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야!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죽은 사람이 살아날리는 없다.
내가 죽어서 내 힘으로 다시 살아날 리는 없다.
컵이 한번 깨지면 내 힘으로는 다시 붙지 않는다.
토마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을.
그런데 동료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뵈었다고 한다.
혹시 집단최면에 걸렸던 것일까?
……….
토마는 자기 주관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옛날 어느 마을에 유명한 학자가 있었다.
어느날 하인들이 모여서 내기를 하였다.
“주인에게 거짓말을 시킬 수 있다.”와 “주인은 절대로 넘어가지 않는다”였다.
하인들은 꽤를 내었다.
……
종 한명이 뛰어 들어와서
“나으리 지금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습니다.”
라고 알렸다.
그러자 그 학자는
“허허! 네가 헛것을 본게로구나. 어떻게 호랑이가 시장에 나타날 수 있단 말이냐…”
그는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았았다.
잠시후에 다른 종이 뛰어 들어와서 또 알렸다.
“나으리 지금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습니다.”
“허허 어떻게 호랑이가 시장에 나타날 수 있다는게냐….쓸데없는소리 하지 말거라.”
이렇게 말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잠시후에 다른 종이 나타나서
“나으리 지금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습니다.”
“그래! 얘들아 빨리 대문 잠궈라…”
했다나…
이 내용은 몇명이 꾸미기만 하면 한 사람 바보만드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것을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다.
사실 벌건 대낮에 호랑이가 사람들 사이에 나타날리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3명의 말에 넘어간 그 학자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아홉명의 말에도 넘어가지 않은 토마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비록 토마 사도가 믿지는 않았지만
아니 그렇게 강렬하게 믿었기에
그의 믿음은 더욱 굳세어 졌을 것이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이라고 고백하는 것처럼
너무 쉽게 믿으면 또 쉽게 거부할 수 있다.
우리 신앙인들도 너무 쉽게 신앙을 받아들이기 또 너무 쉽게 신앙을 거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토마처럼 그렇게 예수님을 내 손으로 만지기 전까지는 믿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분을 믿고 있다면
나 또한 토마 사도처럼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이라고 고백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