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대림 제1주일 주일 강론 모음

 

대림 제2주일




1. 조순창 신부(가) / 2               2. 김정진 신부(가) / 3


3. 염봉덕 신부(가) / 5               4. 강길웅 신부(가) / 6


5. 변희선 신부(가) / 9               6. 회개하라 (가) / 10


7. 김현준 신부(가) / 12              8. 박성팔 신부(가) / 15


9. 이정운 신부(가) / 16              




1.        대림 제2주일 마태 3,1-12 (가) 회개하고 변화되어, 좋은 열매 맺자.


                                                               조순창 신부




구세주 대림 제2주일을 맞이했습니다. 대림시기는 첫째로 예수 성탄 대축일을 우리 모두 즐겁게 맞이하고, 구세주의 성탄이 온 인류에게 참 평화와 구원의 때가 되도록 기다리며 준비하는 때요, 둘째로 그 어느 때인가 꼭 오고야 말 이 세상의 종말에, 구세주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날, 영광되이 오른편에 서서 축복의 선언을 듣게 되도록 준비하는 때입니다.



오늘은 하느님의 아들이신 구세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공적으로 그 활동을 시작하시기 바로 전에, 구세주 오실 길을 닦고, 구세주를 맞이할 채비를 하도록 나타난 선구자 세례자 요한의 힘찬 설교를 다시 듣고, 예수 성탄과 구세주 재림을 준비하는 자세를 갖추고, 우리에게 가까이 오시는 하느님을 만나는 시기인 대림절을 더욱 보람 되이 보내도록 해야겠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기도와 단식으로 구세주의 선구자로서의 덕을 닦으며 광야에 나타나,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고 외쳤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사두가이파 사람들에게는  “이 독사의 족속들아!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써 보여라!”“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혀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 “알곡은 모두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첫째, 대림 시기에 회개합시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하느님과 가족과 이웃 앞에 나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함으로써 죄를 지었습니다. 교만과 탐욕과 무관심과 게으름으로 스스로 범죄하며, 사회 환경에 물들고 동화되어, 죄를 짓기도 합니다. 죄를 짓고도 깨닫지 못하며, 변명하거나 회개할 날을 미루어 가는 일은, 은총의 때요 구원의 때인 대림 시기에는 떨쳐 버려야 할 일이며, 자신을 깊이 반성할 때입니다. 회개하는 사람은 자신이 죄인임을 깊이 느낄 뿐만 아니라, 겉으로 고백할 수 있는 겸손과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제1독서의 말씀과 같이 ‘싸움이 없는 평화로운 이웃’이 되고, 오늘 제2독서의 가르침과 같이 ‘서로 진정으로 용서’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둘째,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 보여야 합니다.


참된 회개는 말이나 마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활에 변화가 있어야 하며, 생활 자체에 구체적이고도 결단성 있는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마태 7,21)




교만을 버리고 겸손을 찾으며, 현실과 재물과 명예의 지나친 애착에서 벗어나 충실히 살되, 영생을 위한 공부와 선공에 힘쓰며, 기도와 미사와 성사에 열심히 참여하며, 자신의 지금의 생활을 살펴 반성하며, 새로운 마음의 결심으로 쇄신된 새 생활을 시작할 때입니다.



셋째, 좋은 열매를 푸짐히 맺는 생활을 합시다.


우리의 죽음의 날, 구세주 재림의 날, 우리 심판의 날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 하루를 죄 중에 의미없이 살아갈 때 쭉정이 인생이 되는 것이며, 하루 하루를 착실히 살아갈 때에 알곡이 될 것입니다. 정의를 실천하고, 사랑을 베풀며, 불쌍한 이웃에 자선하고, 정직하게 살며, 분수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회개한 이의 삶이며, 회개를 행실로 증거하는 것이요, 좋은 열매를 풍성히 맺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 대림 2주일에 주의 제단 앞에 모여 참회하는 당신 백성을 살피시어, 하느님께 결심한 대로 하느님 자녀답게 부지런하고 충실히 살아가도록 일깨워 주시고,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여, 당신 은혜 중에 푸짐한 인생의 열매를 맺게 하여 주시며, 오늘의 삶에 필요한 복을 내려 주시고, 또한 하느님을 만나 영원한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












2.              대림 제2주일 마태 3,1-12 (가) 회개의 증거를 행실로 보여라.


