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주일 강론

 

연중 제33주일




제 1 독서 : 잠언 31, 10-1. 19-20. 30-31


제 2 독서 : 1데살 5, 1-6


복     음 : 마태 25, 14-30




제 1 독서 : 잠언의 저자는 마지막을 알파벳 시로 장식한다. 알렙에서부터 타브까지 총 22개의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첫 단어가 시작한다. 내용은 용감하고 현숙한 부인에 대한 찬사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부인으로서, 어머니로서 그리고 집안의 여주인으로서 생각했던 완벽한 여인의 모습이 여기에 나타난다. 이것은 우리 시대 여인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그러나 시대와 문화의 차이를 넘어 변함없는 것은 자기 소명에 대한 충실성과 하느님을 두려워함(30절)이다.




제 2 독서 : 4장에서 사도 바오로는 주님의 오심에 대해서 데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답변을 했다. 그러나 사도 바오로는 주님께서 오시는 날에 대한 그들의 생각에 찬동하지 않는 다. 그날은 도둑같이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때에 올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주님의 면전에서 사는 것이고, 언제든지 그분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는 상태로 사는 것이다.


오늘, 사도 바오로는 낮과 밤, 빛과 어둠이라는 대비를 차용하고 있다. 이런 대비는 이미 쿰란 공동체에서 널리 알려진 이분법이었다. 이 대비에 의하면 사람은 크게 선인과 악인이라는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선인과 악인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영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에 그렇게 나누어지는 것이다. 악한 길을 가는 사람들은 멸망에 이르고 선한 길을 가는 사람은 구원에 이른다. 이런 이분법은 좁은 문에 대한 말씀(마태 7, 13-14)에서도 나타난다.




복     음 : 주님께서는 공생활의 막바지에 이르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거기에 가시자마자 바리사이파 사람들과의 투쟁, 율법학자들과의 논쟁이 시작되었고, 대사제들의 음모를 받기 시작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예수께서는 비유를 들어 하늘나라에 대해 가르치셨다.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 열 처녀의 비유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복음의 내용인 달란트의 비유이다. 이 달란트의 비유가 끝나자마자 예수를 죽일 음모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26, 1-5). 이렇게 절박한 상황에서 예수께서는 달란트의 비유를 하셨다. 그만큼 달란트의 비유가 중요하다는 것이 부각된다.


종들에게 자기가 가진 재산을 맡긴다는 것은 주인이 종들을 그만큼 깊이 신뢰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셋째 종은 왜 실패했을까 그는 주인의 것을 보관하는 데만 신경을 썼다. 비록 그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지만 따라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충실한 종 혹은 불충실한 종이 되는 차원에도 미치지 못하고 소유의 차원에만 머물러버렸다. 주인은 자기 재산을 맡기며 셋째 종의 능력을 신뢰했으나 셋째 종은 주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고 자기의 능력도 파악하지 못했다. 셋째 종이 실패한 이유는 한마디로 주인에게 충실성과 신뢰심을 가지는 인격적 차원에까지 올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비유는 앞 뒤 문맥으로 볼 때, 오시는 사람의 아들을 중심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즉 예수께서 부재 시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주님께서 우리를 믿고 맡기신 달란트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주님과의 관계가 드러난다. 주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꽁꽁 싸두는 소유의 차원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주님의 뜻을 파악하고 잘 활용할 것인가? 그것은 우리 각자가 스스로 결정할 문제이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마태 25, 14-30)의 말씀은 달란트의 비유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이 비유 말씀은 마태오복음에 나오는 세상 종말에 관한 비유 중에 두 번째인 것으로 “열 처녀의 비유”가 종의 슬기로움, 현명함에 관한 것이라면 “달란트의 비유”는 종의 충실함, 성실성에 관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심판하는 척도가 슬기로움(등잔에 기름을 넣어 준비하는 마음), 성실성(주어진 모든 여건을 최대한 이용하는 충직성) 그리고 형제애(가장 보잘것없는 이들에게 베푸는 마음)라고 보는 마태오 복음사가의 대전제 하에 오늘의 복음을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종들에게 맡긴 달란트는 각각 달랐는데 이는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능력과 재주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뜻합니다. 한 달란트는 6천 데나리온으로 한 데나리온이 일꾼의 하루 품삯인 점을 감안한다면 이 자체도 결코 적은 돈은 아닙니다. 그런데 첫째 종에게 다섯 달란트, 둘째 종에게 두 달란트가 주어졌기에 셋째 종에게 맡겨진 한 달란트는 매우 적어 보였고 시시해 보였던 것입니다. 혼자에게만 이런 돈이 주어졌다면 다른 이들과 비교를 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세 종들에게 맡겨진 돈은 세상을 살아나가는 인간의 모든 조건, 상황과 여건에 따라 다르게 전개되는 인생살이를 뜻하는 것입니다.


