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은 지상에 사는
인간의 근본적 자세이고,
불안과 고통은 인간의 집이며,
종말론은 그의 희망입니다.
지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모든 세대가 세상의 행복,
세상의 평등을 건설하려고
시도하는 초기의 노력이
무참히 깨어지면서 그 직접적
결과로 인간의 내면에는
더 심각한 불신과 죽음보다
더 괴로운 염세적 성향이 남게 됩니다.
유효한 요소로서는
선의의 사람들의 선한 의지,
그 건설에 투입된 사랑,
하느님 나라라는 거룩한 모델을 향한
더욷더 분명한 접근이 그것입니다.
그 나라에서는 모든 사람이 사람이요,
모든 사람이 평등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사람이
지상의 차원에 만족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 그의 존재에
신성(神性)의 싹들을 심어 주셨고,
하느님 나라의 차원처럼 무한히 위대하고
완전한 차원을 설정해 놓으셨는데 말입니다.
이 하느님 나라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미 우리 안에 있다면,
어떻게 인간이 인간 중심적인
이 지상의 나라
-비록 아름답고 흥미로울지라도- 에
안주할 수 있겠습니까?
조만간 그 장벽이 무너질 것입니다.
내면으로부터 하느님 자녀의 참된 본성이
드러나게 되면 어떻게 인간의 자녀가
되는 것만으로 만족하겠습니까?
여기에 불안의 참된 요인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무의식적 욕구가,
현실너머 저편으로 볼 수 없는 존재의
벽을 뚫고 나가고자 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요컨대, 가장 위대한 진리,
가장 흥분을 자아내는 소식,
가장 강렬한 확신은 바로 이것입니다.
즉 내가 한낱
'주님의 보잘것 없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부자관계는 법적관계가
아니라 진정한 사실 관계입니다.
인간의 자녀로 태어났지만 은총으로써
하느님의 아들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이 모든 내용은 농담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위대성의 근간을 형성하고
모든 희망의 동기가 되고 있습니다.
까를로 까레또의 매일 묵상 중에서
♬ Veni lumen cordium 오소서 마음의 빛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