                                                           김정진 신부




신자 여러분! 오늘로 대림절 제 2주일을 맞게 됩니다. 참회하는 정신과 회개하는 생활은 교회가 절대적으로 요구하는 마음의 자세이며 생활 양식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 명심하며 반성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성탄날 밤에 많은 축복과 평화를 주시러 오시는 예수님을 기꺼이 맞이하기 위해서는 참회하고 회개하고 죄의 용서를 받아야 됨을 명백히 가르쳐 주십니다.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마태 3,2)하고 외쳤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확실히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길잡이요, 선구자이십니다. 그이가 가르친 교훈은 오늘의 대림절의 정신이며 우리가 취해야 할 생활 방식입니다.



그 당시 세례자 요한의 가르침에 많은 사람들이 따랐고 또 그들 중에 자기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친 사람들도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무심으로 혹은 무관심으로 지내면서 자기네 생활에 아무런 변화도 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 요한으 “이 독사의 족속들아, 너희는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써 보여라”(마태 3,8)고 힐책하였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교회의 가르침에 순종하며 빈틈없이 교회의 계명을 철저히 준수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이와는 반대로 주일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하느님을 외면하고 그들은 마치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행동하고 하느님을 계산에 넣지 않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들 중에는 참회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금 대림절에는 단식이나 금육의 고행이 의무는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는 극기와 고행의 필요성마저 부인해서는 안됩니다. 죄악이란 우리의 안일하고 방종한 생활에서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좀 엄격한 생활을 하고 언동에 있어 삼가고 근심하며 의식적으로 매일 미사 참례나 기도 생활 같은 어려운 일을 하고 과거에 떨어졌던 악습과 온갖 유혹을 물리치고 덕행을 실천함으로써 우리 안에서 죄악을 몰아내야 하겠습니다.



대림절에 사는 우리는 주님을 기꺼이 맞이하기 위해서는 주님을 위하여 많은 시간을 할당해야 하겠습니다. 주일 미사는 물론이려니와 매일 미사도 열심히 참례합시다. 날씨가 다소 차다 하더라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열성과 충성심만 있다면 아침 추위나 아침잠이 문제가 안될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외침을 잘 듣고 사랑에 넘치는 마음과 기쁜 마음으로 예수 성탄 축일을 준비합시다. 가정에서의 기도 생활을 충실히 하고 습관적으로 떨어지는 악습과 온갖 유혹을 물리치고 우리 안에서 죄악을 몰아내야 합니다. 온 가족이 나란히 성당에 와서 성탄 판공성사를 받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하겠고 또한 덕을 닦고 남에게 사랑을 실천하는데 적극적이어야 하고 용감해야 하겠습니다.



적극적인 사랑의 실천으로서 가족이나 이웃 사람을 권장하여 제때에 판공성사의 의무를 이행하도록 주선하고 교회와 거리를 멀리하고 있는 냉담자, 미신자들의 회두를 위하여 극력 수고하고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다음은 우리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의미에서 불우하고 버림받은 동포들에게 온정을 베풀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본당에서는 성미 모으는 운동을 벌여 조금이라도 성탄의 기쁨과 행복을 나누어주려 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모모한 단체들은 이런 이웃돕기 운동에 적극적으로 호응할 뿐만 아니라 선봉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나더러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자라야 들어갈 수 있다”(마태 7,21)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명심합시다. 아버지의 뜻이란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며 이웃을 돕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쁨의 성탄, 은총과 평화의 성탄이 되기 위해서는 이상 몇 가지를 꼭 명심불망하고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끝으로 주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어 봅시다. “그 날에는 많은 사람이 나를 보고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하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에 나는 분명히 그들에게 ‘악을 일삼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거라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할 것입니다“(마태 7,22-23). 아멘.












3.                대림 제2주일 마태 3,1-12 (가) 기다림.


                                              염봉덕 신부




교형 자매 여러분!


