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제3주간 화요일
안녕하세요?
오늘 다니엘서의 말씀은 유다인 세 청년이 불가마속에서 살아 나오는 장면 중의 하나입니다. 오늘 독서의 앞 부분을 보시면 느부갓네살 왕이 우상숭배를 거부하는 유다인들을 산채로 활활 타오르는 화덕 속에 집에넣었습니다. 오늘 독서의 내용은 그 불길 가운데를 걸으면서도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는 아자리야의 노래입니다.
아자리야는 우상숭배를 거절한 죄로 활활 타는 불가마 속에 던져졌습니다. 그 상황에서 그는 죽기 전에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는 속죄의 제물을 드리고 싶어했지만 제물로 드릴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자리야는 그 화로속에서 양과 염소보다 더 좋은 제물을 찾아내어 그 제물을 하느님께 드렸습니다. 그는 하느님께 다음과 같이 말씀드렸습니다. “우리의 뉘우치는 마음과 겸손하게 된 정신을 받아 주소서. 이것을 염소와 황소의 번제물로 여기시며 수많은 살진 양으로 여기시고 받아 주소서.” 그렇습니다. 아자리야가 하느님께 드린 제물은 ‘뉘우치는 마음’과 ‘겸손하게 된 정신’이었습니다. 아자리야는 그 순간에 하느님께서 정말로 기뻐하시는 제물을 바친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지금 아자리야의 입장에 선다면 어떻게 할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하느님을 원망하지는 않을지, 누구를 탓하지는 않을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용서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너희가 네 형제들을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오늘의 비유 자체의 배경은 고대 근동의 농지세나 로마제국의 세금 제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일만 달란트의 거액은 비유의 청중에게 근동의 대제국 이집트나 페르시아의 왕들을 연상시킵니다. 근동의 왕들은 신하들을 일정 지역의 책임자들로 내세우고, 농지세를 받아 정해진 몫을 왕실에 바치도록 했습니다. 첫 번째 종이 어쩌다 이렇게 엄청난 빚을 왕에게 지게 되었는지 청중은 아무런 설명도 얻어내지 못합니다. 이 종이 무능하다는 이야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가뭄이나 홍수 등 천재지변으로 그가 관리하는 지역의 농부들이 한 해 농사를 망쳤기 때문에 약속된 세금을 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종이 자신의 빚을 왕에게서 탕감받은 다음, 다른 종의 멱살을 쥐고 빚진 돈을 갚으라고 윽박지르는 장면은 아마도 세금 하청을 맡긴 하급 관리에게 빚독촉을 하는 것으로 이해할수도 있습니다.
1데나리온 하루품삯: 3만원
1달란트: 1000데나리온 : 3천만원
어려울 때 도와주는 것. 그것이 부부다. 힘이 되어주는 것.
요즘 경제상황. 연대 보증, 실직, 부도. 이런 사황하에서 이혼율이 급증하고 부부갈등이 심각해 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사랑해서이다.
만일 남편이 자신의 볼품없는 미모에 실증이 느껴져서 이혼을 요구한다면, 불평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는 아내와 남편과 시부모에게 얼마나 자비를 베풀고 있는가?
성사를 봐도 바뀌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자비를 원하는 것처럼 우리도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