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과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
1. 말씀읽기: 마태3,13-17
세례를 받으시다 (마르 1,9-11 ; 루카 3,21-22)
13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래아에서 요르단으로 그를 찾아가셨다. 14 그러나 요한은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 하면서 그분을 말렸다. 15 예수님께서는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제야 요한이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였다. 16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때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17 그리고 하늘에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예수님께서 겸손하게 세례를 받으십니다. 세례 받으실 필요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십니다. 그리고 나도 예수님께서 세례로 축성하신 그 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비둘기 모양으로 예수님께 내려오시고 하늘에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나 또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 이다.”라는 말씀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3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래아에서 요르단으로 그를 찾아가셨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27년경(루카 3,1) 요르단 강 유역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 때,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래아에서 요르단으로 가십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30년의 사생활을 정리하시고, 공생활을 시작하려 하십니다.
14 그러나 요한은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 하면서 그분을 말렸다.
요한은 예수님께 세례 드리기를 사양합니다. 요한은 자기 앞에 고개를 숙이고 세례를 청하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
또한 요한은 메시아께서는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라는 것을 예고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니 이게 말이나 됩니까요? 저는 아직 당신께서 베푸실 성령의 세례도 받지 못했는데 말입니다요.”라는 말로도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성령의 세례는 요한이 베푸는 세례를 대신하게 될 것이며, 옛 시대와 새 시대를 구분지어 줄, 바로 지금의 우리가 받고 있는 세례입니다. 요한이 감히 사양할 만 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고,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양했던 것입니다. 자신을 알고 있다는 것. 참으로 중요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내가 감히 하고 있는 일들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요한을 닮아 겸손한 내가 되어야 하겠고, 예수님의 마음을 닮은 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5 예수님께서는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제야 요한이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였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거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예수님께서는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요한은 자신의 일을 해야 하고,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의로움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고, 자신을 낮추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라는 말을 사용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향하여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는 나”라고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이 누구인지 잘 아셨고, 결국 예수님의 자신의 일과 세례자 요한의 일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세례를 통해서 드러냅니다. 같은 사명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우리”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세례자 요한은 감히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감히 예수님께 세례를 베푸는 것입니다. 겸손하게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되어 봅시다. 하나씩 따로따로가 아니라 한 마음으로 같은 일을 하는 “우리”가 되어 봅시다.
그렇다면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는 왜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셨을까요?
① 예수님께서는 지금 자신이 세례를 받으셨다고 해서 자신이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공생활을 시작하시려고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② 예수님께서는 세례 받을 필요가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③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을 이루기 위해 가장 필요한 자신의 겸손을 보여 주시기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④ 세례자 요한의 세례를 인정하고, 세례자 요한을 칭찬하시기 위함입니다.
⑤ 예수님께로부터 나오는 신비스러운 능력으로 물을 거룩하게 하고 이것으로써 당신 죽음에 앞서 세우실 세례의 물에 권능을 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시고, 축성하신 물로 나 또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⑥ 이 예식으로써 유다인의 세례를 폐지하시고, 예수님의 세례를 세우려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⑦ 요한이 예수님께서 참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메시아이심을 공식적으로 알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세례를 받으셔야 했습니다. “31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다.” 32 요한은 또 증언하였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33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34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요한1,31-34)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세례를 받아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하느님의 뜻에 완전히 합당한 행위는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는 참된 겸손을 보이시고, 선구자인 요한은 자신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입니다. 나 또한 나에게 부여된 작은 일들을 충실히 행하여 마땅히 의로움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16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때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는데, 이때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예수님께로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하느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성령께서 예수님께 비둘기처럼 내려 오셨다는 것은 아담과 하와가 낙원에서 금단의 나무열매를 먹은 죄의 결과로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 생긴 분열이 끝났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하느님께서 아담(사람)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셨듯이 이제 또 한번 당신의 숨(영)을 인간에게 내려주십니다. 이로 인해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 평화가 되돌아온 것입니다.
17 그리고 하늘에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낮추어 인간이 되신 예수님! 그 예수님은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하느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시고자 이 세상에 내려 오셔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아버지의 뜻을 실현하려고 준비하십니다. 당신을 겸손하게 낮추어 세례를 받으십니다. 그런 예수님을 향해서 아버지 하느님께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것은 단지 아들이라는 뜻이 아니고 단 하나의 아들, 영원하신 본성에 있어서 하느님과 동등하신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메시아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벌써 시편(2,7)에서도 예언되었고, 성모님께도 그것을 천사가 알려 주었습니다(루카1,35).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은 아버지의 완전한 모습을 갖추셨고, 아버지는 아들에게서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보시며, 한없는 사랑으로 사랑하신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의 모습을 취하시고, 죄인으로서의 태도를 가지시고 요르단 강에 오셨다는 것은 당신을 낮추시어 인간이 되시고,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과 함께 살아가신 예수님의 겸손, 죽기까지 아버지께 사랑으로 순명하신 예수님의 겸손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 또한 예수님처럼 그렇게 아버지 하느님께 순종하고, 자신을 낮추신 예수님처럼 그렇게 겸손할 수 있고, 당신의 모든 것을 내 놓으시면서 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닮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베푸신 성령의 세례를 받은 사람으로서 더욱 합당하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은 무엇이고, 왜 와 닿습니까?
② 예수님께서는 요르단 강에서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십니다.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③ “하느님의 사랑받는 아들,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4. 실천사항
①
②
③
④
5. 말씀으로 기도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