첫째 종은 주인이 맡겨주신 다섯 달란트를 갖고 부지런히 이를 잘 이용해서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고, 둘째 종도 두 달란트를 이용, 두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그러나 셋째 종은 자기 주인이 첫째, 둘째 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돈인 한 달란트를 주었기에 그것을 그냥 땅에 묻어둔 채 그대로 돌려주어 있는 것마저 빼앗기게 되었고 쫓겨나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첫째, 둘째 종은 “작은 일에 충실하였으니 더 큰 일을 맡기리라.”라는 주인의 칭찬을 듣고 더 큰 일을 맡을 수 있었지만 셋째 종은 있는 것마저 빼앗겨 완전 거지가 되어 쫓겨나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이 내포하고 있는 깊은 진리는 우리가 어떤 능력, 재능, 소질을 지녔다 할지라도 이것을 참으로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이고 기쁘고 감사하게 살 때 거기에 하느님의 축복이 있고 은총이 풍요롭게 넘쳐흐른다는 사실입니다. 왜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서 머리도 나쁘고 좋지 않은 환경과 가문에서 태어났는가 또는 왜 나는 하는 일마다 꼬이고 불행만 연속되는가 하고 운명론에 떨어지게 될 때 그 사람의 삶은 한 달란트를 받아 빵에 묻어두는 어리석고 게으른 종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남을 괴롭히고 악행을 일삼는 것만이 악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와 여건을 살리지 못하고 신세 타령만 하고 스스로 자포자기하는 삶을 살 때 그 삶 자체가 악으로 얼룩진 삶이요 그것이야말로 게으름으로 하느님의 분노를 사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 주어진 모든 것이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기쁘게 살고 감사하게 받아들이며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나갈 때 그 삶이야말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씀이 적용되어 하느님의 축복과 은총을 불러일으키는 복된 삶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LA 마라톤 대회(1984년)에서 다리 대신 두 손만으로 42.195km 마라톤 전코스를 달린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보브 위랜트로 베트남 전쟁 때 두 다리를 잃은 참전 용사였습니다. 마라톤이 시작되기 하루 전날 아침, 그는 심판도 없이 혼자 출발선으로 나갔습니다. 위랜트는 7년 전의 일을 생각하며 묵묵히 마라톤 코스를 달렸습니다.


그는 미국 대륙 4,454km를 두 팔로 걸어 3년 8개월 6일만에 횡단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모험적인 도전이라며 함께 동참했던 친구들은 기온이 60도를 오르는 뉴멕시코 사막 지대에 들어서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그의 곁을 떠났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상체만 이동하는 위랜트를 모습을 보고 “개가 티셔츠를 입고 고속도로를 기어가고 있다.”고 NBC 방송국에 전화를 거는 해프닝을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미주리를 지날 땐 베트남에서 지뢰를 밟고 두 다리를 잃어버린 위랜트를 업고 헬리콥터까지 갔던 전우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는 그때의 감격스러운 장면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모습이 실의에 빠진 청소년들과 장애인들에게 삶의 희망을 심어주는 기회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이런 생각만으로도 그는 전혀 외롭지 않았습니다.


3일 뒤 위랜트는 74시간 8분 26초라는 기록으로 결승선에 도착했습니다. 심판도 없고 경쟁자도 없는 고독한 경주를 3일만에 모두 마친 것이었습니다. 그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자신의 기록이 18시간이나 단축되었다고 크게 만족해했습니다. 아직도 달리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있는 위랜트는 늘 이웃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저에게는 권태로운 날이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 목표를 세워 그것을 해내는 것이 진짜 사는 재미입니다. 안된다고 생각했을 때는 다리가 열 개라도 그 사람의 인생은 끝장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역경을 극복하며 스스로 사는 재미를 만들어가는 위랜트와 같은 사람이야말로 하느님이 주신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고 불평불만과 비관에 젖어있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인생을 개척하고 삶의 의미를 찾으며 참으로 멋지게, 아름답게 사는 사람입니다. 주어진 달란트를 열 배, 백 배 늘려서 생명의 선물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와 영광을 드리며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제1독서 잠언에서 칭찬받는 어진 아내, 그녀는 손수 물레질을 해서 손가락으로 실을 타며 가정에 기쁨을 주는 성실하고 근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런 이야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하느님의 축복과 은총을 이끌어내는 소재로 삼고 있는 복된 사람입니다. 이런 정신과 마음 자세로 사는 이는 제2독서 데살로니카 전서의 말씀처럼 빛의 자녀, 대낮의 자녀로서 주님의 날이 생각지도 않은 때에 들이닥치더라도 떳떳하게 당당하게 그날을 맞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늘 최선을 다하는 가난하고 겸손한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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