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 수천 년에 걸쳐 사람들에게 쓰신
성서라는 그 편지에서 항구히 반복되는
가장 본질적인 개념 가운데 하나는 이것입니다.
즉, '나, 살아 계시는 하느님,
전능하신 분 또는 아들'이라는 개념입니다.
"어째서 너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상들을 찾고 있느냐?
어째서 너는 너의 희망을
너를 도와 줄 수 없는 자에게 거느냐?
오직 나만을 믿어라....그러면 알게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우리를 부르시어 우리와 더 친밀한
신뢰와 믿음의 관계를 맺으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활을 신앙의 행위로
전환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기적을 허락하시기 위해
이 신앙의 행위를 요구하셨습니다.
당신은 믿을 수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마르 10,52)
사람은 하느님이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면 들일수록
그만큼 더 깊이 진리에 들어가게 되고,
그만큼 더 깊이 하느님과의 중요하고도
지극히 소중한 계약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러한 동맹자를 둔 성인들은 외쳤습니다.
"누가 우리를 대항할 수 있습니까?"
40센테지모(Centesimo>로
마리아 아우실리아트체(Maria Ausiliatrice)
대성당 건축을 시작하는 돈보스코,
초인적인 확신으로 불가능한
일을 시작하는 코토렝코(Cottolengo),
그들은 그 거룩한 동맹자(하느님)를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그들은 다음 시편 구절을
참으로 진실되게 되뇌었습니다.
"주께서 나의 빛, 내 구원이시거늘
내 누구를 두려워하랴?"(시편 26,1)
하느님게 대한 믿음에 관해 잠언서가
이야기하는 내용을 철저히,
더 생생하고도
구체적으로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너는 발을 헛딛는 일 없이
네 인생길을 무사히 갈 수 있다.
잠자리에 들어도 두려운 것 없어
몸을 누이면 곧 단잠을 자게 되리라.
불의한 자에게 참변을 당하고
갑작스런 화가 닥치더라도 겁내지 말아라.
야훼께서 네 곁에 계시어
발목이 잡히지 않게 지켜 주신다."(잠언 3,23-26)
이러한 빛 속에서 사는 것보다
충만한 기쁨이 있을 수 있습니까?
더 완전한 평화가 있을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