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함께 있지 않는 사람은…

 

나와 함께 있지 않는 사람은…


어느날 한 형제가 신부님을 찾아와서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부님! 사람이 그래도 되는 것입니까?”


신부님은 그렇게 말하는 형제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왜 그러십니까?”


“아 글쎄. 제가 오해를 받아서 욕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를 모르는 사람까지도 저를 욕하지 뭡니까? 저는 그 사람 알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사람이 제 욕을 하고 다니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살다보면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자기가 한 일은 모두 옳은 일이고, 남이 한 일은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저런 구실로 그를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치 않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번도 깊이 대화 해본 적이 없으면서도 비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저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형제들을 칭찬하기 보다는 형제들을 비방하는 말을 많이 하고, 형제들을 격려하는 말보다는 형제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인 듯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병자를 치유해 주셨습니다. 군중들은 놀랐지만 더러는 마귀 두목의 힘을 빌려서 쫓아냈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마귀는 자기가 사로잡은 사람을 벙어리로 만들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 못하는 사람도 결국 마귀에게 사로잡혀서 그렇게 말 못하는 것이 아닐까?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거짓을 말하는 것도 결국 마귀에게 사로잡혀서 그러는 것이 아닐까?


형제를 칭찬하지 못하고 형제를 비방하는 것도 마귀에게 사로잡혀서 그러는 것이 아닐까? 한 두 번 만나보고 그를 욕할 수 있는 것도 마귀에 사로잡혀서 그런 것이 아닐까?



치유 받은 사람의 기쁨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그 방법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것도 결국 마귀 들린 사람의 행동이라면, 형제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판단하고 험담하는 것 또한 마귀 들린 사람의 행동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말하기를 “그는 귀신 두목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귀신들을 쫓아낸다” 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비방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마르코 복음에서는 율법학자들이었고, 마태오 복음에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느 편이든 그들은 그 학식 때문에 민중의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들의 비방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그들의 중상모략은 백성들이 예수님께로 향하지 못하게 만들고, 자신들에게로 향하도록 만들려는 의도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사람들은 (예수를) 시험하여 당신에게서 하늘로부터 (오는) 표징을 요구하였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사람들입니다. 병자를 고쳐주신 예수님께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다른 것을 보여 달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그 기적의 가치를 부정하고 보다 적절한, 그리고 그들의 눈으로 보아 부정할 수 없는 하느님의 증명을 즉 하늘에서 오는 기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들에게 그와 같은 징표를 보여 주면 믿을 것인가? 그들은 만일 그러한 징표를 보여 줄지라도 또 무슨 구실을 마련하여 빠져 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닫힌 마음에 요나의 기적만을 보여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루가11,29-30).




그런데 이들의 행동은 마치 광야에서 예수님을 유혹하고 있는 마귀의 모습을 떠 올려 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의 요구는 광야에서 예수님을 유혹하고 있는 악마와 같은 모습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당신이 만일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 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만일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뛰어 내려 보시오..”




결국 백성의 지도자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마귀의 유혹에 빠져 있음을 스스로 드려내고 있습니다.


벙어리가 되었던 사람은 마귀로부터 자유로워졌지만 백성의 지도자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결국 마귀의 노예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알아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스스로 갈라지면 망하고 집이란 집은 다 무너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반대자들의 본심을 꿰뚫어 보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의 능력과 악령의 능력이 대립되어 있는 것이라면 어느 편인가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를 들어가며 설명을 해 주십니다. 만일 자기가 사탄의 힘으로 사탄을 쫓아낸다면 사탄은 제 자신에게 칼을 휘두르고 있는 셈인 것입니다.


만일 마귀가 예수님의 힘을 돕고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그들 나라를 망치는 것이므로, 자기 자신의 나라의 멸망을 바라고 있는 셈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유다인들도 구마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구마활동이 하느님의 능력으로 한 것이라면, 왜 예수님의 경우에만 마귀의 능력을 빌어 했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만일 그들이 성실하다면, 예수님의 능력도 하느님에게서 왔다고 해야 할 것이고, 그것을 부정한다면 그들의 구마활동도 마귀의 힘을 빌어 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나와 함께 있지 않는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것이며,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흩어 버리는 것입니다.


사탄과의 싸움에 있어서 구경꾼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또한 예수님 편에 설 것인가? 마귀의 편에 설 것인가?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 편에 서서 함께 싸우는 사람만이 추수할 때 영원한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귀의 편에 선 사람들의 결말은 그와는 반대로 영원한 벌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사랑이신 주님!


오늘 당신의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다른 이들의 선의의 행동이나, 좋은 표양을 제가 어떻게 평가해 왔는지, 혹시 깎아 내리고 있지는 않았는지 살펴보게 하소서


그리고 당신께서는 오늘 저에게 당신 편에 설 것인지, 마귀 편에 설 것인지를 결정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당신 편에 섰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제 안에 가득찬 마귀의 힘은 저를 벙어리로 만들어 당신 편에 섯다는 것을 증언하지 못하게 합니다. 제 입을 열어 주시어 제가 당신의 사람임을 외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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