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과: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제5과: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1. 시작성가:

2. 말씀읽기: 요한3,16-21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하느님의 사랑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하느님께서는 삼위일체로 현존하시며, 삼위가 일체임을 고백합니다. 구약의 백성들은 성부 하느님을 체험하였고, 신약의 백성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하여 성자 하느님을 체험하였고, 성령 강림 때 성령 하느님을 체험하였습니다. 하지만 세분의 하느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는 한 분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느님께서는 한분이신 하느님이심을 알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바치는 모든 기도문 특히 하루에도 수없이 바치는 \’영광송\’과 \’십자성호\’의 의미를 깊이 새기면서 정성껏 바칩시다. 그리고 그 안에서 고백하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기쁨과 영광을 드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늘 생각하면서 살아갑시다.



2.1.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시어 이 세상 모든 이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당신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너무나도 큰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제 나는 믿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구원자이심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① 믿는 사람들의 삶

 믿는 사람은 삶이 달라집니다. 먼저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니 그 큰 사랑을 받고 있음에 행복해 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 보다 더 나를 사랑해 주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행복합니까?



 어느 자매가 병으로 자리에 누웠습니다. 그런데 병상에 누운 그녀는 한 가지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병든 자신을 두고 떠나 갈까봐 두려웠습니다. 남편은 정성스럽게 그녀를 간호했지만 그녀는 병상에 누워 있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약을 지어다주면 먹는 체 하고 약을 먹지 않았습니다. 혹시 남편이 잘못된 약을 주어 자리에서 영영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약을 먹지 않으니 더욱 허약해지고, 급기야 남편은 본당 신부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그녀에게 종부성사를 받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본당신부님은 그녀에게 마음을 열고 마음속에 있는 것을 꺼내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누운 자리 밑에서 약을 한 봉지 꺼내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두려워서 먹지 못했어요.”라고 말씀을 드리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본당 신부님은 조용히 그 약봉지를 가방 속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부터 남편이 챙겨주는 약을 꼬박 꼬박 드세요. 남편은 당신을 사랑한답니다. 자매님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기도를 하는지 몰라요. 자매님이 마음을 여신다면 남편의 기도의 힘을 느끼실 거예요.”

 그로부터 두 달 후 그녀는 남편과 함께 건강한 모습으로 성당에 나왔습니다. 그녀는 신부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 남편이 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몰랐어요. 하지만 지금은 알고 있어요. 느끼고 있어요. 그 사랑이 저를 이렇게 낳게 해 주었습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사랑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과 사랑을 의심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납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느끼게 되면 변화될 수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이미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으로…,



② 영원한 생명

 영원한 생명은 믿음을 통해서 지금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버려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정적인 생각들, 비교하는 생각들, 자기를 보잘 것 없이 여기는 생각들이나 행동들, 남을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생각들과 행동들, 교만하거나 허영심 가득한 행동들, 이런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믿는 사람은 당연히 버려야 할 것들입니다. 그래야 믿는 사람처럼 살 수 있고, 영원한 생명을 지금부터 기뻐할 수 있습니다.



③ 구원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단죄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보내셨습니다.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나를 극진히 사랑하셔서” 즉 사랑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심판자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분은 우리를 심판하러 오시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두려운 분이 아니십니다. 하지만 내가 그분을 두려운 분으로 생각한다면 나는 그분께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④ 심판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로 향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이미 시작하여 맛보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믿지 않는 이들은, 그래서 예수님께 등을 돌린 사람들은 사랑을 거부했기에 구원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정성스럽게 지어온 약을 먹지 않아서 더욱 악화되어 가는 사람처럼, 그 약을 먹으면 되는데 불신하여 약을 버렸기에 치유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을 가지고 받아들인다면, 그 안에서 사랑을 느끼게 되고,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내가 그 약의 효과와 성분을 모두 분석하고, 알아야 만이 먹어서 치유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 병에 맞는 약이라면 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해하고 믿으려하면 믿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믿으면 오히려 이해하기가 쉬워집니다. 믿어야 합니다. 믿어야 이해할 수 있고, 믿어야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고, 믿어야 영원한 생명을 받아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3.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하루는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 “삼위일체 교리를 어떻게 하면 잘 깨닫고 설명할 수 있을까?” 하여 고민하면서 바닷가를 산책하고 계셨습니다. 하루 종일 바닷가에서 생각에 잠겨 있는데, 한쪽 구석 백사장에서 아이들 세 명이 역시 하루 종일 모래성을 쌓아 놓고 작은 조개껍질로 바닷물을 퍼부으며 놀고 있었습니다. 성인께서 가까이 가서 “애들아, 너희들 무엇을 하고 있어\”라고 물으시자, 어린이들은 “저희들은 저 바닷물을 이 모래성에 모두 퍼 담으려고 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성인께서 웃으시며 “애들아, 너희가 죽을 때까지 해도 그 일은 못 끝낼 것이야\”라고 하시자, 아이들은 “그래도 선생님께서 삼위일체교리를 깨닫는 일보다 더 쉬울 거예요\”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바닷가에서 돌아와 5시간 동안 삼위일체에 대하여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이렇게 내렸습니다. “자, 저는 지금까지 인간의 말을 총동원하여 성부, 성자, 성령이 한분의 하느님이라는 삼위일체를 설명해 드렸습니다. 마지막 결론을 말씀드린다면 이것입니다. ‘삼위일체는 신비다.’”


