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 -3주간 금요일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


주일 미사 후, 집으로 돌아가는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횡단보도 앞에서 보따리를 부둥켜 안고 앉아있는 노부부를 보았습니다. 신호가 바뀌어도 그들은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그녀는 노부부에게 다가갔습니다.


“할머니! 누구 기다리세요?”


그러자 할머니가 자초지정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들네 집에 왔는데 어디가 어딘지 몰라서 찾아 헤매다가 이렇게 앉아 있노라고. 전화번호가 있지만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는다고


그녀는 노부부에게 말했습니다.


“저희 집에 바로 이 앞인데 저희 집에 가서 기다리세요.”


그녀는 노부부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갔습니다.


점심때가 지났기 때문에 그녀는 노부부에게 점심을 대접했습니다.


계속 전화를 했지만 노부부의 아들은 받지를 않았습니다.


저녁 무렵에 겨우 노부부의 아들과 통화가 되었습니다. 전화를 받은 아들은 즉시 달려왔습니다.


아들도 자초지정을 이야기했습니다. 부모님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아이가 아파서 병원 응급실에 갔노라고. 자신은 휴대폰을 가지고 있지만 부모님이 전화가 없으니 발만 동동 구르다가 터미널과 아파트 주변을 몇 번을 돌아보았노라고…


노부부의 아들은 그녀에게 허리를 굽혀서 몇 번이고 감사의 인사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인사받기를 거절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제 부모님처럼 그렇게 대해드렸던 것입니다. 저한테 고마워하지 마시고 예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율법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습니다.


“모든 계명 중에 어느 것이 첫째가는 계명입니까?”


유다교의 계명에는 613개가 있었습니다. 248개는 명령이고 365개는 금령입니다. 랍비들 사이에서도 어떤 계명이 첫째가는 계명인지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명쾌하게 대답해 주십니다.


“첫째가는 계명은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느님은 유일한 주님이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


이 말씀은 신명기 6장4절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어른이 된 남자 유다인이 매일 아침 외우던 중대한 기도의 시작 말씀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계명, 이것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또 전체적으로 자기 자신을 바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가지고 하느님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을 하십니다.


또 둘째가는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는 것이다. 이 두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율법학자는 이것을 묻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레위기 19장 18절을 인용하여 둘째 계명을 가르치십니다. 유다인에게 있어서 이웃은 친구들, 동료들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포함하고 계십니다. 사마리아안과 이방인 그리고 유다인, 세리와 죄인 그리고 생활이 문란한 여인과 의인이라고 보여지는 바리사이파 사람들, 친구, 적 모두가 이웃입니다. 예수님의 이웃 개념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얼마나 보편적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아무런 구별 없이, 종교, 지위, 남녀노소 등을 떠나 모든 이가 이웃이고, 우리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고, 필요한 경우 용서를 받을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교의 율법 규정을 십계명으로 환원하셨고, 십계명은 다시 이렇게 사랑의 이중계명으로 환원하셨습니다. 율법의 핵심은 결국 사랑의 이중계명, 곧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율법학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선생님, ‘하느님은 한 분이시며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은 과연 옳습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 과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는 것’ 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보다 훨씬 더 낫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율법학자에게 완전한 만족을 주었습니다. 율법학자는 모든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바치는 의식보다도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예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너는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슬기로운 율법학자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과연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다가간 사람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내 이웃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혹시 내가 알고 있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만 사랑하고, 그를 모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랑의 의무를 이행 안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사랑이신 주님!


당신께서는 모든 계명중의 으뜸은 바로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온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하지 못했고, 이웃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입술로만 사랑을 외쳤습니다. 이제는 입술로만 고백하는 사랑이 아니라 손과 발과 마음으로 고백하는 사랑을 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당신 나라에 가까이 다가가 있는 자녀가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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