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우리가
모든 사실을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당신의 비유들을
말씀하시기 훨씬 전에,
하느님 아버지께서
생명의 비유라는 깊고 깊은
심연과 우주적 차원에 관한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비유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
모두를 내포하고 있었으며,
말로써 표현되는 대신 사실과
존재하는 것들로써 표현되었습니다.
그것을 들은 사람은 듣지 않을 수 없는
그 비유에 빠져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들이
사실 자체로 이루어졌고 어떤 방법으로도
부인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해시계가 자신의 문자판에 가시적으로
지나가고 있는 시간을 가리키며 말합니다.
"'해가 정확하지 않다'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당신이 일부를 느끼고 있는
명백한 단일성과 실현의지의
기획자이신 그분이 어째서
감추지 않는 현존을 회피하시겠습니까?
그분을 세상의 건축가, 절대적 존재,
원동자 등 당신이 원하는 대로 부르십시오.
하지만 당신은 그분에게 의지할 필요를 느끼고,
그분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분을 속속들이 알기 전에라도 그분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결국 살 수 없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에 대해 말해
주고 있는데도 그분에 대한 의구심이
그분의 행동양식과 일처리 방식,
그리고 무엇보다도 깊은
침묵을 지키며 신비로우면서도 모호하게
존재를 드러내시는 데 대한 것이라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의심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그분의 가시적 표현이고
항상 존재하시는 그분의 현존의 표현입니다.
그분의 나신(裸身) 위에 베일이 덮여 있고
그분을 둘러싸고 있는 신비같은 것이
있을지라도 그러한 베일로는 놀랍고도
비할 데 없이 투명한 그분의 형상을 가릴 수 없습니다.
까를르 까레또의 매일 묵상 중에서
♬ De noche iremos 어둔 밤속 우리 가리, 오직 목마름 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