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가 나병환자를 통해 보았던
'가난의 성모'는 온 세상의 가난의
표징이었고 보잘것 없고 나약하고
고통받는 모든 것과 일치감의
표징이었으며, 하느님의 자비가
드러나는 가장 소중한 기준점이었습니다.
가난의 성모님!
지극히 겸손하신 그분의 모습은
프란치스코가 만났던, 또 그가 지극한
연민의 정으로 사려깊게 주시했던
모든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분의 눈은 눈물로 가득했지만
그 눈물은 보잘것 없는 이들에게
드러났던 신비로 충만한 진주였습니다.
고뇌로 가득찬 그분의
지체는 티없이 맑게 빛났고,
그리스도 자신을 안기에 참으로
비교할 데 없이 합당하고 순결한 지체였습니다.
그때까지 프란치스코는 가난이
이 세상의 불행이요, 끔찍한 창조의 오류요,
하느님의 망각의 일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그는 그 이상의 것을 보았습니다.
불행은 가난에 있지 않았고
부와 권력에 있었으며
마음을 냉혹하게 하고
오염시킨 과도함에 있었습니다.
가난은 창조의 오류가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을 찾고
그분의 신비를 마주 대하며 그분께
자신을 최대한 봉헌하도록 하기 위한
창조의 마지막
-어쩌면 가장 중요한- 내용이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망각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인간에게서 무상적 사랑과
진솔한 믿음을 끌어 내기 위한
참되고도 순수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때부터 프란치스코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즉 가난이야말로 신적특권을
누릴 수 있는 자리요,
참된 사랑을 가르치는
자장 탁월한 학교며,
자비를 이끌어 내는
가장 강력한 힘이요,
하느님과의 용이한 만남이며,
이 세상을 가로질러 갈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삶의 방식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는 간절한 바람으로
'가난의 성모님'과 결합했습니다.
그때부터 그에게는
모든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참된 자유가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