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아주 감수성이
강한 가난한 소녀가 내게 말했습니다.
"저의 할아버지는 일을 그만두시자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셨어요.
얼마 동안은 최선을 다하셨지만
힘이 달리시자 집에 짧막한
편지를 남기시고 강어귀에 있는
절벽에서 몸을 던져 돌아가셨어요.
중국 사람들은 종종 식구가 많고
가난한 집에 게속해서
부담을 주기보다는 자살함으로써
조용히 죽기를 택하거든요."
그러나 바로 이 같은
비인간적이고 잔혹한 상황에서
복음의 현상이 딱딱한 지표를
깨부수고 의식 속으로 밀려 들어옵니다.
나는 그것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좀 더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만큼 말입니다.
나는 현세의 압박으로부터
헤어나고자 하는 성 바오로의
사고가 무엇을 말하는지 체험했습니다.
"나에게서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죽는 것도 나에게는 이득이 됩니다.
그러나 내가 이 세상에 더 살아서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과연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 둘 사이에 끼여 있으나
마음 같아서는 이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싶습니다.
또 그 편이 훨씬 낫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위해서는
내가 이 세상에
더 살아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확신이 섰기 때문에 나는
살아 남아서 여전히 여러분과 함께
지내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필립 1,21-25)
홍콩에서 나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사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부활했고,
역사는 혼돈이 아닌
진리를 향해 가고 있으며,
우리의 눈물은 결코 헛되지 않고,
하느님은 살아 계신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모든 것에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이야 말로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살 가치가 있고, 자신의 존재를
더 연장시킬 가치가 있으며
푸코 신부가 말했듯이 말할 가치가 있습니다.
"복음을 위해서라면 세상 끝까지 가서
최후의 심판 때까지라도 살 용의가 있습니다."
까를르 까레또의 매일 묵상 중에서
♬ Memento nostri Domine 주님 저희를 기억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