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테라노 대성전 봉헌축일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축일


                                             


오늘은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로마의 라테라노라는 곳에 대성전을 세워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라테라노 대성전은 로마의 주교인 교황의 주교좌입니다. 이 대성전은 교회가 모진 박해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인 320년경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세웠습니다. 4세기와 5세기의 부활 성야에는 수많은 로마인들이 이 대성전에서 세례와 견진을 받고 성찬례를 거행하면서 그리스도의 한 지체가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교황이 성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를 이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집전합니다. 그리고 세상 곳곳에 퍼져 있는 로마 예식을 따르는 모든 교회는 로마의 주교좌 봉헌 축일인 오늘 하나인 그리스도 교회의 신비를 거행합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성전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1독서에서 에제키엘 예언자는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보게 됩니다.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은 메마를 벌판으로 흘러내려 사해로 들어가고, 이 물이 짠 사해로 들어가면 사해의 물마저 단물이 되게 합니다. 그리고 이 강이 흘러 들어가는 곳이면 어디서나 온갖 생물들이 번창하며 살 수 있게 되고, 새 과일과 푸른 잎이 넘쳐흐르게 됩니다.




오늘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우리가 하느님의 건물임을 말씀해 주십니다. 건물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복음을 전하는 이들이 능숙한 솜씨로 우리 하나 하나를 벽돌로 삼아 하느님의 성전을 짓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바로 하느님의 성전이며, 하느님의 성령께서 머무시는 곳입니다. 또 내가 형제를 죄 짓게 하면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는 것이라는 것을 사도 바오로는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시는 내용입니다. 하느님의 집이 장사꾼들의 소굴로 바뀐 성전을 예수님께서는 다시 하느님의 집으로 바꿔 놓으십니다. 기도하는 집으로 바꿔 놓으십니다.




오늘 우리는 독서와 복음을 통해서 첫째, 성전의 참된 의미와 둘째, 성전을 하느님 아버지의 집으로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하셨는지에 대해서 알아보고  셋째로, 성전을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묵상해 봅시다




먼저 성전의 참된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은 하느님 아버지의 집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계시는 집이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곳이기에 그 성전은 거룩한 곳입니다. 그 거룩한 곳에서 흘러나오는 것들은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1독서에서 에제키엘 예언자가 말씀하시듯이,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은 사해의 소금물을 단물로 바꿔 주고, 메마른 황무지에 온갖 나무들이 자라고 열매들을 풍성하게 만듭니다.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거룩한 성전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축복을 받으며 흘러나온 물은 바로 우리들 입니다. 하느님의 거룩함에 물든 우리가 세상 안으로 흘러 들어가 서로 불목 하는 이들을 화해하게 만들고, 세상 어두운 곳에 희망을 주게 됩니다. 불신과 불의로 가득 찬 곳을 신뢰와 사랑이 가득한 곳으로 만듭니다.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이고, 내가 해 왔던 일입니다. 즉 생명을 주는 일을 하게 하는 것이고, 하느님께서 보시기 좋게 창조하신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을 하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하느님의 창조사업을 계속 이어가는 것입니다.




어느 신앙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왜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지 않을까? 같은 직장에 다니고, 한 울타리 안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는데 엘리베이터를 타도 같은 부서의 사람이 아니면 인사도 하지 않으니…”


그래서 그는 한가지 실천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내가 먼저 인사를 하자.” 그는 먼저 인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문에 들어설 때, 수위 아저씨에게 정중히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했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안녕하세요”…


그렇게 몇 달을 하자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인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문을 들어설 때는 수위 아저씨들이 먼저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인사를 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도 이제는 먼저 인사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알고 보면 옆 동에 사는 사람이었고, 같은 성당에 다니는 사람이었지만 서로 모르는 체 지나치면서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렇게 한 사람의 노력을 통해서 그 회사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많은 예비자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그의 삶을 본받기 위해 많은 이들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신앙인)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갖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황무지를 옥토로 만들어 많은 열매를 맺게 한 것입니다. 한 사람의 힘으로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은 예수님의 죽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심으로써 그 피로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사해의 짠 물(죽을 운명을 지닌 우리)을 단물(구원받을 하느님의 자녀)로 바꾸고, 황무지(불신)를 옥토(믿음의 삶)로 바꾸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살아계신 성전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나는 생명의 물로 세상 안으로 흘러 들어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성전 정화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우리도 그렇지만 유다인들에게 있어서 성전은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특별한 장소입니다. 온 세계의 유다인들은 봉헌물과 희생 제물을 성전에 바쳤습니다. 그 봉헌물과 희생 제물을 사제들이 관리하고 있었으며, 그것은 정말 손쉽게 돈을 벌어들이는 좋은 수단이었습니다. 기도하는 집인 성전이 돈벌고 권력 잡는 짓을 경건한 예절로 변장시키는 장소로 둔갑해 버린 것입니다.


