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형제이십니다.
그렇게 때문에 그분은 우리 가까이에
계시면서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에 이르기 위해 달려가야
할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볼 수 없는 것에서 드러난 사실들을
볼 수 있는 것에 기록하시고
-하느님이 행하시는 바를
인간으로서 행하십니다-
하느님의 천상 가정의 풍습을
지상의 인간 가정에 옮겨 놓으십니다.
이 모든 것을 '복음'이라 합니다.
예수님께서 복음 안에서 인간으로서
하시는 것은 하느님께서 하늘에서
행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통해
말씀하시는 내용은 그분이 하늘에서
성부께로부터 들으신 것입니다.
복음은 하늘의 성인들이 사는 것처럼
지상에서 사는 방법입니다.
복음은 모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델은 예수님의 삶의 양식에
볼 수 있게 된 볼 수 없는 완전성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의존해야 할
다른 책이 있어서도 안되며 참고해야 할
다른 어떤 모델이 있어서도 안 될것입니다.
복음은 살아 있는 위격 곧 예수님 자신입니다.
복음이 부유함보다 가난을 더 사랑한다면
그것이 곧 성부의 뜻이며 그분이
우리를 그 같은 당신의 취향에 따라 판단하지,
우리의 취향을 따라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일 복음이 용서와 자비를 원한다면
그것은 이런 행동 양식이,
곧 하느님의 생활양식이며 우리의 행동을
그 양식에 일치시켜야 함을 뜻합니다.
만일 복음이 부활을 믿는다면
그 사실에 대해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만일 복음이 가난한 사람들, 목자들,
노동자들의 단순한 생활을 더 좋아하며
하느님의 아들이 가난하고
단순한 노동자이기를 원했다면
우리는 가난하지도 단순하지도 않고
노동자도 아닐 때 조심해야 합니다.
만일 복음이 우리에게 눈이 하나 없이
또는 팔이 하나 없이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지옥에
가는 것보다 낫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아름다움에 신경을 쓰기보다
우리의 구원에 더 신경을 쓰는 데 익숙해져야 합니다.
만일 복음이 우리가
하늘에 계신 성부의 자녀들이라고 말한다면
어째서 그것을 의심합니까?
어째서 평화와 기쁨 속에 있지 못한단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