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로 향하는 사람들은(루카12,32-48)

 



하느님께로 향하는 사람들은…


1. 말씀읽기: 루카12,32-48


2. 말씀연구


오늘 복음에서는 두 가지의 이야기, 즉“재물을 하늘에 쌓아라”는 것과 “충성스러운 종과 불충한 종”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깨어 있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로 향하려는 나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2 너희들 작은 양 떼야,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 나라를 너희에게 기꺼이 주기로 하셨다.”


작은 양떼는 제자들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착한 목자이시지만 그 음성을 듣는 사람은 적습니다. 수가 적으니 하느님 나라를 전하는데 있어서 많은 어려움이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두려워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어려움을 겪는다 할지라도 하느님께서 주시기로 하신 그 나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신앙인들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두려움은 유혹이고, 그 유혹은 나를 예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33 “너희는 가진 것을 팔아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 자신을 위하여 해지지 않는 돈주머니와 축나지 않는 보물을 하늘에 마련하여라. 거기에는 도둑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좀이 쏠지도 못한다.


하느님 나라만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다른 것에 마음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 깊은 신뢰심을 가지고, 하느님께 더욱 의지하기 위해 마음을 흔드는 것들에 집착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보이는 재물에 관심을 갖지 말고 보이지 않는 보물에 관심을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자유로운 청빈은 누구나 다 지켜야 하는 명령은 아닙니다. 하지만 누구나 해야 할 일은 세상 사물에 집착하지 않는 것, 그 재물을 목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34 사실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만일 이 세상 사물에다 자기 재산과 목적을 둔다면 마음도 그것에 매어 있으므로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7,24). 어떤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재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은 온통 재물로 향하고, 구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구원에 필요한 것들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낚시를 시작한 사람들은 온통 월척 생각뿐이고, 골프를 시작한 사람들은 넓은 공간만 보아도 골프장을 생각하고, 당구를 처음 시작한 사람들은 모든 벽이 당구대로 보입니다. 내 마음은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곳에 있습니다.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허리에 띠를 띠라는 이야기는 소아시아의 옷을 만드는 법과 입는 법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들의 옷은 길었기 때문에 여행을 할 때나 활동을 할 때에 옷자락을 들어 허리에 띠를 매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허리에 띠를 띤다는 것은 일을 하기 위한 준비 혹은 일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뜻합니다.




 등불을 켜 놓는 것은 밝은 데서 잘 보며 경계하라는 뜻입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주인을 항상 기다리고 있는 종들처럼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이 세상 사물에서 이탈해야 할 것이며, 모든 소망을 하늘나라에 기울여야 한다고 가르치신 후, 지금은 착한 뜻을 가지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 잘 맞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한다고 덧붙이십니다.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히브리인은 밤늦게 혼인잔치를 벌이는(마태25,1) 습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인을 영접하기 위해 종들을 등불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주인이 집을 비우고 있을지라도 돌아오는 주인을 맞아들이기 위해 모두 밤을 새워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이요, 심판하러 오시는 예수님을 깨어서 영접해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들은 오실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아무도 그분이 언제 오실지는 알지 못합니다.




 예전에 부모님이 장에 가시면 아이들은 부모님을 기다리곤 했습니다. 부모님께서 장에서 맛있는 것을 사오시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부모님들이 혼인집에 가시면 꼭 주머니에 사탕이며 떡 등을 싸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부모님이 언제 오시나 졸면서 기다리곤 했습니다. 생각나시죠? 어릴 때 나의 모습을(그리고 이런 기회를 통해서 부모님께 전화 한번 드리세요. 부모님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먹을 것을 주섬주섬 싸오셨잖아요. 지금 같으면 부끄러워서라도 안할 텐데 말입니다).




