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아는 사람들


아버지를 아는 사람들

1. 말씀읽기: 마태11,25-27

하느님 아버지와 아들 (루카 10,21-22)

2. 말씀연구

 안다고 말하지만 얼마만큼 알아야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정말로 알고 있는 것일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앎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을 알고 있는 사람들. 알고 있다면 알고 있는 만큼 변해야 하겠지요.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 드립니다.

 안다는 사람들은 “예지의 소유자”라는 뜻입니다. 또 “똑똑한 사람들”은 “지혜와 재주가 뛰어난 사람, 어려움을 교묘하게 뚫고 나가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들은 아버지의 계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오만으로 소경이 되어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소박한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의 문에 가까이 다가와 있습니다.



26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말씀과 활동으로 아버지의 뜻을 드러내 보이십니다. 아버지의 뜻은 당신 나라를 세우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안다는 자들과 똑똑하다는 자들은 하느님 나라와 그 정의가 예수님을 통하여 현존하여 있음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와 반대로, 보잘것없는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펼치시는 활동의 의미를 꿰뚫고 그 활동을 이어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백성에게 지운 무거운 짐을 벗겨 주려고 오셨습니다. 그 대신 예수님께서는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새로운 방법을 가져다주십니다.



27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아버지 하느님은 아들 예수님을 아십니다. 그리고 아들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을 아십니다. 그리고 “아들과 또 그가 아버지를 계시하려고 택한 사람들밖에는 아버지를 아는 이가 없습니다.”라는 말씀 안에서 그들이 아는 것과 예수님이 알고 있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하느님은 어떠한 피조물에게도 완전히 인식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 안에서 아들 예수님이 바로 하느님이시라는 것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이십니다. 아버지를 계시하려고 택한 사람들에게는 당신께서 원하시는 것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을 온전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알려 주시기에 알려 주신 것만큼은 알 수 있습니다. 차량에 네비게이션을 달면 모르는 길도 쉽게 찾아 갈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신앙생활에도 네비게이션을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 네비게이션은 바로 성경이 아니겠습니까?



3.나눔 및 묵상

① 내가 알고 있는 가톨릭에 대해서, 내가 믿고 있는 신앙에 대해서, 내가 살고 있는 믿음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② 하느님 아버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이 글은 카테고리: TN-lectiodominus-C2, 복음 나눔(주일)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아버지를 아는 사람들에 1개의 응답

  1. 샘지기 님의 말:

    어렵네요. 안다고 하지만 이럴때보면 정작 부족함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전 유난히 제가 담고 있는 가톨릭이 가장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랍니다.
    그치만 다른 종교가 안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아니지요.
    저희 친정은 불교거든요. 누가 어떤 종교를 가지든 그것은 뭐라 할 것이 아니라
    그저 교회에서 이끄는데로 살아가려 노력합니다.
    그리고 가족이 모일때면 서로가 장난어린 말을 합니다.
    많은 말이 아니라 다른 종교를 가진 한 가족이니까 누가 멋지게 살아가나 보자.
    살아가는 모습으로~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본연의 가식없는 모습이 나오니까
    그때보면 되는거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좋은 종교라 할지라도 믿는 사람이 부족하면 꽝이라고 친정아버지께선 말씀하시거든요.
    가끔 장난삼아 제게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저를 난감하게 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럴때 하는 저의 말이기도 합니다.
    한번엔 높은 곳을 올라가려 쳐다보면 한발도 뗄수가 없지요.미리 겁먹어서~~
    그리고 아주 어려운 분을 아무것고 모르는 상태로 뵙기란 어렵습니다.
    무언가 준비를 하고 대하는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지요.
    그 준비를 하다보면 혼자 힘으로 역부족일때가 있기 마련인데 누군가 도와주고 끌어주면
    아주 지혜롭게 그분을 만날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저를 그렇게 이끌어주시는 성모님이 있기에 한결 마음이 가볍고
    다른데로 가려고 하는 저의 손을 잡고 놓아주시지 않기에 더 큰 힘이 됩니다.
    잔잔한 수다를 떨떼도 늘 함께 하는 성모님이 있기에 더 좋고
    시간이 지남에 성모님의 손을 놓고 바라보면서 이젠 아버지께로 나아가게 되지요.
    그런 열정을 가지고 오롯한 마음으로 바라보면 가슴에서 나오는 찬미를 드림에
    부둔의 사랑이 하나되어 힘을 주시고 가야할 길로 인도해 주시거든요.
    그러기에 제 힘에 함께 힘을 실어주는 사랑이 있기에 그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늘 말씀속에서 삶의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말씀에서 부족한 저를 보게하시니
    하루하루를 준비하고 보내면서 제 부족한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전례안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며 성체를 모십니다.
    그 사랑의 힘으로 또다른 내일을 준비하고 기쁨으로 맞이합니다.
    그러다가 흙탕물에 빠져 버린 옷을 어찌할지를 몰라 힘들어하면
    말씀속에 저를 돌아보게 하시어 성찰하게 하시고 깨끗이 세탁된 새옷을 입게 되는 그런 기쁨도 있습니다.
    어렵고 두려운 일이 아니라 기쁨이랍니다.
    제가 고하는 분이 아버지시기에 두려움이 아니라 힘을 얻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 사랑을 고백하면서 받는게 아니라 드림에 더 깊은 믿음으로 나아감을 느낍니다.
    그저 해야할 일을 하는 자식의 모습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며 드리는 소리없는 고백이
    제가 아버지께 드리는 사랑이거든요.
    누군가 키워주는 믿음이 아니라 제가 받은 사랑에 힘입어 만들어 나가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더 분주히 더 열심히 노력하려 하지요.
    그런 삶의 바탕색을 깔고 아버지의 사랑을 전하려 움직이고
    아버지의 말씀을 토대로 살아가려 열정을 실어 살아가는 삶의 고백이 제 믿음이랍니다.

    많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정작 미운사람일지라도 더 깊이 생각하고 더 넓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보아닌 바보로 살아가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 보면 가장 부자이고 가장 지혜로운 사람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겸손하고 그의 모습에서 스며 나오는 그런 파스텔에 가까운 아름다운 색으로
    하루하루를 칠해 나가는 그런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관계속에서 허덕이지 않고 버거울 정도로 당당한 그런 모습으로 작은 의로움을 실천해 나가는
    그런 사람이 아버지의 사랑을 아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당당히 그 모습 그대로 한자리에 서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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