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39-42
그때에 39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40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41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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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에 1개의 응답

  1. 아리랑 님의 말:

    淨化 정화가 필요합니다. 솔직한 저의 고백은 위선자, 위선자입니다. 계속해서 살고있으면서 숨기려 애쓰지만 드러나는 저의 위선을 뉘우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심연속에 있는 그 위선의 덩어리들을 정화하려 하지만 매번 힘 빠지고 맥없어 앉아 쉬시기도 합니다. 몸으로 머리로 가슴으로 알아가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저를 정화 하려면 제일 큰 노력은 저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과정 이겠지만, 스스로 되지 못하기에 샘지기님, 교구 봉사자님들 처럼 의로운 신앙인으로 살아가려 노력하시는 분과, 이광모 베드로 도주현 아오스딩 형제님 이미정 글라라 자매님 처럼 좋은 신앙을 가지려 노력하시는 분들의 곁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작은 본당 공동체 안에서 조금 넓게 교구 공동체 안에서 본 받고 따라 해야 할 형제 자매님은 많이 계십니다. 그 형제 자매님도 아릿함은 있겠지요. 하지만 그 아릿함 들을 뒤로 하려는 노력과 의지가 있기에 주님의 나라에서 살려 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 앞에 서면 가슴부터 벌렁거려 생각했던 것을 다 잊어버리고 해야할 말은 못하기에 답답하여 성질 급히 말하다 말을 더듬습니다. 병리학적으로는 비염 이라, 입으로 숨쉬며 말하며 하기에 뇌 전두엽 쪽으로 산소공급이 모자라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위로하기도 합니다. 한번 심호흡하면 될 것을 조급함이 저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바보 같은 저를 사랑이신 주님께서 보아 주실 때가 있습니다. 어찌 회계하고 감사드리며 찬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는냐?” 하고 타이르셨습니다. 가슴 깊이 새기어야 하겠습니다.
    합덕승당 형제 자매님 지금 쉬고계신 교우분 과 저가 생활에서 벌어지는 이익을 바라지 않기를, 그로 인해 위선을 멀리 하기를 조금이나마 바래 봅니다.

  2. 샘지기 님의 말:

    《Re》아리랑 님 ,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감사하며 나를 내어 맏길때 비로소 평화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채우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을 때 고요속에 평화가 자리잡는 것 같습니다.
    오늘에 충실하는 자세로 살아간다면 가장 멋진 향을 내는 신앙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리랑님처럼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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