오늘은 대림 2주일입니다. 대림이란 말의 뜻은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다보면 여러 가지 기다림 속에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언제나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겨울에는 봄을 기다리고, 비가 계속 오는 장마철에는 맑은 태양을 기다립니다. 그뿐 아닙니다. 우리는 식사나 하루 노동의 끝이나 저녁이 오거나 기분 좋은 밤의 휴식을 기다릴 수도 있습니다. 병자는 퇴원하는 날을 기다리고 직장인은 주말을 기다리고 도시인들은 도시의 소음을 피해 일시적이나마 교외에 나가는 기쁨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욱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기쁜 소식을 가져오는 우편 배달부를 기다릴 수도 있습니다. 가까운 친구를 기다릴 수도 있습니다. 약속한 시간에 약혼녀를, 아내는 여행 중에 있는 남편에 돌아오기를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은 대림절을 맞이하여 이상의 여러 가지 기다림을 초월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된 오심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다림! 우리는 어떤 기다림에도 마음 속의 준비가 있음을 알 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 예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우리는 맹목적으로 아무 준비 없이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2천년 전의 유대 광야에서 외치던 요한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천년 전의 요한의 외침은 오늘 대림절을 맞는 우리들 자신에게 외치는 소리입니다.


회개하시오!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주예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우리는 그 기다림 속에서 진정한 회개로 알찬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준비란 말이 나오니 재미있는 비유가 생각납니다. 한여름 무더운 날씨에 땀을 흘리면서 일하는 개미와 시원한 나무그늘에서 콧노래를 부르는 게으른 배짱이의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개미에게 배짱이가 왜 그렇게 땀을 흘리면서 일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개미는 묵묵히 일하다가 겨울을 나기 위해서 월동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배짱이는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무슨 고생을 그렇게 하느냐고 코웃음을 치면서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더운 한여름도 어느덧 지나가고 추운 겨울이 닥쳐왔습니다. 게으른 배짱이는 이때서야 자신의 게으름을 한탄했습니다. 더운 여름부터 조금씩 월동 준비를 해 놓았으면 이 추운 겨울에 고생하지 않을 것인데 하고 말입니다.




기다림! 부지런한 개미가 더운 여름부터 월동 준비를 하듯 구세주 오심을 기다리는 시기인 이 대림절에 우리는 신앙적인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그런데 신앙적인 준비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준비보다도 오늘 복음 말씀과 같이 진정한 회개로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나의 신앙은 왜 발전이 없는가? 내 영혼 속에서 고통이 가득하며 마음이 불안하고 생활에 승리가 없는가?’라는 의문을 가지며 그 까닭을 묻습니다. 이는 다름이 아니라 수많은 신자들이 진정한 회개 없이 신앙 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즉 한 손은 앞으로 내밀어 이미 절망과 죄의 질병과 저주와 마귀의 종이 되었던 지난날의 자기와 손을 잡고, 또 한 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잡으면서, 새 사람은 앞을 당기고 옛 사람은 뒤로 당기는 이중혼으로 조화있게 살려고 애쓰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런 이중적인 신앙생활은 향상이 없고 고뇌 속에 빠지며 불안에 떨게 마련입니다. 



교형 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대림절을 맞이하여 자신의 신앙생활에 진정한 향상이 있기를 원하십니까? 신앙 향상을 원하는 사람은 그 무엇보다도 세례자 요한의 광야의 외침을 나 자신에 대한 외침이라는 것을 가슴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당신들은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 보이십시오!’




따라서 우리는 이 미사 중에 특별히 우리의 신앙생활을 반성하고 진정한 회개를 통하여 세속적인 나를 버리고 진정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아름다운 성도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4.        대림 제2주일 (가해)   거지 습성을 버리자      강길웅 신부




제1독서 이사 11,1~10 (그는 가난한 자들의 재판을 정당하게 해 주리라)


제2독서 로마 15,4~9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여 주십니다)


복 음 마태 3,1~12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




오늘 1독서에서는 이새의 그루터기에서 새 순이 돋아날 것임을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루터기란 나무를 베고 난 뒤의 남은 뿌리 부분을 말합니다.




가끔 밑동에서 새순이 돋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 해가 지난 죽은 뿌리에서는 새싹이 돋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사야는 바로 그와 같은 이새의 죽은 뿌리에서 새순이 돋는다는 것입니다. 이새는 다윗 임금의 아버지입니다.




다윗은 위대한 왕이었으며 하느님의 마음에 꼭 드는 임금이었지만 그러나 후대의 왕들은 거의가 타락하여 우상을 숭배하는 등 하느님 눈에 벗어난 짓을 많이 했으며 그래서 결국 나라는 둘로 갈라졌고 두 나라가 모두 차례로 망했습니다. 그리고 망한 지 수백 년이나 되었습니다. 바빌론에게 망하고 페르샤에게 망했으며 또 희랍에게 망하고 로마에게 망했습니다.




