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자신을 공격한 무수한 악 앞에서
머리를 들고 웃을 수 있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떤 맹인이 내게 말하기를
자신이 눈이 멀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까지 12년이
걸렸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나중에 이해하고 웃었습니다.
사물들 가운데 신비가 있습니다.
생명에는 신비가 있습니다.
고통에는 신비가 있습니다.
그 신비는 밤과 같아서 알아들으려면
여명을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희망한다는 것을 뜻하고
희망은 인간의 인내심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인내심을 통해
인간은 자신을 알고 인식하기를 배웁니다.
실제로 성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참고 견디면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루가 21,19)
사람은 인내를 배우고 하느님의 침묵을
기다리는 데 익숙해질 때 '말씀'이 됩니다.
그 말씀. 그 말씀 전체가 예수님이고
예수님의 인격이고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요한 1,14)
우리 가운데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그분은 인간이 가난과
고통과 죽음으로 표현된 그 무서운
출애굽을 완성토록 도와 주기 위해
인간의 가난을 스스로 취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온 생애는 이런 시각에서
이해해야 하고 이런 전망에서 펼쳐져야 하고
이런 목적을 향해 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