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봉헌 축일 루가 2,22-40 (다) 구세주를 알아보는 형안
강영구 신부
오늘은 주님 봉헌 축일입니다. 오늘은 지난 성탄 대축일 이후 꼭 40일째가 되는 날입니다.
구약성서 레위기 12장 1-4절에는 출산한 산모가 지켜야 할 규정이 나옵니다. 그 규정에 의하면 사내아이를 낳은 산모는 출산 후 40일이 되는 날 정결례(淨潔禮)를 치러야 했습니다. 여인이 사내아이를 낳으면 40일 동안, 그리고 계집아이를 낳으면 80일 동안 성전 출입이 금지되었습니다. 아이를 낳아서 부정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결 예식을 치르고, 몸이 깨끗해진 것을 증명하고 난 후에야 성전 출입이 허락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정결 예식을 치르는 그 날, 맏아들은 하느님께 바쳐야 했습니다. 출애굽기 13장 12절은 이스라엘의 모든 맏아들과 가축의 첫배에서 난 새끼들은 하느님의 소유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해방되어 나오는 날 야훼 하느님께서 이집트의 모든 맏아들들과 가축의 첫배에서 난 새끼들을 모조리 치셨지만, 이스라엘의 맏아들들과 가축들은 손대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이 율법의 규정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의 정결례와 더불어 아기 예수의 봉헌식도 가졌습니다.
우리는 성탄 대축일 후 40일째가 되는 오늘 아기 예수의 봉헌을 기념하기 위하여 성당에서 1년 동안 사용할 초를 봉헌하였습니다. 초는 어둠을 밝히는 빛입니다. 촛불이 켜져 있는 곳에 어둠은 물러가게 됩니다.
오늘 마리아의 품에 안겨서 하느님께 봉헌되신 아기 예수는, 이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고, 새로운 광명을 가져다 줄 구세주이자 빛입니다. 오늘 아기 예수의 봉헌식에 함께 참례하게 된 의로운 노인 시므온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주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이 종은 평안히 눈감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구원을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만민에게 베푸신 구원을 보았습니다. 그 구원은 이방인들에게는 주의 길을 밝히는 빛이 되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 됩니다.”
시므온 노인의 노래대로 성전에 봉헌되신 아기 예수는 죄와 죽음으로 뒤덮인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입니다. 빛이신 주님이 계시는 곳에는 어둠이 없습니다. 주님 그분이 우리에게 구원과 생명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늘 봉헌한 초는, 성전에 봉헌되신 아기 예수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봉헌한 초처럼 예수께서는 당신의 삶 모두를 하느님께 바치셨습니다. 초가 자신을 불태워 빛을 내듯이, 오늘 성전에서 봉헌되신 예수도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을 불태워 죄와 죽음 그리고 악마의 어두운 세력을 몰아내시고 인류에게 밝은 삶을 주셨습니다. 마리아의 품에 안겨 하느님께 봉헌되신 예수는 당신의 전 생애를 인간에 대한사랑으로 불태우시고 십자가위에서 당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바치심으로써 봉헌(奉獻)된 삶을 마감하셨습니다. 그러나 봉헌의 끝이었던 그분의 십자가 죽음은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 그분은 부활하시어 지금도 우리 가운데서 한 자루의 촛불처럼 빛을 내시고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고 계시
기 때문입니다.
죄와 죽음의 암흑 속에서 방황하던 인류가 사랑으로 불타던 예수를 보고 새 삶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빛이신 그분의 인도를 따라서 구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는 그분의 빛으로 구원의 길을 걷게 된 사람들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두 노인을 만납니다. 한 사람은 시므온이라는 노인이고, 또 다른 사람은 아셀 지파에 속하는안나라는 여자 예언자입니다.
성전에서 아기 예수를 만나기까지, 그들의 삶은 참으로 파란 만장한 것이었습니다. 온갖 풍상(風霜)을 다 겪으면서도 구세주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시므온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시므온은 죽음을 눈앞에 둔 나이에 이르기까지, 온 세상을 뒤덮고 있던 죄와 죽음의 세력을 보아야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길을 찾고 있음을 보아야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과 권력에서, 어떤 사람은 명예와 찰나적인 향락에서 구원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시므온은 “나는 너를 만국의 빛으로 세운다. 너는 땅 끝까지 나의 구원이 이르게 하여라……”라는 이사야서 49장 6절의 말씀을 믿고 있었고, 그 말씀이 성취되리라는 희망을 품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시므온은 죽음을 눈앞에 둔 나이에 이르기까지 하늘을 향해 한점 부끄럼이 없는 생활을 해왔습니다.