그런데 예언자 이사야는, 이처럼 죽은 나라에서 새 왕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 왕은 하느님의 온갖 영을 다 받은 자로서 세상을 변화시키게 됩니다. 독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어울리며 사자가 송아지와 놀고 곰이 암소와 친구가 됩니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말이냐?




사자나 늑대는 사나운 이빨과 발톱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제 본능대로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난폭한 습성을 버리고 오히려 양순하고 친절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수백 년이 지나 예수님이 오셨을 때 실제로 그 모든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몸을 파는 창녀가 제 습성대로 살지 않고 깨끗하고 거룩하게 됩니다. 사납게 굴던 정신병자가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로 온순하게 됩니다. 남을 등쳐먹던 세리가 자기 습성이나 본능을 버리고 자기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줍니다. 서로 미워서 이를 갈던 사람들이 사랑하게 되며 심지어는 죽은 사람이 살아납니다.




모든 민족이 예수님께 모여들고 있으며 그리고 예수님이 계신 곳에서 영광이 빛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세상은 제 본능이나 습성대로 살지 않습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자 요한은 하늘나라가 다가왔으니 회개하라고 유다 광야에서 외쳤습니다.




요한이 말하는 회개가 뭐냐? 그것은 자기 본능대로 살고 자기 습성대로 살던 자들이 자신들의 잘못된 것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테면, 말하고 싶은 대로 다 말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이야 상처를 받건 말건, 그것이 또 사실이건 거짓이건 자기 본능대로 자기 습성대로 있는 말, 없는 말 다 떠벌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정말 주님을 영접하고자 한다면 입을 다물 수 있어야 합니다. 사자나 늑대가 입을 다물듯이 사나운 자신의 입을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쓰고 싶은 대로 다 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시고 싶은 대로 다 마시며, 탐욕을 부리고 싶은 대로 다 부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자들은 그 습성을 버리고 생활태도를 고쳐야 합니다. 그리고 미워하던 사람들은 용서하고 사랑해야 하며 시기와 질투를 일삼던 사람들은 그 마음을 버리고 존경해 주어야 합니다.




얼마 전에 폭음과 폭식은 먹는 습관이 잘못된 거지 습성에서 온다는 내용의 책을 읽고는 크게 공감한 일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부끄럽게도 제가 바로 그 거지 습성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거지는 어디다 내놔도 거지입니다. 특히 자신이 거지라는 것을 모르는 거지는 평생 거지가 됩니다. 거지 뿐만도 아닙니다. 알콜환자가 자신이 알콜환자라는 것을 모르면 평생 환자가 되며 도박꾼도 그렇고 습관적인 죄를 짓는 거의 모든 분들이 그렇습니다.




대림절은 하늘나라가 가까이 오는 때요 또한 회개를 통해서 그 나라를 차지하는 때입니다. 오늘 요한은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닿았다는 절박함을 보여 주면서 미루지 말고 서둘러서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 서둘러 회개해야 하느냐? 회개는 행실로써 보여 줘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합니다. 만일에 회개한다 해놓고 행실로써 보여 주지 못하다면 그는 하느님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며 예수님을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탄이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부터라도 마음을 먹으면 무슨 일이고 할 수가 있습니다. 주님은 다른 곳에서 태어나시지 않습니다. 바로 여러분 마음 안에서, 그리고 그 마음이 있는 가정과 직장 안에서 태어나십니다.




따라서 잘못을 뉘우치고 행실을 뜯어고침으로써 오시는 주님을 기쁘게 영접하여 모시도록 합시다.











5.                대림 제2주일 <마태 3,1-12>(가)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


                                                          변희선 신부




  내가 예수회 신학생으로 철학과정을 마치고 실습기를 시작하면서 연레피정을 하던 때였다. 당시의 나는 수도생활의 의미와 기쁨도 잘 느끼지 못하고, 여러 가지의 내적 갈등으로 고심하고 있었다. 예수회원으로서 1년에 한 번은 의무적으로 해야하는 피정이기에 시작했지만 자발적으로 열심히 기도에 임하기에는 내 마음이 잘 움직이지 않는 상태였다.




