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연중 제 19주일 ..하느님께로 향하는 사람들은…

 



하느님께로 향하는 사람들은…


<말씀연구>


오늘 복음에서는 두 가지의 이야기, 즉“재물을 하늘에 쌓아라”는 것과 “충성스러운 종과 불충한 종”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느님께로 향하려는 나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2  두려워하지 마시오, 작은 양떼여! 사실 여러분의 아버지께서는 여러분에게 기꺼이 나라를 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작은 양떼는 제자들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착한 목자이시지만 그 음성을 듣는 사람은 적습니다. 수가 적으니 하느님 나라를 전하는데 있어서 많은 어려움이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두려워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어려움을 겪는다 할지라도 하느님께서 주시기로 하신 그 나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33  “여러분의 재산을 팔아 자선을 베푸시오.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해어지지 않는 돈주머니와 축나지 않는 보물을 하늘에 마련하시오. 거기에는 도둑이 가까이 오지도 않고 좀이 쏠지도 않습니다.


하느님 나라만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다른 것에 마음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 깊은 신뢰심을 가지고, 하느님께 더욱 의지하기 위해 마음을 흔드는 것들에 집착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보이는 재물에 관심을 갖지 말고 보이지 않는 보물에 관심을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자유로운 청빈은 누구나 다 지켜야 하는 명령은 아닙니다. 하지만 누구나 해야 할 일은 세상 사물에 집착하지 않는 것, 그 재물을 목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34  사실 여러분의 보물이 있는 곳, 거기에 여러분의 마음도 있을 것입니다.”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만일 이 세상 사물에다 자기 재산과 목적을 둔다면 마음도 그것에 매어 있으므로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35  “여러분의 허리는 동여매고 등불은 켜놓고 있어야 합니다.


허리에 띠를 띠라는 이야기는 소아시아의 옷을 만드는 법과 입는 법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들의 옷은 길었기 때문에 여행을 할 때나 활동을 할 때에 옷자락을 들어 허리에 띠를 매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허리에 띠를 띤다는 것은 일을 하기 위한 준비 혹은 일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뜻합니다.


등불을 켜 놓는 것은 밝은 데서 잘 보며 경계하라는 뜻입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주인을 항상 기다리고 있는 종들처럼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이 세상 사물에서 이탈해야 할 것이며, 모든 소망을 하늘나라에 기울여야 한다고 가르치신 후, 지금은 착한 뜻을 가지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 잘 맞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한다고 덧붙이십니다.




36  여러분은 자기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과 같아야 합니다. 주인이 언제 혼인잔치에서 돌아오든지, 와서 (문을) 두드리면 즉시 열어 주려고 말입니다.


히브리인은 밤늦게 혼인잔치를 벌이는(마태25,1) 습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인을 영접하기 위해 종들을 등불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주인이 집을 비우고 있을지라도 돌아오는 주인을 맞아들이기 위해 모두 밤을 새워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이요, 심판하러 오시는 예수님을 깨어서 영접해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들은 오실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아무도 그분이 언제 오실지는 알지 못합니다.


예전에 부모님이 장에 가시면 아이들은 부모님을 기다리곤 했습니다. 부모님께서 장에서 맛있는 것을 사오시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부모님들이 혼인집에 가시면 꼭 주머니에 사탕이며 떡 등을 싸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부모님이 언제 오시나 졸면서 기다리곤 했습니다. 생각나시죠? 어릴 때 나의 모습을.


(그리고 이런 기회를 통해서 부모님께 전화 한번 드리세요. 부모님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먹을 것을 주섬주섬 싸오셨잖아요. 지금 같으면 부끄러워서라도 안할 텐데 말입니다.)


깨어 기다린 아이들이 사탕과 떡 등을 받아먹는 것처럼, 예수님을 깨어서 기다린 제자들도 주님께로부터 축복을 받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그 축복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식사 시중을 들어 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 생각이랑 전혀 다릅니다. 종이 주인을 맞이하고 대접해야 하는데 오히려 주인이 종을 대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을 깨어 기다린 이들에게 당신 영광의 혼 몫을 부여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자들을 영예롭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37  복되도다,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기다리고) 있는 그 종들은! 진실히 여러분에게 이르거니와, 주인이 (허리를) 동여매고는 그들을 (식탁에) 자리잡게 하고 다가와서 그들에게 시중을 들어 줄 것입니다. 38  주인이 밤 이경이든 삼경이든 와서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 종들을) 보게 되면 그들은 복됩니다!”


