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대림 제1주일 말씀연구

 

너희는 준비하고 깨어 있어라


<말씀연구>


이제 촛불이 하나 켜졌습니다. 하나씩 촛불을 밝혀 들고 우리는 다시 오시는 주님을 기다립니다. 기다리기 위해서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깨어 있는 다는 것. 그리 쉬운 것은 아닙니다. 깨어 있다가도 그것이 어느 순간 잠들어 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마음먹은 대로 움직였으면 좋겠는데 그것이 잘 안될 때가 있습니다. “오늘은 이것을 해야지.”라고 생각하고 있다가도 잊어버리고 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마음이 없어서인 듯 합니다. 대림 시기를 맞이하여 깨어있는 내가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오실 때를 말씀해 주십니다. 언제 오실지에 대해서가 아니라 오실 때 어떻게 오실지를, 그리고 어떻게 하실 지를…, 그리고 말씀해 주십니다. “늘 깨어 있으라고…”




37  노아 때의 일을 생각해 보아라.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바로 그럴 것이다.


노아의 홍수! 참으로 불행했던 인간의 역사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죄로 인하여 죽음을 당해야만 했던 사람들! 노아의 말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였다면 그 배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을. 사람들은 노아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랬으니 당연히 하느님의 말씀도 듣지 않았습니다.


노아는 홍수가 날 것을 알고 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노아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벌을 자초했습니다. 사람들은 무관심 속에서 쾌락만을 얻으려고 골몰하였고, 결국 그렇게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온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씀은 누군가를 통해서 말씀하신 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희망적인 것은 누군가를 통해서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을 듣고 얼른 회개한다면 노아처럼 그렇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절망적으로 바라본다면 노아의 말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은 것처럼 나 또한 나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외면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내가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결국 나 역시 그 사람들의 전철을 밟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것에만 의존하지 말고 하느님께 의존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막기 위해 하느님께 간절하게 청했던 마음을 기억하면서 나 또한 10명의 의인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돔과 고모라의 백성들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 때처럼 그렇게 사라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38  홍수 이전의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도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다가 39  홍수를 만났는데,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할 것이다.


이제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다가…” 내 모습을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신앙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살아가는 데만 관심이 있는 나. 예수님의 말씀에는 귀를 막고, “일하고, 놀고, 사람 만나느라고 시간이 없는 나.”


결혼식 때문에 주일 미사에 빠지는 가정의 아이들은 시험 때는 당연히 성당에 오지 않습니다. 집안에 손님이 오셔서, 그래서 분주해서 성당에 나오지 않는 가정의 아이들은 친구들과의 약속 때문에 성당에 나오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생일잔치 때문에 성당에 안 오고, 부모님은 다른 일 때문에 안오고…,


그 이유는 신앙이 부족해서 입니다. 신앙이 있는 가정에서 누군가가 그랬다가는 난리가 날 것입니다. 노아의 가족과 다른 가족들은 달랐습니다. 아주 많이…,




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다면 하나는 데려 가고 하나는 버려 둘 것이다.


남겨진다는 것. 선택받지 못한다는 것. 버려진다는 것. 늦가을 밭을 둘러보면 뽑지 않은 “무우”며 배추들, 그리고 고추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작거나 벌래 먹었거나 보잘 것 없는 것들입니다.


뽑힌다는 것. 그것은 선택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뽑아도 좋은 것만을 뽑습니다. 그런데 남이 나를 뽑아 주길 바랄 때에는 나 또한 좋은 모습으로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분이 언제 나를 뽑으러 올지 모릅니다. 그분께서 오시면 기다려 주시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밭에서 일하고 있는데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같은 일을 하고 있어도 마음가짐은 다른 사람입니다. 한 사람은 열심히 일만 하는 사람.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인가?”만을 생각하는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열심히 일을 하지만 예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예수님의 사랑받는 자녀)을 위해서, 가족(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준 사람들)을 위해서 일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을 향해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힘든 일 속에서도 늘 감사하며 예수님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만일 내가 두 사람 중 하나를 뽑는다면 누구를 뽑겠습니까?




41  또 두 여자가 맷돌을 갈고 있다면 하나는 데려 가고 하나는 버려 둘 것이다.


유다인들은 메시아가 과월절 날 밤에 오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분이 오시는 그 밤은 심판의 밤입니다. 이 심판은 의인들을 악인들로부터 분리시키는 일로 시작합니다(양은 오른편으로, 염소는 왼편으로 갈라놓으시는 것과 같이). 의인들은 하느님께 바쳐질 것이고 악인들은 영원한 지옥에 버려질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판결을 결정할까요? 맷돌질 하는 두 여자! 한 여자는 맷돌 가는 데 완전히 빠져있고(일, 자신의 삶, 쾌락 등), 다른 여자는 사람의 아들의 오심을 고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앉으나 서나 당신생각…).




42  이렇게 너희의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니 깨어 있어라.


번갯불과 같이 사람의 아들의 재림이 이루어지고, 그 때 어떤 영혼 상태에 있었는가에 따라서 영원한 상벌이 결정될 것입니다. 언제 오신다고 하면 준비하고 있을 텐데. 그분은 기회를 더 주시느라고 늦게 오시겠지만 기다리는 사람들은 “안오시려나. 안오시겠지. 아마 내일 오실꺼야.”이렇게 마음이 무뎌져 갑니다. 이런 저런 일들이 주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듭니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깨어 있음을 방해합니다.


그런데 깨어 있음을 생각해 보면 어려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자기 일에 충실하는 것”이것이 바로 깨어있음 아니겠습니까? 신앙생활도 내 일이니 당연히 포함됩니다. 나에게 주어진 것에 충실하는 것. 그것이 바로 깨어있음이 아니겠습니까?




43  만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는 집 주인이 알고 있다면 그는 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뚫고 들어  오지 못하게 할 것이다. 44  사람의 아들도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올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늘 준비하고 있어라.”


집 주인은 도둑에 대해 생각해야 하지만 매일 밤 깨어 있을 수는 없습니다. 대범하게 은행을 터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입니다. 


한 농장에서 일을 하는데 일꾼 중의 하나는 말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주인이 오는가를 망보며 놀기만 하다가 주인이 오는 것을 보면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는 척을 했습니다. 처음에 주인은 그가 열심히 일하는 일꾼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차츰 시간이 가면서 그가 가장 요령을 잘 피우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뒤에서 그가 하는 행동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도 당황을 했습니다. 갑자기 주인이 뒤에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늘 준비하고 있는 삶입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깨어 있는 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그리고 내가 만일 예수님이라면 어떤 사람들을 선택할까요?




2. 대림시기를 맞이하여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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