  약 일주일 동안 침묵 안에서 영적 지도신부님의 지도를 받으면서 열심히 기도하려했지만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지는 듯 했다. 이제 3일 후면 피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날 오후 산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 순간의 내 마음은 매우 무거웠고, 세상 만사가 절망적인 것으로 가득한 것처럼 여겨졌다.




  이러한 느낌이 시작된 것은 아버지에대한 나의 미움을 발견한 이후로 급격히 강해졌다. 나의 어린 시절 아버님은 나와 동생들보다는 유난히도 형님을 편애하셨다는 게 나의 불만과 미움의 이유였다.




  아버님에 대한 불만과 미움을 상당히 오래 동안 마음속에 억누르고 감추며 살아온 내가 그 미운 마음을 제대로 인식하면서 절망감에 빠진 것이었다. 좌절감과 절망감에 빠진 나는 순간적으로 세상만사가 싫었고 수도생활도 포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가야할 곳은 아무 데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어디로 가야하나? 절망감과 미움의 감정이 극에 달하는 순간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아버지를 망신시키고자 수도원을 떠나자!」 그러자 나의 마음은 더욱 더 고통스러웠다. 온 몸이 일시적으로 맥이 풀리고 아파 왔다. 바로 그 순간 마음 속 깊이에서 주님의 말씀이 들려왔다.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이들에게 해방의 기쁜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이상하게도 이 말씀을 들은 나는 하염없이 울기 시작하였다. 알 수도 없는 감동과 감사의 마음이 용솟음쳐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나는 분명히 깨달았다. 그분께서 죄인인 나를 이미 구원하셨다는 현실을 어쩔 수없이 받아들인 것이다.


이 현실을 받아들이자 아버님에서 그 동안 내게 해주신 모든 인내와 사랑이 마구잡이처럼 떠올랐다. 겉잡을 수 없는 눈물 속에서 나는 거듭나고 있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미운 마음의 속박을 받는 노예가 아니며, 참된 회개가 무엇인지도 실감하게 된 것이었다.



대림절은 우리의 모든 세상사를 떠나서 주님을 맞이하러 떠나는 때이다. 우선 우리의 탐욕으로부터 잠시 벗어나는 때이다.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소비해야 한다는 탐욕의 굴레에 빠진 우리가 삶의 목적은 탐욕이 아니라 해방임을 깨달아야 하는 때이다-




  둘째로 대림절은 미움과 증오에서 벗어나는 때이다. 우리의 마음 속 깊이 새겨진 이웃에 대한 미움과 증오의 감정들을 훌훌 털어 버리는 때인 것이다. 과연 누가 누구를 미워할 자격조차 있는가? 하고 자문자답해보자. 우리는 나름대로의 미움의 이유와 핑계를 제시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누구를 미워하고 있다면, 그 상대도 나를 미워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으리라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셋째로 진정한 사랑은 고통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한다. 대림절은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실감하는 때이다. 나의 아픔들, 고통들, 희생들 안에서 주님의 사랑을 발견하는 때이다. 사랑은 단순히 내가 누구를 좋아하는 것 그 이상이다. 주님의 사랑은 희생과 고통에도 불구하고조건 없이 자신을 내어주는 행위이다.




  마지막으로 대림절은 무지와 편견에서 벗어나는 때이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왜곡된 지식과 아집에 사로잡혀서 진실과 진리를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다. 대림절은 진리의 빛을 찾는 구도자의 마음으로 자신의 편협한 사고방식들을 과감히 버리는 때이다. 탐욕과 미움과 무지에서 벗어나는 것을 예수님은 회개라고 말씀하신다.




  「회개하시오. 하느님의 때, 대림절이 가까이 왔습니다」












6.           대림 제2주일 <마태 3, 1-12> (가)   회개하라, 회개하라!




  광야에 나타난 세례자 요한! 그의 차림새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낙타 털옷을 입고 가죽띠을 둘렀으니, 호기심 때문에라도 사람들은 그에게 다가갔을 것이다. 더구나 광야에서 야인으로 살았으니, 수염은 얼마나 길었겠는가! 만일 그가 바리사이파나 사두가이파 사람의 옷을 입었더라면 그들에게 구역질나도록 질린 민중들은 등을 돌렸을 것이다.




괴짜 요한의 출현 




  세례자 요한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보통 사람들과는 달랐다, 그는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마치 짐승처럼 산 야인이었다. 왜 그렇게 살았을까? 하느님과 친해지기 위해서였다. 말하자면 회개하기 위한 준비의 삶이었다. 그는 하느님과 가까운 사람이었다. 모세가 하느님과 마주보고 대화했듯이 그도 하느님과 그렇게 마주보듯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는 내적으로 꽉 찬 사람이었다.