그가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아기 예수의 봉헌식에 참석할 수 있었던 것도, 또 형안(炯眼)으로 아기 예수가 이 세상의 어둠을 밝힐 빛이요 구세주라는 사실을 꿰뚫어 볼 수 있었던 것도 때묻지 않은 그 의 삶, 하느님께 봉헌된 삶 때문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매일같이 젊은 부인들의 정결례가 있었고 수많은 아기들의 봉헌식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 섞여 정결례와 봉헌식을 치르는 초라한 행색의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아기 예수를 온 세상의 어둠을 밝힐 구원의 빛으로 알아볼 수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큰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수많은 예언자들이 있었지만 시므온 노인과 같은 축복을 받은 예언자는 없었습니다. 다른 예언자들은 구세주의 오심을 선포할 수는 있었지만, 정작 자신들이 선포한 구세주를 만나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므온은 수많은 예언자들이 예언했던 그 구세주를 자신의 눈으로 보았고 품에 안아도 보았습니다.
“주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이 종은 평안히 눈감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구원을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시므온의 이 노래는, 우리의 노래여야 합니다. 우리도 어느 날엔가 죽음을 맞이하게 될 때에 “주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이 종은 평안히 눈감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구원을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라고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니 우리는 모두 이렇게 노래 부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주님의 빛 속에 살고 있고, 주님의 성찬에 참여하고 있으며, 하느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는 시므온 노인이 그 어떤 예언자들보다 축복받은 분이지만, 우리는 시므온 노인보다 더 큰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한편 아셀 지파에 속하는 여자 예언자 안나도 아기 예수 봉헌식에 함께 참여하게 되었는데, 안나 역시 남다른 축복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안나가 축복을 받았다는 것은 남다른 부귀 영화를 누려서가 아닙니다.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잘 말해 주듯 안나는 세속적인 눈으로 볼 때에는 불행한 여인이었습니다. 결혼한지 일곱 해 만에 남편이 죽어서 청상 과부가 될 만큼 박복(薄福)한 여인이었습니다. 더구나 그녀에게는 후손도 없었습니다.
과부가 된 후 84살이 되도록 그녀는 기도와 단식과 성전 참배로 살아왔습니다 그녀가 그 긴 세월을 수절하며 살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느님만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녀에게는 기댈 남편이나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녀가 기댈 곳이 있었더라면 하느님 한 분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면서 좀더 편하기 위해, 좀더 많은 재물을 모으기 위해서, 좀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애쓰고 있을 때, 안나는 단식과 기도로 하느님 섬기기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안나가 아기 예수의 봉헌식에 참여하고 자신의 눈으로 이 세상의 구세주가 되실 분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었던 안나가 당연히 받아야 했던 축복이었습니다. 자신의 삶 모두를 하느님께 봉헌했던 안나가 받아야 할 축복이었습니다.
오늘 하느님의 성전에서 봉헌되신 아기 예수는 인류의 희망이자 구원입니다. 그리고 어둠을 밝히는 빛입니다. 안나는 자신의 삶에 걸맞는 축복을 받았고 감사드리면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기다리던 모든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널리 전했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예수의 봉헌 축일을 지내면서 우리는 하느님 대전에 무엇을 봉헌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마리아의 품에 안겨 성전에 봉헌되신 예수는 당신의 전 생애를 하느님 나라와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봉헌하셨습니다. 오늘 어린아기로 봉헌되신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목숨을 바치심으로써 그 봉헌을 완결시키셨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께 봉헌된 그분의 삶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면, 우리도 우리의 삶을 하느님께 바쳐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봉헌한 초는 세상의 어둠을 비추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신앙인으로서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마치 한 자루의 촛불이 자신을 태워서 어둠을 밝히듯, 우리의 삶도 그러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이기적인 삶이 아니라 나 자신을 희생하면서, 이웃과 형제들을 비추는 이타적(利他的)인 삶이 될 때, 우리의 삶은 하느님께 봉헌되는 삶이 됩니다.
오늘 성전에 봉헌되신 예수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이렇게 촛불처럼 어둠을 밝히는 생활을 할 때 비로소 우리는 시므온이 불렀던 노래를 우리의 노래로 부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주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이 종은 평안히 눈감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구원을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