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위에 있는 사물들을 통해
하느님의 현존을 꾸준히
받아들이는 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또 다른 발견을 해야 합니다.
신앙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위격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내가 햇빛과 입맞춤하고
땅을 어루만지며
성 프란치스코와 함께
"내 주님이여 찬미받으소서...."를
노래 할 때나는 관상의
문턱에 서 있는 것입니다.
신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의
표현일 뿐 참다운 관상은 아닙니다.
관상은 수동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다운 관상에 이르기 위해서는
위격의 발견을 거쳐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광야에 이르러
"네 고향을 떠나라....
네 아들을 내게 바쳐라."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광야 전체에 현존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일반적인
믿음으로부터 자신 앞에 서 있는
위격이신 하느님에게로 옮아 갔습니다.
모세는 타오르는 떡갈나무
숲을 보았을 때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지 않고
앞만 똑바로 응시했습니다.
하느님의 위격화입니다.
위격의 발견은 곧
우리 인격의 신비입니다.
나라는 인격은 내 앞에 있는
다른 존재를 느낍니다.
모든 생명이 하나의 말씀이 됩니다(성부).
모든 빛이 하나의 말씀이 됩니다(예수).
모든 사랑이 하나의 위격입니다(성령).
이런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은
비극일 것입니다.
마치 단일성이 깨져 버린 것 같습니다.
즉 고통입니다.
그러나 사랑이신 성령의
계시가 내게 하느님의
단일성의 의미를 일깨워 줍니다.
아브라함의 경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자기 앞에 서 있는
세 사람을 보고 각 사람에게
'내 하느님이신 주님이시여'라고 말합니다
(창세기 18,1-33).
위격들의 삼위일체를 통해
하느님의 단일성을
발견하는 것이 관상의 본질 자체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체험을 통해
그 본질에 이르게 되면
이 세상에서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 즉 하느님 나라를 맛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