3.1. 삼위일체란?

 삼위일체란 하느님께서는 한 분이시지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세 위격으로 현존하시는데, 성부 하느님, 성자 하느님, 성령 하느님은 세 분의 하느님이 아니라 한 분이신 하느님이라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을 온전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부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교리가 하나의 신비로서, 계시로서 알려지는 진리이고, 계시를 떠나서는 인식이 불가능한 진리이기에 나의 이성의 이해 범위를 넘어선 것입니다. 그리고 계시가 되었다 하더라도 삼위일체의 신비가 남김없이 파악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삼위일체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믿고 고백하는 것뿐입니다.



3.2. 구원 역사 안에서 계시를 통해 알게 된 하느님

 구원의 역사는 한분이신 하느님, 즉 성부, 성자, 성령께서 사람들에게 당신을 계시하시고, 하느님과 등진 사람들을 당신께로 돌아서게 하시고, 당신과 일치시키는 역사입니다. 성부께서는 인류 구원의 영원한 계획을 세우시고, 성자를 지상에 파견하시어 인류를 구원하게 하셨고, 성령으로 하여금 사람들을 성화시켜 이 영원한 계획을 완성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일치에 의하여 모인 백성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미사 시작 때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아버지와 은총을 내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시는 성령께서 여러분과 함께”라고 인사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느님을 만난 것은 인간의 지혜를 통해서나 재능을 통해서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인간에게 당신을 드러내셨기 때문에 하느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인간에게 드러내신 것, 이것을 바로 계시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에 대한 앎은 계시를 통하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세상의 지식을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부분적으로 아는 것처럼, 인간도 하느님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것들을 부분적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①성부 하느님

 구약의 백성들은 창조주이시며, 자신들을 사랑하시어 풍성한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성부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시어 당신을 계시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하여 세상 모든 이들의 구원을 계획하셨습니다.

 성부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시어 보살펴 주십니다. 인자하신 아버지로서 우리를 사랑 해주십니다. 구약의 백성들은 성부 하느님을 체험했습니다. 성부 하느님께서는 인간 구원을 위하여 성자 예수님을 세상에 파견하셨습니다.



② 성자 하느님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느님을 알고 믿고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정확하게 우리에게 알려주셨고 그분께 나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이 사람이 되신”(요한 1,14) 분이십니다. 즉 하느님의 아들이 인성(人性)을 취하셔서 사람이 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신약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측면에서 하느님의 계시를 만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하느님이심을,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구원을 위해 인간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고, 아버지 하느님께서 어떤 분 이신 지 가르쳐주셨고, 하느님 나라에 대해 알려주셨으며, 참다운 인간의 길을 가르치셨습니다. 인간 구원을 위해 희생 제사로 십자가에 죽으셨고, 부활하셨으며 승천하셨습니다. 신약의 백성들은 성자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심을 체험했습니다.

③ 성령 하느님

 성경에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실 때부터 성령의 활동이 나타납니다. 많은 예언자들에게 성령께서는 힘을 주셨고,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나, 세례 때, 성령께서는 늘 함께 하셨습니다. 특히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성령의 특별한 전능이 나타났습니다. 이때부터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복음 전파와 교회를 거룩하게 하는 일에 성령께서 역사하심과 보호하여 주십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성령강림을 통해서 성령을 체험하면서 성령을 하느님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즉 계시를 통하여 삼위의 하느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인간에게 공기와 물 같은 역할 하시는 분이십니다. 물, 공기가 없으면, 인간이 생명을 잃게 되듯이,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으면 우리 영혼은 생기를 잃고 결국 죽게 됩니다. 세례 성사 때 우리는 성령을 받았고, 그 성령께서 나와 함께 하심으로써 나는 아버지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되고, 어떻게 하느님을 섬겨야 하는지 알게 되고, 또 가르침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에 힘입어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 라고 부릅니다\”(로마 8,15). 성령께서는 또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며, 무엇을 가르치셨고 어떻게 그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하는지 일러 주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교회를 붙들어 보호하시에 예수님께로 나아가게 만들어 줍니다.



