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다. ”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입니다.

세리 마태오!

예수님께서는 세관에 앉아 있는 마태오를 보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예수님을 따릅니다.

다들 죄인취급을 했던 그를…..

그리고 그는 곧바로 행동으로 순명함을 보여줍니다.

이미 그를 알고 계신 듯,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따르라 하십니다.

그리고 세리와 죄인과 함께 식사를 하시는 모습을 보고 바리사이들은 반박합니다.

그 모습이 제 모습은 아닐런지요.

공동체에서 그저 열심히 할 일만을 하면 되는데

마음속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사제를 반박하고

신자들을 반박하는 저는 아니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정치를 하는 듯한 신부님의 모습에 좌절하고 의문을 붙이며

사목을 하기 위해 손을 내밀고 비위를 맞추는 모습을

제 시각으로 판단하면서 한숨을 쉬진 않았는지요.

땀흘리는 것에선 빠지며 뒤에서 모습을 드려내려 하고

자신의 권위를 다른 입지에서 살리려고 우쭐대는 이들의 모습에서도

적지않은 힘을 상실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던 것은 저는 아닌지요.

사제가 의롭지 못한 사람과 어울리든…. 정치를 하든

그것은 제가 판단해야 할 몫이 아님을 모르고

그렇게 자신에게 비수를 든 어리석은 저는 아니었는지 돌이켜 봅니다.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왜?\”

라는 보이지 않는 반항으로 저를 멍들게 하진 않았는지도….

모습을 보고 제 시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읽었어야 했는데 그리하였는지요.

그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던 아픈이라면 의사의 치료가 필요함인데

그것을 막으려 했던 저는 아니었는지 새삼 되새겨 봅니다.

튼튼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하시지요.

동감하면서 삶의 모습은 아님을 반성해 봅니다.

바른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지만 그를 끌어 넣으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면

스스로 힘이 빠짐을 느끼면서 한편으로 화살을 당긴것은 아닌지요.

\”왜?\” 라고…..

전 아프지 않은 사람임을 느끼기 보다

그에게 향해지는 관심이 더 싫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가 아파 넘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면서

보이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았던 저는 아닌지요.

언제 어느때 제가 아파 쓰러지는 경유가 올 수도 있음을 생각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저는 아닌지요.

의인은 행동에서 드러난다고 합니다.

하물며 전 저의 부족하고 어슬픈 감정을 숨기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저는 늘 자비를 청하면서 전 관대하였는지요.

노력과 희생의 결과가 자비라 합니다.

하물며 전 그것을 역행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요.

죄인을 불러들이든 양아치를 불러들이든 그것은 아버지께서 알아서 하실 것인데

제가 먼저 불안해 하면서 저를 멍들게 하진 않았는지요.

독서에서 교회의 일치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라 하십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노하도록 애써라 하십니다.

전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요.

진정 인내심으로 기다림의 꽃을 피우며 묵묵히 지켜봐 주는 저였는지요.

그가 어떤 사람이든 모든 것은 그의 몫이고

아버지의 결정이심을 넘어서려 했던 저는 아니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인내하고 사랑한다면서 정해진 이들이 들어와야 한다고

제 고집을 피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 봅니다.

말씀의 지혜로 성숙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려

땀을 흘리고 있는 저인지요.

\”뭐 저런 사람이랑 어울린담.\” 이라고 하면서 보이지 않는 선을 치고

그 선을 넘는 자와 그 선을 넘게 하는 이를 미움으로 다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아버지!

말씀을 묵상하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해 봅니다.

영원한 의인은 없다고….

제가 가진 그릇만큼 담을 것이고 제가 가진 마음만큼

평화로워 짐을 새삼 생각해 봅니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고 아버지만 바라보게 하시어

아버지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렵니다.

누가 어떤 행동을 하든 동요되지 않고

말씀에서 나오는 빛으로 아버지께로 나아가렵니다.

누구때문이 아니라 그냥 아버지를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예수님께서는 마태오를 부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로 왔다.\” 라고…..

신앙을 고백하면서 저의 어두운 마음을 돌아보게 하시는 말씀같아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제 시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면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편협된 저로 살아온 것은 아닌지 되돌아 봅니다.

바른 생각과 그가 아프니까 당연히 치료를 받아야지 라는 생각을 하기보단

아픈 저이를 왜 데리고 가야 하는 건가에 대한 불평으로

저를 얼룩지게 하지 않았는지 반성해 봅니다.

사랑과 관심으로 그들을 안고 후는 그의 몫으로 돌리면 되는 것을

제가 그를 외면하여 그를 더 아프게 한 것은 아닌지요.

아버지!

부족한 저가 아버지의 뜻을 헤아린다 하면서 정작 그리하였는지요.

언제 어디서나 제 시각을 아버지만을 향하게 하시어

늘 아버지의 소리에 귀기울여 제가 아닌

아버지의 뜻을 먼저 헤아리며 움직이게 하소서.

그리하여 구원으로 나아감에는 그 어떤 자격이 정해진게 아님을 늘 깨닫게 하시어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들도

저와 동등한 입장에 선 아버지의 자녀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아멘.


이 글은 카테고리: TN-lectiodominus-C2, 복음 나눔(주일)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Re..“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다. ”에 1개의 응답

  1. 아리랑 님의 말:

    아멘.
    정치를 하는 듯한 신부님의 모습에 좌절하고 의문을 붙이며………..
    많이 아픕니다.
    언젠가는 저 혼자 가지고 있던 아픔을 봉하고 있지만 상처의 실밥은 항시 터지려 합니다.
    언제든 생각면 하면 정말 가슴 아프고 아려옵니다. 하지만 주님의 뜻이라 생각하며 꿀꺽 헛 기침을 먹어 봅니다.
    그땐 침묵으로만 일관 했습니다. 눈망울로는 수 없는 말을 하였지만 입술로는 못했습니다. 그 것이 못내 아쉽고 서러워 술에 의존해 다른 사람들 틈에 끼어 아팠던 가슴 말 못하고 엉뚱하게만 하고 왔습니다.
    정말 정말 진실로 진실로 터질 것 같은 가슴으로 용서를 빕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제 온 가슴을 다하여 건강 하심을 빕니다.
    떠돌던 제 영혼을 붙잡어 주셨던 김홍식 이냐시오 신부님 이십니다…….
    신부님! 그 때의 마음 전부 다 헤아리지 못하고 힘이 못되어 드린 것이 아픔으로 남습니다. 그리고 그 때의 신부님 생각하면 메어오는 가슴으로 서러운 눈물을 흘립니다. 저에게 “기억한다.”라는 말씀을 알게 해 주신 신부님! 언제든 신부님 기억 할 때 마다 붉은 심장은 퍼런 가슴으로 펄 펄 뛸 것입니다…….
    …….
    샘지기님! 죄송합니다….
    그땐 시대 상황이 불안정 하였습니다……
    어데 다녀오다 비가 그친 길 가에 코스모스 꽃이 만발해 잔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차창 밖으로 보며 왔습니다.
    백 미러로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보며 샘지기님을 생각 해 보았습니다.
    코스모스 옆에 가로수로 계신 샘지기님께선 스친 차량의 잔 바람에 흔들리는 저 같은 신자들의 기쁨입니다.^*^
    감기 조심 하시고 건강 하세요 *^*

  2. 샘지기 님의 말:

    《Re》아리랑 님 ,
    감사합니다. 사랑으로 보듬어 주시는 깊은 배려에 늘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의 고백에 저또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성찰하시고 다잡으시는 모습을 배우려 다짐해 봅니다.
    기쁘고 행복한 하루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