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 았다. ”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는 세례자 요한!

요한은 낙타 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겸손되이 고백을 합니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외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라고…..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 했던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요한이 제자들을 통해 예수님의 일을 듣게 되자 둘을 보내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신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는지를 물어보게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요한의 제자들에게 가서 본대로 전하라 하십니다.

그리고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자는 행복하다고 하시면서

세례자 요한에 관하여 말씀하십니다.

몇 번을 보고 또 보았답니다.

제가 만약 세례자 요한이라면 벌써 제 임무를 잊고 그만 두었을 것입니다.

머지않아 지쳤겠지요.

하지만 겸손되이 묵묵히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조용히 해 나가는 모습이

제 모습이길 청해보면서 한참을 보았습니다.

그 스승에 그 제자?

예수님의 길을 닦으러 온 이를 아무나 보내시겠습니까.

그의 설교를 듣고 그의 세례를 받은 백성은

세리들까지 포함하여 모두 아버지께서 의로우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음인데

세례를 받지 않은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자신들을 위해 하느님의 뜻을 물리쳤습니다.

이러면 이렇다고 핑계를 대고, 막상 상황이 바뀌면 또 다른 핑계를 달아

그 또한 받아들이지 않는 그들의 모습이 제 모습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공동체에서 봉사를 열심히 하면 시기와 질투의 화신이 들고 일어나

그를 불인정하면서 되려 말을 만듭니다.

그러다가 정작 그가 뒤로 물러나면 전엔 그렇게 열심히 하더니 \”왜 저래?\”

라고 하는 공동체 안에서의 바리사이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이사람은 이래서 안된다고 다른 사람을 권하면서 정작 그가 장을 맡게 되면

그를 따르지 않는 모습은 아닐런지요.

\”시간이 지나면 괜찮겠지..\” 라고 위로는 해 보지만

제가 언제 어느때 바리사이의 모습으로

형식적인 고백을 할런지 순간 불안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인사조차 않다가 옆에 누군가가 있으면

먼저 \”오랜만이네요\” 라고 인사를 합니다.

ㅎㅎ 바로 전날 어쩌다 나와 외면했던 이가 그렇게 인사를 합니다.

제 모습이 그런 것은 아닌지요.

공동체에서 봉사를 한다는 사람이 독서나 주송이나 전례를 맡은 날만 얼굴을 보이면서

온갖 불신은 다 가지고 있는 저는 아닌지요.

크게 보는 것이 아니라 제 좁은 소견으로 판단하고

지혜를 자아내는 이들을 누르고 있는 저는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부족한 저가 변화되어 지혜로서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할 때

변화된 저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해 봅니다.

아버지께로 나아감에 사랑과 인내로서 주어진 모든 것을 극복하고 당당히 나아간다면

그 어떤 바리사이들을 만난다 할지라도

저의 지혜로 그들을 넘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나머진 아버지께서 감당해 주실테니까요.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지 않은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자기들을 위해 아버지의 뜻을 물리치는 것을 보시고

아이들의 놀이에 비유하십니다.

진정 받아들일 마음조차 없으면서 이러저러 말을 하는 모습이

제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제 지혜로움만을 과시하면서 의로움을 보고 감탄의 소리는 자아내면서

제 마음을 함께 하지 않은 저는 아니었는지요.

겉은 양의 모습으로 속은 이리의 모습으로 어떤 상황에서든

전혀 받아들일 마음이 없으면서 지혜로운 이들을 혼동시키며

척을 자아내는 저는 아니었는지 반성해 봅니다.

누가 무엇을 함에 의롭고 바르고 지혜로운 것이면

함께 동참하고 함께 땀을 흘리며 그를 받아들이고

그와 함께 준비하는 저였어야 했는데 그리하였는지요.

어떤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소리만을 내면서 자신의 권위를 취하려 하는

공동체에서의 바리사이로 살아온 저는 아닌지 돌이켜 봅니다.

이사람도 저사람도 결국 아무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막이 제 마음은 아니었는지요.

아버지!

부족하고 어리석은 저가 지혜의 물을 마시고 변화된 저로 새로나게 하소서.

저의 안위를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없애주시고

아버지를 향한 사랑의 지혜로 당당히 나아가게 하소서.

바리사이와 같은 이들과 손을 잡는게 아니라 의로운 사람과 힘을 합쳐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믿음의 길을 함께 쓸며 땀을 흘리는 저가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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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 았다. ”에 1개의 응답

  1. 아리랑 님의 말:

    아멘.
    공동체 안에서의 바리사이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설마? 설마란 단어 생각납니다.^%^ (진솔한 마음 헤아리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작은 공동체에서 저 같은 바리사이 MR기계 같은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아직 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받은 초병 인 사람들을 봅니다. 그러면서 픽! 웃습니다. 저와 같으니까요~~ 잘은 모르지만 샘지기님께선 이병도 일병도 상병도 안닌 병장임을 잘 압니다.*^* 그러기에 훈련병이나 이병이나 일병들이 병장님의 “길”을 보고 배우고 있음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샘지기님! 건강 하세요 ^*^

  2. 샘지기 님의 말:

    《Re》아리랑 님 ,
    제가 배우고 또 닮으려 하고 있지요.
    한 길을 가는 형제들에게서 깊은 내공을 배운다면 가장 행복한 삶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아리랑님처럼 사랑을 내어놓는 그런 분들이 공동체안에 있다는 것에 감사하지요.
    말씀안에서 얻은 지혜를 저희같은 초심자들에게 전해 주시길 바랍니다.
    행복한 밤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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