부터 자신의 행동을 제지받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그들은 자신들의 가치기준에 사로잡혀서 남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들의 조언을 듣기 싫어하고 만나기도 싫어합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성당가기 미안하고 예수님앞에 나서기 미안한 마음과 같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멸망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인간이 단죄와 처벌을 받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주어 구원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제사를 통하여 구원을 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둠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전의 자신의 것들을 버리기 싫기에, 더 나아가 그것들에 집착하기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심을 생각하려 하지 않고 그분의 사랑의 손짓에 얼굴을 돌립니다.
그런데 어째서 주위의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눈이 부실 정도로 밝게 빛나고 있는데 어둠 속에 머물러 있고자 하는가? 결국 자신의 것을 버리지 못해서입니다. 새로나기를 두려워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나게 될 때 우리는 어둠의 자녀가 아니라 빛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빛의 자녀로서 살아갈 때 우리는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무한한 사랑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 모두 빛의 자녀로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예수님 앞에서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