 이 삼위일체 교리는 계시를 떠나서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신비를 창조된 사물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어느 것도 이 신비를 적당하게 표현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믿을 수는 있습니다. 믿음을 통하여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④ 예화

판공을 맞이하여 공소를 방문하신 본당신부님이 할머니에게 교리를 질문을 하였습니다. “할머니! 하느님은 몇 분이십니까?”

“당연히 한 분이시지유.”

신부님은 “역시 신앙생활 오래 하셔서 대답하시는 것이 다르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신부님은 또 물었습니다.

“할머니! 그러면 한분이신 하느님은 몇 위가 계십니까? ”

할머니는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 개의 위격이지유.”

“아니! 왜 두 개의 위격이지요?”

“헤헤! 그건 아주 쉽구먼유. 제가 어릴 때 성당 벽에 걸려 있던 성화를 봤걸랑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표현한 그림이었지유. 수염 달린 할아버지(성부)와 아주 젊은 청년의 예수님(성자)과 비둘기(성령)가 그려져 있었구먼유.”

“그럼 세 개의 위격이지요.”

“어휴! 신부님은 아직 젊어서 잘 모르시는 것 같구먼유. 아직 신부님은 젊어서 모르시겠지만 내가 어릴 때 봤던 그 수염 달린 할아버지(성부)는 벌써 돌아가셨을꺼유. 내가 지금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 말유.”

“……”

삼위일체를 이해하려 하지 말고 믿는 것이 훨씬 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은 삼위일체에 근거합니다. 교회는 삼위일체 교리가 하나의 신비로서 계시로 알려지는 진리이고, 계시를 떠나서는 인식이 불가능하다고 가르칩니다. 또 계시가 되었다 하더라도 삼위일체의 신비가 남김없이 파악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성삼위 신비는 창조계를 까마득하게 초월하는 것이므로 창조된 사물에 비유하는 것은 어느 것도 이 신비를 적당하게 표현하지 못합니다.



3.3.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교리

① 한분이신 하느님께서는 세 위격으로 존재하시지만 한 분이신 하느님이시며, 높고 낮음이 없고, 영원하시고 전능하십니다.

② 세 위격들이 구별이 됩니다. 성부 하느님의 위격은 무근원적 위격이고, 성자 하느님의 위격은 성부로부터 출생되는 위격이며, 성령 하느님의 위격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출되는 위격이라는 점에서 구별됩니다. 그러나 출생과 발출이 정확하게 구분되지 않고 다만 유래성만을 지시하고 있을 뿐입니다.

③ 하느님의 세 관계적 위격들은 한분이신 하느님 본질에 있어서 구별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유일성이 강조됩니다.



 교회가 시도하고 있는 하느님의 삼위일체에 대한 신비는 어쩌면 부정적으로만 설명될 수밖에 없는지도 모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다가 아니라, 이런것은 하느님이 아니다.” 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지식으로는 하느님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암시이지 설명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보다 하느님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부분이 더 크다는 것을 겸허하게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무작정 그분을 받아들이는 무비판적 입장을 거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참 신앙의 자세도 아닐 뿐더러 하느님께 대한 올바른 자세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앙이란 야곱처럼 부단하게 하느님과의 한판의 씨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즘시대를 하느님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하느님과 말하려는 사람은 적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하느님을 아는 것 보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소중합니다



3.4. 신앙고백(니케아 신경)

♱ 한 분이신 하느님을

◎ 저는 믿나이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늘과 땅과 유형무형한 만물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또한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외아들

영원으로부터 성부에게서 나신 분을 믿나이다.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 빛에서 나신 빛

참 하느님에게서 나신 참 하느님으로서,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한 본체로서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믿나이다.

성자께서는 저희 인간을 위하여, 저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셨음을 믿나이다.



(밑줄 부분에서 모두 고개를 깊이 숙인다.)

또한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음을 믿나이다.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저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수난하고 묻히셨으며

성서 말씀대로 사흗날에 부활하시어,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심을 믿나이다.

그분께서는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영광 속에 다시 오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으리이다.

또한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나이다.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영광과 흠숭을 받으시며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나이다.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온 교회를 믿나이다.

죄를 씻는 유일한 세례를 믿으며, 죽은 이들의 부활과 내세의 삶을 기다리나이다. 아멘.



