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령성월(慰靈聖月)
가톨릭 신자들은 죽음을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나아감으로 보고 있기에 다른 이들보다도 죽음과 친숙한 편입니다. 그리고 죽은 이들을 자주 기억합니다. 부모님의 기일에는 미사를 봉헌하며 행복과 광명과 평화의 나라로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며, 상갓집에는 반드시 찾아가 연도를 바치며 영원한 행복을 빌어 줍니다. 또한 매 식사 후 기도를 바칠 때마다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하며 기도합니다. 또한 제일 많이 하는 기도인 묵주기도를 마치며 연옥 영혼 중에서도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기억하며 기도“합니다. 이처럼 가톨릭 신앙인들은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선행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1. 위령성월이란?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을 특별히 기억하며 기도하는 달로서 교회는 매년 11월을 위령 성월로 정하였습니다.
성월(聖月)이란 전례력과는 상관없이 특정한 달에 특정한 신심을 키위기 위해서 정해 놓은 한 달 동안의 특별 신심 기간을 의미합니다.
특히 정해 놓은 법에 따라 성월에 일정한 신심 행위를 바치면 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역대 교황님들이 특전을 줌으로써 성월의 신심은 더욱 널리 퍼졌습니다.
그래서 가톨릭 신자들은 묘지를 방문하고 돌아가신 분들을 위하여 연미사를 봉헌합니다. 연옥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2. 위령성월의 제정
구약의 마카베오 후서에 보면 전장에서 전사한 군인들을 위해 하느님의 성전에서 제사를 바치게 합니다(2마카 12,39-46참조). 유다 마카베오는 기원전 163년경 독립 전쟁에서 전사한 이들을 위한 속죄의 제사와 기도를 바칩니다. 전사한 이들의 옷에서 얌니아의 우상이 부적으로 발견되었기 때문에 속죄의 기도를 바친 것이며, 죽은 이들의 부활을 청하는 기도이기 때문에 본래적인 의미의 위령기도라고 하겠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사도 바오로가 “주님께서 그 날에 그가 주님으로부터 자비를 얻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라는 내용으로 오네시포로라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구절(2티모1,18)이 유일한 위령 기도입니다.
초세기부터 가톨릭 교회는 죽은 이들을 자주 기억하고 그들을 위해 미사를 봉헌하는 등 많은 기도를 바쳐왔습니다. 로마 시대에 있었던 삼백년간의 박해 당시에 신자들의 유일한 피난처였던 지하 공동묘지(까따꼼바)의 비석에도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문이 많이 새겨져 있는데, 그 내용은 죽은 이들이 속히 죄의 사함을 받아, 천국의 영원한 행복에 들게 해 달라는 것들입니다. 이때부터 이미 교회 전례에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문이 삽입되기 시작했습니다.
교부 테르툴리아노의 211년경의 작품에서 공적으로 바치는 위령 기도가 발견됩니다. 여기서 테르툴리아노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죽은 이들의 매년 기념일에 드리는 기도문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러한 기도가 오랜 전통이라고 말하고 있스빈다. 또한 히폴리토(170-236)는 죽은 이를 위한 미사 중에 사용되던 기도문을 소개하였고, 아르노비오(?-327)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모임에서 사용된 것으로 여겨지는 산 이와 죽은 이들을 위한 평화와 용서를 청하는 기도문을 전하고 있습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344-407)는 죽은 이를 위한 미사, 위령 기도와 죽은 이를 위한 자선 행위 등은 하느님의 자비를 얻기 위한 방법으로 사도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회가 죽은 이들을 위한 공식 전례 축일을 제정한 것은 10세기 경에 이루어졌습니다. 중세 초기에 수도원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 수도자들을 기억하던 관습에서 시작되었고, 이를 지역 교회가 받아들이면서 비로소 위령의 날이 전례 안에 등장하였습니다.
11월이 위령성월이 된 것은 998년에 클뤼니 수도원의 5대 원장이었던 오딜로에 의해서입니다. 오딜로는 11월 2일을 위령의 날로 지내도록 수도자들에게 명령하였습니다. 11월 2일에 죽은 이를 위해 특별한 기도를 드리고 시간 전례를 노래할 것을 지시하였습니다. 이것이 널리 퍼짐으로써 11월 한 달 동안 위령 기도가 많이 바쳐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11월이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위령 성월로 정해졌습니다.
교황 비오 9세, 레오 13세, 그리고 비오 11세(1922-1939)가 위령 성월에 죽은 이를 위해 기도를 하면 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특전을 베풀면서 위령 성월의 신심은 더욱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이로써 11월은 세상을 떠난 부모나 친지의 영혼, 특히 연옥 영혼들을 위해 기도와 희생을 바치며, 자신의 죽음도 묵상해 보는 특별한 신심의 달이 되었습니다. 또한 11월은 전례력으로 연중 마지막 시기에 해당되고, 계절도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시기이기에 죽음을 묵상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이며, 죽은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하기 좋은 때이기도 합니다.
3.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 연도(煉禱)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바치는 위령기도를 우리는 보통 연도(煉禱)라고 합니다. 연도라는 말은 연옥에 있는 영혼들이 쇠붙이가 불에 달구어 더욱 깨끗하고 단단한 쇠로 거듭나듯이 나의 기도를 통해서 그들의 허물이 깨끗이 씻어져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느님께 비는 기도입니다.