깨어 기다리는 종들은 행복합니다. 그들이 받을 상이 더 할 나위 없이 큰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주인은 그의 식사 시중을 들어 줄 것입니다. 우리가 예상하는 바와는 정 반대의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종이 주인처럼 대접받으며 주님이 그의 종처럼 처신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깨어 있는 이들에게 당신 영광의 한 몫을 부여하십니다. 하느님 나라의 영광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나라에 환영하여 맞아들이는 이들을 위한 잔치에 비유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손님(깨어 기다렸던 자녀들)에게 시중을 들어 주심으로써 그들을 영예롭게 하실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처음의 그 아름다운 마음이 무뎌집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게 되고, 누가 열심히 하려하면 비웃거나 방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찰과 통회를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늘 새롭게 하고 언제나 처음처럼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바로 주인을 깨어 기다리는 자세입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할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마지막 날에 큰 축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또한 축복을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당연히 해야 될 몫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분을 찬미하고 그분께 영광을 드리며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나의 삶이어야 합니다.




예전에 신문에 자신의 개를 위해서 막대한 수술비를 지출한 남자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 개는 좋은 애완용 개도 아니었지만 그가 퇴근을 해서 대문을 열면 항상 그 개가 반겨 줬다고 합니다. 주인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그쪽을 향해서 고개를 돌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가족들은 그 개처럼 그를 맞이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공부하기에 바쁘고, 아내는 텔레비전이나 모임에 바쁘고, 그리고 더러는 피곤해서 먼저 잠자리에 누워 있고…


그래서 언제나 변함없이 그를 맞아 주던 존재가 개였기에 그 개가 아팠을 때 막대한 돈을 들여서 그 개를 고쳐 주었다는 것입니다. 주인을 향했던 그 마음이 보상을 받았던 것입니다…






38  주인이 밤 이경이든 삼경이든 와서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 종들을) 보게 되면 그들은 복됩니다!”


밤은 4시경으로 나뉘고, 제1시경은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제2시경은 9시부터 12시까지, 제3시경은 12시에서 새벽 3시까지, 제4시경은 그때부터 6시까지였습니다.




39  “여러분은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곧 도둑이 어느 시간에 올는지 집주인이 안다면 자기 집을 뚫도록 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 40  여러분도 준비하고 있으시오. 사실 여러분이 생각지도 않은 시간에 인자는 옵니다.”


신앙인들은 늘 깨어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도둑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것을 깨우쳐 주십니다. 도둑은 기초 없이 맨땅에 세워진 집의 담 밑에 구멍을 파고 들어오려 할 때, 집주인이 그것을 알고 있었다면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들도 주님께서 언제 오실지를 정확히 안다면 틀림없이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오시리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가 언제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늘 깨어서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들에게 요청되는 태도가 비유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집주인이 집을 멀리 떠나게 되었습니다. 주인은 자기가 없는 동안을 대비하여 관리인에게 집안을 제대로 보살피도록 책임을 맡겼습니다. 관리인은 주인이 아니라 다만 관리하는 사람일 뿐이고 따라서 주인이 바라는 대로 행동해야 하기 때문에 충성스럽고 슬기로워야 합니다. 또한 관리인은 주인이 예고 없이 돌아와 관리보고를 요구하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슬기로운 사람의 모습입니다. 관리인이 양심적으로 일한다면 주인은 그에게 자신의 모든 재산을 맡길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가 부당하고 사악하게 일을 하여 집안사람들을 못살게 굴고 자신의 지위를 이기적으로 남용하여 멋대로 먹고 마신다면, 주인은 그에게 엄한 벌을 내릴 것입니다. 페르시아의 풍습에 의하면 칼로 전신을 동강을 냈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책임을 맡기셨습니다. 나는 관리인입니다. 어떻게 관리하고 있습니까? 나는 슬기롭고 충성스러운 관리인입니까?




39  “여러분은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곧 도둑이 어느 시간에 올는지 집주인이 안다면 자기 집을 뚫도록 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 40  여러분도 준비하고 있으시오. 사실 여러분이 생각지도 않은 시간에 인자는 옵니다.”


신앙인들은 늘 깨어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도둑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것을 깨우쳐 주십니다. 도둑은 기초 없이 맨땅에 세워진 집의 담 밑에 구멍을 파고 들어오려 할 때, 집주인이 그것을 알고 있었다면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들도 주님께서 언제 오실지를 정확히 안다면 틀림없이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오시리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가 언제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늘 깨어서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41  이에 베드로가 “주님, 이 비유를 저희에게 말씀하십니까, 혹은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십니까?” 하고 여쭈었다.


깨어 준비하고 있으라는 엄한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그것이 자신들에게만 해당되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지에 대해서 예수님께 묻습니다. 제자들은 당연히 그렇게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자들의 할 일은 자신들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깨어 있을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포함될 것입니다.