성궤 부근의 회랑에 매어 놓은 소, 양 파는 점포, 광장 어디에나 벌려 놓은 환금상 등에 의해 이 거룩한 성전이 소아시아의 색채를 띤 아수라장 같은 큰 장터가 되어 있었습니다. 순례자들은 성전에 바칠 제물(부자의 경우 소 한 마리 혹은 양, 가난한 사람의 경우는 비둘기 한 마리)과 성전세를 마련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성전세는 성전 세겔로 바쳐야 했는데 시중에는 로마 화폐만을 사용했기에 성전에서는 환전상이 필요 했습니다.


그런데 사제들은 거룩한 곳을 더럽히는 장사꾼들의 상거래를 말리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 상거래를 통해 큰 돈을 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셔나는 예루살렘 멸망 전의 한 신심 깊은 율법학자의 탄식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그들은 사제이지만 그의 자식들은 재무관이었다. 그들의 사위는 성전의 검사관이며 그들의 하인들은 우리들에게 달려들어 몽둥이로 때렸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익금의 상대 부분을 세금 바치듯 사제들에게 바치는 장사치들을 쫓아냄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을 짓누르고 빼앗는 종교 지도자들을 고발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는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하고 꾸짖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서 왜 당신께서 그렇게 하셨는지를 설명하십니다. 성전은 하느님의 집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부르십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내 아버지”라고 부르시는 것을 통해 당신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세례자 요한이 메시아에 대하여 선언한 것이 바로 당신임을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통해서 유다인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더욱 죽여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합니다.




쩌렁쩌렁한 예수님의 꾸지람을 들은 상인들은 당황하여 성전에서 물러갔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은 이 모습을 보고 크게 감동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무 거리낌 없이 단행하신 강한 이 정화 행동은 시편 69편 9절에서 “당신 집을 향한 내 열정이 나를 불사릅니다”라고 한 것의 실현이라고 생각게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예수님의 이러한 열정은 내가 본받아야할 열정입니다. 성전이 기도하는 집이 될 수 있도록 내 열정을 바칠 때 수많은 사람들이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기 위해 성전으로 향할 것 입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행동에 대해서 시비를 걸어옵니다. 즉 자신들이 인정할 만한 표징을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하고 대답하십니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생각하고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데 사람들은 돌로 지은 성전, 46년이나 걸려서 지은 성전을 생각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몸이 성전임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몸을 허물도록(죽음으로) 자유롭게 내주지만, 사흘 안에 다시 세우실(부활) 것입니다. 그리고 찬미와 경배를 드릴 성전이 예수님 자신임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이 기도문 안에 잘 나타나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찬미와 경배와 감사는 예수님 안에서 시작되고,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예수님과 함께 드리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성전을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묵상해 봅시다


바오로 사도가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들 자신을 하느님의 새로운 성전으로 이해했습니다. 이 성전은 돌로 된 죽은 성전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기초가 되시고 성령께서 계시는 참으로 거룩한 산 성전입니다. 그런데 산 성전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들이 필요합니다.


성전은 거룩한 곳입니다. 성전은 기도하는 곳이고, 하느님 아버지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님의 성전이 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나 자신이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나 자신이 언제나 하느님 아버지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만한 마음으로 형제 자매들을 질투하고 시기하고 공동체를 분열시키지 말고, 형제 자매들에게 힘이 되어 그들 모두와 함께 한 마음 한 목소리로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나 자신이 거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나 자신이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성전을 자주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 앞에서 겸손되이 나를 돌아보고, 부족한 것을 용서 청하며 그분의 사랑을 받고 성전에서 나올 때 나는 성전에서 흐르는 물이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물은(거룩한 삶과 기도하는 삶을 살고 있는 나) 성전을 더욱 거룩하게 만들 것입니다.




실천


1. 매일 미사에 참례하기


2. 내가 신앙인이라는 것 잊지 않고 신앙인으로서 행동하기.


3. 친절하게 인사하기


4. 성당에서 경건해 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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