깨어 기다린 아이들이 사탕과 떡 등을 받아먹는 것처럼, 예수님을 깨어서 기다린 제자들도 주님께로부터 축복을 받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그 축복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식사 시중을 들어 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 생각이랑 전혀 다릅니다. 종이 주인을 맞이하고 대접해야 하는데 오히려 주인이 종을 대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을 깨어 기다린 이들에게 당신 영광의 혼 몫을 부여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자들을 영예롭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37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깨어 기다리는 종들은 행복합니다. 그들이 받을 상이 더 할 나위 없이 큰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주인은 그의 식사 시중을 들어 줄 것입니다. 우리가 예상하는 바와는 정 반대의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종이 주인처럼 대접받으며 주님이 그의 종처럼 처신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깨어 있는 이들에게 당신 영광의 한 몫을 부여하십니다. 하느님 나라의 영광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나라에 환영하여 맞아들이는 이들을 위한 잔치에 비유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손님(깨어 기다렸던 자녀들)에게 시중을 들어 주심으로써 그들을 영예롭게 하실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처음의 그 아름다운 마음이 무뎌집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게 되고, 누가 열심히 하려하면 비웃거나 방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찰과 통회를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늘 새롭게 하고 언제나 처음처럼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바로 주인을 깨어 기다리는 자세입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할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마지막 날에 큰 축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또한 축복을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당연히 해야 될 몫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분을 찬미하고 그분께 영광을 드리며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나의 삶이어야 합니다.




 예전에 신문에 자신의 개를 위해서 막대한 수술비를 지출한 남자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 개는 좋은 애완용 개도 아니었지만 그가 퇴근을 해서 대문을 열면 항상 그 개가 반겨 줬다고 합니다. 주인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그쪽을 향해서 고개를 돌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가족들은 그 개처럼 그를 맞이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공부하기에 바쁘고, 아내는 텔레비전이나 모임에 바쁘고, 그리고 더러는 피곤해서 먼저 잠자리에 누워 있고….


그래서 언제나 변함없이 그를 맞아 주던 존재가 개였기에 그 개가 아팠을 때 막대한 돈을 들여서 그 개를 고쳐 주었다는 것입니다. 주인을 향했던 그 마음이 보상을 받았던 것입니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밤은 4시경으로 나뉘고, 제1시경은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제2시경은 9시부터 12시까지, 제3시경은 12시에서 새벽 3시까지, 제4시경은 그때부터 6시까지였습니다.




39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신앙인들은 늘 깨어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도둑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것을 깨우쳐 주십니다. 도둑은 기초 없이 맨땅에 세워진 집의 담 밑에 구멍을 파고 들어오려 할 때, 집주인이 그것을 알고 있었다면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들도 주님께서 언제 오실지를 정확히 안다면 틀림없이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오시리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가 언제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늘 깨어서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도둑의 이야기를 통해서 준비하는 삶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을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오십니다. 그러나 그 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 신앙인들은 깨어 있어야 합니다. .




41 베드로가, “주님, 이 비유를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깨어 준비하고 있으라는 엄한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그것이 자신들에게만 해당되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지에 대해서 예수님께 묻습니다. 제자들은 당연히 그렇게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자들의 할 일은 자신들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깨어 있을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포함될 것입니다.




 나를 위해 기도하는 이가 있습니다. 나를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이끌어줌에 거절하지 말고 “예”하고 응답할 때 나는 깨어서 주님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42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


베드로 사도는 깨어 있음에 대한 비유를 제자들에게만 말씀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인지를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충성스러운 종의 비유를 다시 들려주십니다. 충성스러운 종의 비유는 바로 사도들에게 요청되는 태도가 비유로 설명되고 있는 것입니다.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 모든 신앙인들의 의무라면, 교회를 지도하고 다스려야 할 자리에 앉아 있는 이에겐 말할 나위가 없다는 것입니다.




 집주인이 집을 멀리 떠나게 되었습니다. 주인은 자기가 없는 동안을 대비하여 관리인에게 집안을 제대로 보살피도록 책임을 맡겼습니다. 관리인은 주인이 아니라 다만 관리하는 사람일 뿐이고 따라서 주인이 바라는 대로 행동해야 하기 때문에 충성스럽고 슬기로워야 합니다.