나를 위해 기도하는 이가 있습니다. 나를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이끌어줌에 거절하지 말고 “예”하고 응답할 때 나는 깨어서 주님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42  그러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주인이 자기가 돌봐야 할 아랫것들을 청지기에게 맡겨 제때에 밀을 나누어 주게 한다면 어떻게 하는 사람이 과연 충실하고 슬기로운 청지기이겠습니까? 43  복되도다, 제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그렇게 하고 있는 그 종은! 44  참으로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주인은 그에게 자기 재산을 모두 (관리하도록) 맡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직접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되물으십니다. 그 물음은 명백히 답을 해 주고 있습니다. 곧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 모든 제자의 의무라면, 교회를 지도하고 다스려야 할 자리에 앉아 있는 이에겐 말할 나위가 없다는 것입니다.


관리인은 보통 노예들보다는 좀 높은 권위를 가지고 있지만 노예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로 집안 살림을 맡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충성스럽고 슬기로운 관리인을 말씀하십니다. 주인의 재산을 지키기 위한 성실과 그것을 관리하기 위한 현명한 관리인. 그런 관리인에게 주인은 모든 것을 맡길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도들을 포함한 모든 이들은 충성스럽고 슬기로워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관리인으로서 셈을 바쳐야 한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45  그러나 만일 그 종이 마음 속으로 ‘내 주인은 늦게 오시는구나’ 하면서 하인들과 하녀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고 술에 취하기 시작한다면 46  예기치 않은 날, 짐작도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들이닥쳐서 그를 처단하고 그에게 불충한 자들이 받을 몫을 줄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언제나 유혹이 있습니다. 관리인에게 유혹은 바로 “주임이 더디 오시겠지”라는 것입니다. 그 유혹에 넘어가게 되면 불충한 종의 모습으로 변신하게 됩니다. 오늘날의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주님의 다시오심을 기다리고 있으면서도 전혀 기다리는 사람처럼 행동하지도 않고, 준비하지도 않고, 안 오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엄한 벌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처단은 두 동강을 낸다는 말인데 여러 가지로 번역되었습니다. 예로니모는 비유적인 뜻으로 “거룩한 사회에서 쫓겨난다”, 곧 파문된다고 해석하였고, 어떤 이는 채찍질을 당한다고 하였고, 혹은 베어 버린다고 풀이한 이들도 있습니다. 요컨대 사형에 처한다는 뜻인데, 비유의 전체적인 뜻으로 보면 영원한 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다 언젠가는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상을 받을 사람도 있겠고, 벌을 받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 기준은 받은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였느냐? 그렇지 못하였느냐로 결정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우리들은 누구나 다 항상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이 할 마음의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47  자기 주인의 뜻을 알고도 그 뜻대로 준비하지도 않고 행하지도 않은 그런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입니다. 48  그러나 (주인의 뜻을) 알지 못한 사람은 매 맞을 만한 짓을 했어도 매를 적게 맞을 것입니다. 누구든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실 것이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더욱 더 청하실 것입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 있으면서도 따르지 않은 종은 엄한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이 더 큰 벌을 받는 것 또한 당연한 것입니다. 매를 맞는 다는 것은 보통 종들이 받는 벌인데 여기서는 내세의 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생각과 계획을 전혀 전해 받지 못한 사람은 벌을 좀 덜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벌을 맏는 것은 마찬가지 입니다. 왜냐하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많이 알고 있으면서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더 풍부한 지식을 받았기에 그들에게는 더 많은 것이 요구될 것이고, 더 큰 축복이 따를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잘못을 저지른다면 더 큰 벌을 받은 것은 당연합니다.


성서에 대해서 마땅히 공부해야 하고, 교리에 대해서 마땅히 공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공부하지 않는 사람, 그래서 지키지 못한 사람도 벌을 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아서 실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알면서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당연히 더 큰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공부할 기회를 미루지 맙시다. 함께 공부하고 실천하여 하느님나라에서 큰 복을 함께 누려야 하겠습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깨어있는 삶(늘 준비하고 있는 삶)은 어떤 삶이며, 내가 주님께 바라고 있는 것은 어떤 것인지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2. 만일 지금의 상황에서 주님께서 오신다면 나는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 내일 주님께서 오시겠다고 하신다면 나는 주님께 어떤 말씀을 드릴 수 있을까요?




3. 당신은 복된 사람입니까? 어떤 사람이 복된 사람일까요? 어느 분은 우스게 소리로 “열심히 놀아도 애들 잘 크고, 가정 화목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을 합니다. 하긴 그렇습니다. 애들 잘 크고, 가정 화목한 것 보다 더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행복이 현세에서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 가서도 행복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녀들이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잡는다 하더라도, 남편이 돈 많이 벌어오고, 능력 있다 하더라도 그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그 가정이 정말 행복한 가정이겠습니까?






4. 나는 슬기로운 종입니까? 어리석은 종입니까?




5. 하느님께서 나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어떻게 무엇을 실천하기를 바라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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