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마음 -루가 신부님-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최근에 어느 신문에서 나온 기사가 생각났습니다. 인터넷 안에서 크게 화제가 된 이 글을 소개하면서 오늘 강론을 하고자 합니다.

“아버지는 누구인가? 아버지란 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겁이 날 때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기가 기대한 만큼 아들, 딸의 학교 성적이 좋지 않을 때 겉으로는, ‘괜찮아, 괜찮아’ 하지만 속으로는 몹시 화가 나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을 한 유리로 되어 있다. 그래서 잘 깨지기도 하지만, 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

아버지가 아침 식탁에서 성급하게 일어나서 나가는 장소(그 곳을 직장이라고 한다)는, 즐거운 일만 기다리고 있는 곳은 아니다. 아버지는 머리가 셋 달린 龍과 싸우러 나간다. 그것은 피로와, 끝없는 일과, 직장 상사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다.

아버지란 ‘내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정말 아버지다운가?’하는 자책을 날마다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식을 결혼시킬 때 한없이 울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을 나타내는 사람이다.

아들, 딸이 밤늦게 돌아올 때에 어머니는 열 번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열 번 현관을 쳐다본다. 아버지의 최고의 자랑은 자식들이 남의 칭찬을 받을 때이다.

아버지가 가장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속담이 있다. 그것은 “가장 좋은 교훈은 손수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라는 속담이다. 아버지는 늘 자식들에게 그럴 듯한 교훈을 하면서도, 실제 자신이 모범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 점에 있어서는 미안하게 생각도 하고 남 모르는 콤플렉스도 가지고 있다.

아버지는 이중적인 태도를 곧잘 취한다. 그 이유는 ‘아들, 딸들이 나를 닮아 주었으면’하고 생각하면서도, ‘나를 닮지 않아 주었으면’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대한 인상은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그대가 지금 몇 살이든지, 아버지에 대한 현재의 생각이 최종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일반적으로 나이에 따라 변하는 아버지의 인상은,

4세때–아빠는 무엇이나 할 수 있다.
7세때–아빠는 아는 것이 정말 많다.
8세때–아빠와 선생님 중 누가 더 높을까?
12세때-아빠는 모르는 것이 많아.
14세때-우리 아버지요? 세대 차이가 나요.
25세때-아버지를 이해하지만, 기성세대는 갔습니다.
30세때-아버지의 의견도 일리가 있지요.
40세때-여보! 우리가 이 일을 결정하기 前에, 아버지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50세때-아버님은 훌륭한 분이었어.
60세때-아버님께서 살아 계셨다면, 꼭 助言을 들었을 텐데…

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도,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後에야 보고 싶은 사람이다.
아버지는 결코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가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체면과 자존심과 미안함 같은 것이 어우러져서 그 마음을 쉽게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웃음은 어머니의 웃음의 2배쯤 농도가 진하다.
울음은 열 배쯤 될 것이다.

아들, 딸들은 아버지의 수입이 적은 것이나, 아버지의 지위가 높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이 있지만, 아버지는 그런 마음에 속으로만 운다.

아버지는 가정에서 어른인 체를 해야 하지만, 친한 친구나 맘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소년이 된다.

아버지는 어머니 앞에서는 기도도 안 하지만, 혼자 車를 운전하면서는 큰소리로 기도도 하고 주문을 외기도 하는 사람이다.

어머니의 가슴은 봄과 여름을 왔다갔다하지만, 아버지의 가슴은 가을과 겨울을 오고간다.

아버지! 뒷동산의 바위 같은 이름이다. 시골마을의 느티나무 같은 크나 큰 이름이다.”

오늘 복음에서 맏아들과 둘째 아들이 나옵니다. 이 두 아들은 너무나 대비가 됩니다.
맏아들은 아버지가 함께 일하자고 하였을 때 싫다고 하면서 아버지에게 반항을 하였습니다.
반면 둘째 아들은 아버지가 함께 일하자고 하였을 때 가겠다는 대답을 합니다.

그러나 맏아들이 결국 뉘우치고서 일하러 간 반면 둘째 아들은 일하러 가지 않습니다.

이 두 아들의 차이점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는가 그렇지 않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뉘우친다”는 표현 안에는 맏아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분이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는지를 깨우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방금 제가 읽었던 “아버지”라는 글을 읽으면서 여러분은 가슴이 뭉클하셨을 것입니다. 다른게 있겠습니까? 우리를 사랑하신 아버지가 생각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에 감사하기도 하고, 죄송스럽기도 하고 뉘우쳐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내리 사랑이라고 아무리 자식이 아버지를 사랑한다 해도 그 사랑만큼이나 뉘우침도 많은 법이지 않겠습니까?

아버지의 마음을 알면 알수록 우리는 아버지의 일을 거들고 싶어집니다. 그 일을 함께 하고자 합니다. 기꺼이 말이지요.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면 모를수록 함께 일하자는 아버지의 말씀은 명령으로 들리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의무감이 되어 족쇄를 채우게 되는 것이 되고 맙니다.

하느님 아버지… 이 얼마나 축복 받은 고백입니까?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신다는 것.. 얼마나 은총입니까? 더나아가 아버지 하느님은 세상 그 어떤 아버지 보다도 가장 아버지다운 사랑의 아버지 아닙니까?

아버지 하느님은 친아들이신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와 같은 허약한 인간이 되게 하시고, 그분은 낮추시고 낮추시어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토록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우리 모두를 당신 아들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친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그렇게 순종하신 바와 같이 우리도 그렇게 순종한다면 아들로서의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제 맏형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우리의 마음으로 간직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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