43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또한 관리인은 주인이 예고 없이 돌아와 관리보고를 요구하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슬기로운 사람의 모습입니다. 관리인이 양심적으로 일한다면 주인은 그에게 자신의 모든 재산을 맡길 것입니다.


충실 한 종은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입니다. 누가 보든 안보든 간에, 나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 충실한 삶이 나에게 축복을 줄 것입니다.




44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관리인은 보통 노예들보다는 좀 높은 권위를 가지고 있지만 노예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로 집안 살림을 맡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충성스럽고 슬기로운 관리인을 말씀하십니다. 주인의 재산을 지키기 위한 성실과 그것을 관리하기 위한 현명한 관리인. 그런 관리인에게 주인은 모든 것을 맡길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도들을 포함한 모든 이들은 충성스럽고 슬기로워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관리인으로서 셈을 바쳐야 한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45 그러나 만일 그 종이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게 오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하인들과 하녀들을 때리고 또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그러나 만약 그가 부당하고 사악하게 일을 하며, 집안사람들을 못살게 굴고 자신의 지위를 이기적으로 남용하여 멋대로 먹고 마신다면, 주인은 그에게 엄한 벌을 내릴 것입니다.




46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처단하여 불충실한 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인간에게는 언제나 유혹이 있습니다. 관리인에게 유혹은 바로 “주님이 더디 오시겠지”라는 것입니다. 그 유혹에 넘어가게 되면 불충한 종의 모습으로 변신하게 됩니다. 오늘의 나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주님의 다시오심을 기다리고 있으면서도 전혀 기다리는 사람처럼 행동하지도 않고, 준비하지도 않고, 안 오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나에게 맡겨진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다음에 하지.”라고 생각하고 하루 이틀 뒤로 미루다가 그 일을 맡긴 분이 “이제 결과물을 주세요!”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할까요? “아직 못했는데요.”이런 말이 통할까요? 내가 직장 상사라면 이런 말을 받아 주겠습니까?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라는 말은 엄한 벌을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페르시아의 풍습에 의하면 그런 종들은 칼로 전신을 동강을 냈습니다. 또한 매를 많이 맞는다는 것은 그냥 얻어맞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끝장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영원한 벌을 받게 될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다 언젠가는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상을 받을 사람도 있겠고, 벌을 받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 기준은 “받은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였느냐? 그렇지 못하였느냐”로 결정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우리들은 누구나 다 항상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48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주인의 뜻을 알고 있으면서도 따르지 않은 종은 엄한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이 더 큰 벌을 받는 것 또한 당연한 것입니다. 매를 맞는 다는 것은 보통 종들이 받는 벌인데 여기서는 내세의 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생각과 계획을 전혀 전해 받지 못한 사람은 벌을 좀 덜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벌을 받는 것은 마찬가지 입니다. 왜냐하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많이 알고 있으면서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더 풍부한 지식을 받았기에 그들에게는 더 많은 것이 요구될 것이고, 더 큰 축복이 따를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잘못을 저지른다면 더 큰 벌을 받은 것은 당연합니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책임을 맡기셨습니다. 나는 관리인입니다. 어떻게 관리하고 있습니까? 나는 슬기롭고 충성스러운 관리인입니까?


성경에 대해서 마땅히 공부해야 하고, 교리에 대해서 마땅히 공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공부하지 않는 사람, 그래서 지키지 못한 사람도 벌을 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아서 실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알면서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당연히 더 큰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공부할 기회를 미루지 맙시다. 함께 공부하고 실천하여 하느님나라에서 큰 복을 함께 누려야 하겠습니다.




3. 나눔 및 묵상


1. 깨어있는 삶(늘 준비하고 있는 삶)은 어떤 삶이며, 내가 주님께 바라고 있는 것은 어떤 것인지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2. 만일 지금의 상황에서 주님께서 오신다면 나는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 내일 주님께서 오시겠다고 하신다면 나는 주님께 어떤 말씀을 드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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