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 10세의 해묵은 교리서의
가르침대로 하느님께서 내재하심을
느끼고 싶고 어디에서나
하느님을 뵙고 싶어야 합니다.
즉 사물 안에서든 자연 속에서든
어디서나 하느님을 뵐 수 있어야 합니다.
과장한다는 두려움을 갖지 마십시오.
그리스도교의 위격사상은
초월성의 실체의 성삼위에 대한
깊은 묵상으로써 사람들을
정체성과 내재성의 위험에서 빼내어
'하늘에 게신 우리 아버지'라고
외치게 하며, 그 역동성으로써
끊임없이 예수님의 계시의
충만함으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여정은 자연을 통해서
또 사람들과의 만남, 과학적 탐구,
시회적 책임, 물리적 현상,
황혼의 찬란한 빛, 바다의 엄청난 힘,
그리고 죽어 가는 곡식의 낟알을 통해
체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온통 초월성으로 가득 찬
중세의 유아기적 신앙심은
현대의 무신론을 양산시켰고,
강생의 신비 자체는 사람들의
육신에 대해 또 진화의
역동적 힘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대학에서 신앙에
가장 위험한 과목들은
바로 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 즉 피조물인
인간과 물질을 가장
가까이 접하는 그런 과목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새로운 언어를
발견하게 되는 그 날,
그리고 테야르 드 샤르뎅이
'절대 진료'에 대한 체험을 했고
밤을 지새기 위해 머리를 누였던
그 돌덩어리가 하느님의
현존 자체로 충만하여 살아 있음을
느꼈을 때 바로 그 광야에서
성령께서 그에게 임하셨던 그 거센
힘으로 탐구자들 위에 임하시는 그날,
탐구자들은 테야르 드 샤르뎅처럼
물질에 대한 찬가를
창세기에 대한 현대 세계의 성숙한
주석으로서 노래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까를로 까레또의 매일 묵상 중에서
♬ Dona nobis pacem Domine - 떼제의 노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