3.5.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인의 삶

 예수님께서는 오직 성부 하느님과 함께 하셨고, 성령께서는 늘 성자 예수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밤에는 기도하셨습니다. 백성들을 가르치시고, 치유하시고, 기적을 일으키셨지만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셨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언제나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언제나 하느님 아버지를 향한 삶이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께서 그렇게 살아가실 수 있도록 언제나 옆에서 힘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할 때 하나가 됩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 될 때 우리는 하느님과도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으로 하나 되어 내가 내 것만을,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만을 하지 않고, 내 형제자매를 배려하고, 이웃과 공동체를 배려하는 삶. 그 삶이 바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신비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그렇게 사랑 안에서 일치를 이루는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4. 나눔

① 가족과 이웃과의 일치의 삶은 어떤 삶이고, 일치를 이루기 위한 나의 노력은 어떠합니까?

②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어떻게 느낄 수 있고, 어떻게 알아볼 수 있습니까?



5. 마침기도 및 마침성가



이 글은 카테고리: TN-lectiodominus-C36, 복음 나눔(주일)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제5과: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에 1개의 응답

  1. 샘지기 님의 말:

    나를 죽이는 것이겠지요. 그렇다고 바보로 살아가는게 아니라 적정선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언제 어느때이든 치고 들어갈 수 있는 그런 모습으로 먼저 상대를 봐주고 들어주고 할 수 있는 한 해주며
    침묵을 사랑하는 묵직한 삶의 모습으로 함께 할 때 작은 배려가 일치를 가져다 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더 누르려 하겠지만 생각까지 잡히진 않으니까 슬프지 않지요.
    내가 나를 드러내려 할 때 참으로 슬픈 형상의 쪼그라진 오이지 같거든요.
    주어진 환경에 저를 묶일지언정 생각을 사로잡진 못함이니
    손해볼 것도 어려울 것도 없으므로 나를 죽이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그 작은 노력으로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살아가려 하면 언젠가는 일치를 향한 발걸음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진짜 어렵네요. 가슴으로 느끼면서 표현을 하자니 너무 어려운 것 같습니다.
    보려하면 절대로 보지 못함이거든요. 보려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사랑하는 아버지께 나를 의탁하며 다가갈 때 또 다른 저를 보게 됩니다.
    저도 놀랄만큼 다른 한사람이 서 있거든요.
    사랑을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모든 것이 다릅니다.
    그리고 좌절없는 희망적인 모습이고, 어두움이 없는 밝은 표정이고, 늘 기뻐하며 감사하며 모든 사물을 아름답게 봅니다. 바로 사랑의 힘이지요.
    인간적인 사랑은 바람에 좌지우지 하는 물살과 같지만 아버지와의 사랑은 변함이 없답니다.
    아주아주 깊은 바닷속의 고요하고 잔잔한 모습이지요.
    그리고 뭔가를 청하면서 단기간에 확인하려 드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내가 사랑하려 하지 않으면서 사랑을 확인하려 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능력을 확인하려 하지요.
    그래서 그것을 보고 믿음을 가지려 합니다.
    자식이 저의 부를 확인하고 해 줄 수 있는 능력을 확인한다면 그렇게 할까요?
    아니라 생각합니다.
    철없는 녀석이 부모한테 돈을 얻어내는 모습과 똑같지요.
    주면 갔다가 다 쓰면 다시 와서 떼를 쓰는 그런 못난 자식과도 같습니다.
    제 자식이 그리하면 전 안볼 것 같습니다.
    아버지 역시그런 모습은 싫어하실거 같습니다.
    전 들어주시면 좋고 아니어도 괜찮고 하는 식이랍니다.
    왜냐면 사랑하는 아버지께서 주실수도 아닐수도 있으니까요.
    아닐땐 분명 제가 잘못 청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치만 지금껏 저도 놀랄 정도로 사실 부어주심을 몸으로 깨닫고 사는 접니다.
    때론 깜짝깜짝 놀랄때도 있지요.
    그러기에 그냥 두손 모으고 그저 기댈뿐입니다.
    잘못하면 용서를 빌고 잘했을땐 넘치는 애교로 거드럼도 떨면서 아주 평범한 부녀지간으로~~
    사랑은 보이지 않거든요. 그리고 설명하기도 어렵거든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절실한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느끼고 보이고 들립니다. 사랑의 메아리는 그렇게 오는 것이거든요. ㅎㅎ
    가장 좋은 방법은 옆을 보지 않고 말씀에 자신을 묻을때 가장 큰 힘을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가슴에 자리를 잡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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