  그가 광야에 나타나서 지른 일성은 ‘회개하라’였다. 구세주께서 이 질곡의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주시려고 오실 때가 되었으니 회개하라는 것이었다. 생활 태도를 뜯어고치라는 분부였다. 만일 회개했으면 그 표시로 세례를 받으라고 했다.




  그의 외침은 효과가 있었다. 사람들은 몰려들었다. 그리고 세례를 받았다. 물론 당시의 종교지도자들도 ‘회개하라’를 외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외침은 맥빠진 외침이었다. 설득력이 없었다. 왜 그랬을까?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 여기에서 세례자 요한처럼 회개를 외쳐야 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두말할 것도 없이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인 우리 모두다, 왜냐하면 우리가 세례로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직, 왕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비신자들에게 회개를 외치기 위해서는 우리 먼저 회개한 사람이어야 한다. 회개하지 못한 사람의 외침은 힘이 없으며 호소력도 있을 수 없다. 바리사이파 사람이나 사두가이파 사람의 외침이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물론 그 결과도 뻔하다.




  오늘 복음의 메시지




구세주께서 가까이 오셨으니 회개하라는 것이 오늘 복음의 핵심이다. ‘회개하라, 회개하라.’ 무엇을 회개하라는 말인가? 신앙인의 이중성은 어느 시대나 큰 골칫거리다. 예배를 위해 성전에 나가서는 손을 합장하고 “주님, 주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를 연신 외치면서도, 정작 가슴속에 응어리진 마음과 시기는 곱게 싸서 가슴깊이 고이 간직한 채 사는 신앙인들이 있다. 회개한 사람들만이 모실 수 있는 성체를 감격한 모습으로 눈을 사르르 감은 채 모시면서도, 일단 성당만 벗어나면 눈빛이 달라지고, 가정으로 돌아가서는 가족이나 형제들을 죽도록 미워하는 신앙인들이 없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회개는 겉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행실로 내보여야 한다. 우리는 지금 경제위기를 맞고 있다. 과연 우리는 나누고 있는가? 회개하고 있는가?




  회개한 사람은 세례를 받으라고 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회개하지 않으면서도 세례받은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교회도 부패한 냄새간 나는 것이다. 세례 받기 전의 못된 버릇은 하나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 계속하면서, 성당에는 잘 나가는 경우가 있어 세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세례받은 사람들은 인생관, 가치관, 우주관도 바꿔어야 한다. 사일록 같은 사람이 사회복지단체에 많은 돈을 헌납하는 기적, 남을 사기치고 살아가던 사람이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으로 변화된 기적이 일어나야 한다. 난잡한 성생활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사람이라면, 회개하여 오로지 아내만을 사랑하는 새 사람이 돼야 한다.


또한 단지, 별을 천문학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위대하신 능력의 표현으로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성령으로 부정 씻어내자




  얼마나 많은 신앙인들이 부정과 연루되어있는가? 세례받기 전의 부정과 부패로 더럽게 물들여진 나의 존재를 회개로 세례의 물로, 성령으로 말끔히 씻어냈다면 아름다운 새 인생은 시작됐을 것이다.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우리는 지금 너무나 큰 시련 앞에 서 있다. 남쪽도 북쪽도 모두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교회 전체가 회개하지 않으면, 즉 거듭나지 않으면 이번 성탄에 예수님은 오시기가 너무 힘드실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기우일까? 그분 오시는 길에 배고픈 사람들이 수없이 쓰러져 있다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시기 전에 우선 그들을 일으켜 세우실 것이다.




  우리가 먼저 그들을 튼튼하게 하고 그분 오시는데 장애 되는 것들을 말끔히 치워놓아야 할 것이다. 이 일이 회개다. 각자가 서있는 곳에서 그분 오시는 길을 말끔히 청소해야겠다.










7.         대림 제2주일 <마태 3,1-12> (가) 대림절의 사나이 


                                                      김현준 신부 




사진을 취미로 찍는 나의 동료 신부가 나에게 준 사진선물은 회색 빛 바다에 배 한 척 떠 있는 것이었다. 그가 찍은 많은 사진 중에서 왜 그 사진을 나에게 주었는지, 주면서 아무 말도 없었으니 그 속을 모르지만, 나는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시선을 뱃머리 쪽에 두고 있다. 이 배가 항구로 들어가는 배인지 아니면 깊은 바다로 나가고 있는지, 그도 저도 아닌 그냥 바다에 떠 있는지?



