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느님이 오시는
주님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기다렸습니다.
나에게는 기도하는 것이
기다리는 것을 뜻합니다.
내 한계의 마지막 선상에서,
내 사랑의 절박감 속에서
기다릴 힘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그분은
늘 오셨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항상
'새로움'과 영원한
다양성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분과 더불어
잘 지냈다는 것은 부분적인
사실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의 본질적 형상에 입각해서
항상 고통스러운 사랑을 제시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게 내 사랑을 온 세상의
고통과 내 형제들의 아픔과
일치시킬 것을 강력히 권하셨습니다.
나는 만일 그분의 은총이
내가 바라는 대로
나를 받쳐 준다면
내 생애 중 어느 때나
그 만남의 장소로
돌아가리라 생각합니다.
나는 죽음이 가까워지면서
나의 가난이 증대되고
점점 더 기다림이
고통스러워질 것을
예견하지만 더 이상
그 약속을 어기기를 원치 않습니다.
오시는 하느님께서
이미 나를 정복하셨습니다.
그래서 오직 이 세상
사물들을 보는 데 지쳐 있는
내 눈들은 그분께
보내는 웃음으로 행복합니다.
나는 그분이 내 한계의
베일을 찢어 버리시고
나를 교회라는 모든
'당신 백성'과 더불어 빛과
생명과 사랑으로
이루어진 보이지 않는
당신의 나라로 인도하시기 위해
마지막으로 오실 때,
내 눈들이 활짝 열려 있고
그 놀라운 사건 앞에서
웃을 준비가 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그 날이 빨리 오도록 하기 위해,
묵시록 마지막 대목에 표현되고 있으며
(묵시 22,20 참조)
그 계시된 내용들에 대한
봉인으로 인정되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기도를,
내 기도로 삼겠습니다.
"오소서, 주 예수님."
마찬가지로 나는 그분의
응답에 담겨 있는 환희의 찬
희망을 내 희망으로 삼겠습니다.
"그렇다, 내가 곧 가겠다!" 아멘
까를르 까레또의 매일 묵상 중에서
♬ Maranatha! Alleluia! 마라나타 알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