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도 먼저,
실천적 행동은 순종입니다.
"너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얻어먹으리라."
(창세 3,19)
부르심,
"야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고
나를 보내시며 이르셨다."
(이사 61,1)
선에 대한 열정,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시달리며 허덕이는 군중을
보시고 불쌍한 마음이 드셨다."
(마태 9,36)
이런 까닭에 사람은 행동합니다.
그분이 행동하라고 말씀하셨기에
행동과 관상을 대립시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노동, 정의, 사랑은
지상도시를 실현시키도록
인간에게 부여된 책임의
세 단계요 세 가지 능력입니다.
그리고 이 지상도시는 하느님 변화의
손길로 충만하게 될 천상도시의
구체적 표징이요 직접적인 준비입니다.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
(묵시 21,5)
그러나 땅을 갈고 씨앗을 뿌려 밭을
정비하는 단순한 노동에서와 마찬가지로
법정에서 재판을 하거나
나환자들을 위해 병원을 열 때에도
결코 혼자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성부께서는 예수님을
혼자 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십니다
(요한 8,16 참조).
하느님께서 영감으로서 나와 함께 계십니다.
하느님께서 은총으로서 나와 함께 계십니다.
하느님께서 은총으로서 나와 함께 계십니다.
하느님께서 위로로서 나와 함께 계십니다.
하느님께서 빛으로서 나와 함께 계십니다.
하느님께서 초자연적 능력으로서
나와 함께 계십니다.
하느님게서 질책으로서 나와 함께 계십니다.
그래서 그분의 현존은
이론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현존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현존은 불모의 상태가 아닙니다.
그분의 현존은 인격적이고
풍부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창조의 현존 자체입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 (요한 1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