교회는 설립 초기부터 신자가 죽으면 그를 위한 여러 가지 전례 행위들을 하였습니다. 박해 상황이었던 초대 교회에서는 죽음을 천상탄일이라는 뜻으로 “생일”이라고 부를 만큼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부활 신앙에 충실하였으며, 죽은 이들이 영원한 생명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344-407)도 죽은 이를 위한 미사, 위령 기도와 주은 이를 위한 자선 행위 등은 하느님의 자비를 얻기 위한 방법으로 사도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죽은 이를 위한 위령 기도는 “모든 성인의 통공에 관한 교리”와 “하느님의 계획안에서 인간의 활동에 관한 교리”를 잘 보여줍니다.
살아 있는 이들이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할 수 있으며 이 기도가 죽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모든 성인의 통공” 때문입니다. 모든 성인의 통공에 대해서 교황 레오 13세(1878-1903)는 “성체성사를 통해 더욱 깊어지고 강해지며 살아 있는 사람들끼리 나누는 사랑이라는 은총은 모든 성인의 통공 안에 머무르는 모든 이들에게 흘러넘친다. 다시 말해서 기도, 도움, 헌신, 호의 등과 같은 신자들의 나눔은 하느님 나라에 이미 다다른 사람들과 아직 연옥 단련을 받는 사람들, 그리고 지상의 순례 중에 있는 사람들이,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사랑이 넘치는 살아 있는 단일 공동체 안에 머무른다는 증거이며 이것이 바로 모든 성인의 통공인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사랑이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나이며 거룩하고 보편된 공동체입니다. 이 공동체의 주인이시며 시작도 끝도 없으신 하느님 앞에서 시간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도 이 공동체의 일원이며 살아 있는 우리들도 이 공동체의 동일한 구성원입니다. 즉 천상교회와 지상교회는 같은 공동체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지체들이라는 유대감 안에서 죽음으로 연옥에서 고통 받고 있는 영혼들을 위해 우리가 기도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느님 나라에 이미 들어가 있는 성인들은 이 세상에서의 순례를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을 위해 하느님께 간구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산 이들이 바치는 죽은 이들을 위한 위령 기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몸소 만들어 주신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 안에서 더욱 풍요롭게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계획안에서 인간의 하느님 나라를 위한 투신이라는 측면 또한 위령 기도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독단적인 의지로 마련하시지는 않으며, 피조물의 도움을 통해서 이룩하기를 원하고, 피조물의 활동을 통해서 하느님의 의지를 세상에 드러내십니다. 그러나 때가 오면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 심판 때 의인은 영복을 얻고, 죄인은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죄를 씻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데, 죽은 후에 인간은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세례 후에 범한 죄를 씻고 정화되기 위해서는 연옥에서 단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죽은 이들을 위하여 살아있는 이들이 바치는 희생과 자선,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외아들까지 내어주신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살아 있는 이들의 위령 기도는 죽은 이들에게 힘이 되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바치고 있는 연도는 시편 129편과 50편, 성인 호칭 기도 및 찬미 기도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우리 고유의 가락에 맞춰서 노래로 바치고 있습니다. 연도의 음률을 제대로 익히고, 공동체가 함께 아름답고, 구성진 목소리로 노래할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더욱 기쁘게 받아들여 주실 것입니다.
4. 연옥
거룩하게 살다 간 성인은 죽음과 동시에 하느님 나라에서 끝없는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난 보통 사람들이 세례 후에 죄를 범했을 때, 그 죄를 뉘우치고 고해성사를 받으면 죄는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범한 죄와 영벌은 사라지더라도 잠벌은 남게 되며, 이 잠벌은 보속을 통해 탕감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행해야 하는 보속이 있는 것처럼, 하느님 나라를 위해 치러야 할 보속이 있는데, 그 보속을 치르는 곳이 연옥입니다. 또한 인간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죄를 짓기도 하고, 지은 죄를 뉘우치거나 사죄 받지 못한 채 죽기도 합니다. 이때 그의 영혼은 하느님 나라에 바로 들어갈 수 없으며 죄를 씻는 정화의 장소가 요청되는데, 그곳이 바로 연옥입니다. 연옥 영혼들은 속죄를 위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이러한 연옥 영혼을 기도와 자선 행위와 미사 봉헌 등을 통해서 도울 수 있다고 교회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위령 성월이 연옥 영혼을 위한 특별한 시기가 됩니다.
5. 위령의 날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서 모든 죽은 이를 기억하는 날은 11월 2일 위령의 날입니다. 이날은 추사이망 첨례(追思已亡 瞻禮)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추사이망이라는 것은 이미 죽은 사람을 생각하여 돕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위령의 날은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여, 그들이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날인 것입니다.
통상 11월 2일에 거행하며, 만약 11월 2일이 주일이라면 다음날로 옮겨서 거행합니다. 이날은 무엇보다도 아직 연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영혼들이 빨리 정화되어 복된 하느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그들을 위한 위령 미사를 봉헌하는 날입니다.
11월 1일(모든 성인의 날)이 하느님 나라를 완성한 성인들을 기념하는 축제의 성격이 강하다면, 그 다음날인 위령의 날은 연옥 영혼을 생각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날입니다. 모든 성인의 날과 위령의 날은 살아 있는 이들에게 삶과 죽음을 묵상하게 하는 기회를 주며, 특히 전례력으로 연중 마지막 시기인 11월에 자리 잡음으로써 종말에 성취될 구원을 미리 묵상하게 하는 날이라 하겠습니다.
한국 교회는 위령 성월 중인 11월 1일부터 8일까지 열심한 마음으로 묘지를 방문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신자들은 연옥에 있는 이들에게만 양도할 수 있는 전대사를 베풀고 있습니다. 이 위령성월에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