사진 속의 통통배는 뱃머리가 왼쪽으로 되어 있지만, 동서남북을 가릴 수 없는 바다 한복판이고, 좌우에 좌표가 될만한 무엇도 없기에,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그 방향을 알 수가 없다. 그래도 나는 저 배는 항구로 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며 바라본다.


 


대림절이 오면 우리 삶의 바다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한사람이 있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세례자 요한이다. 사순절은 요한이 잡히어 퇴장한 후(마르 1,14) 예수의 등장과 활동상을 그리고 있다면, 대림절은 어김없이 요한을 등장시키고 그로 하여금 회개를 외치고 뒤에 올 예수를 증언하게 한다.


 


요한은 광야, 그 모래의 바다, “모래의 살에 부는 바람” 속에서 ‘회개하라’는 외침으로 사람들 마음을 일깨우며, 그리스도 오심을 알리고 그 길을 닦는다. 요한이 광야에서 외치는 ’회개(Metanoia)’는 온전히 새 사람이 되라는 권고이다. 잘못했으니 이젠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하는 정도가 아니다. 새 사람이 되는 것,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완전히 새롭게 달라지는 것이다. 바다에 떠 있는 배는 뱃머리를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항구로 들어오는지, 더 깊은 바다로 나아가는지, 그 방향이 정해지듯이 우리 삶의 방향을 어디로’향할 것인지, 우리 삶의 주관자가 누구인지를 알아 방향 전환을 하는 것이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15년 전 본당 주임 신부로 첫 발령을 받고, 4개월 후 맞이하는 첫 성탄 때에 내가 먼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새롭게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 속에 잠겨 있었다. 서양 신부들이 15년 계신 곳에 한국인 신부로 첫발을 내디디면서, 본당의 변화를 모색할 때였다, 아주 우연한 기회로 머리가 흘러내려 눈을 덮는 것을(그때는 머리를 길게 기를 때였다) 안내려 오게 하려는 마음에 끌려,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핀컬 퍼머(?)라는 것을 했다.


면소재지의 좁은 동네라, 내가 성당에 들어가기도 전에 벌써 그 소문은 성당내에 퍼졌다. 결국 한번 쳐다보는 데 5백원이라고 일방적으로 선포하고, 그것은 그 날 밤 구유에 나신아기 예수님이 다 차지하셨지만, 나는 발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내 두 발을 그분 앞으로 내어밀며 발톱을 깎았다.


 


시인 마종기는 ‘층청도의 구름’이라는 시에서 충청도를 여행하며 찍은 사진을 한참 보다가 사진에서 내가 지워지고, 너도 지워지고, 주위도 지워지고, 충청도 구름만 사진에 가득 차는, 그러다 그 구름도 안보이는‥‥ 나중에는 그 구름이 많이 울었을 충청도 사람의 짭짤한 눈물이 되고, 고국을 떠나 있는 자신의 입에 그 충청도 구름 맛이 흘러드는 경험을 노래한다.




참된 회개, 상등 통회, 때는 나는 안보이고 그분의 – 때로는 손에 키를 드시고 타작마당의 곡식을 깨끗이 가려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불에 태우는(마태 13,37) – 신발 끈이 보인다. 그 신발끈을 잡고 머리 들어 쳐다보면, 십자가에서 두 팔을 벌리고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루가 23,34)라고 하는 그분의 얼굴을 만난다.       




        광야에 선 요한의 외침         




‘회개, 회개’하다 보면, 계산대에 앉아서 나가고 들어오는 돈을 잘 따져 셈하는 ’회계(會計)’로도 들리는 ‘회개(悔改)’보다는 머리를 하느님 아버지께로 돌리는 뜻으로의 회두(回頭)라는 옛말이 더 내 마음에 와 닿는 ‘회개’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인 요한의 설교 첫머리이자 중심 내용이다.


 


대림절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대림절의 사나이 요한의 ‘회개하라’는 그 쉰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써 보이도록 우리를 일깨우는 요한의 삶의 방향에 시선을 두면서, 곧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키워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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