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은
-쟁기에 손을 얹고 뒤를 돌아다보면 안됩니다-
1. 말씀읽기:루카 9,57-62
예수님을 따르려면 (마태 8,19-22)
57 그들이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5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59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나 그는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0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61 또 다른 사람이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2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2. 말씀연구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른다고 말하면서도 자기 고집을 피우거나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한 다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좀더 노력하는 신앙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57 그들이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한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인들의 냉대를 받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대단한 사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의 고백은 확고한 것 같습니다. “어디로 가시든지”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길이 가시밭길이라 할지라도, 그 길이 멀고 험난한 길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그렇게 말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스승님이 가시는 길을 제가 갈 수 있도록 축복을 주십시오.”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5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예수님께서는 이 착한 사람의 소망을 거부하지는 않으십니다. 그러나 당신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냉대와 반항을 각오해야 한다고 하시며 여우나 새의 비유를 드십니다. 짐승들조차도 보금자리를 가지고 있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나자렛에서도 배척을 당하셨고, 사마리아에서도 배척을 받으셨습니다. 제자들도 이와 똑같은 대우를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운명을 함께 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59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나 그는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로 삼으려고 어떤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에 따르면 이 사람은 초대 교회에 명성이 있던 보조자 필립보였다고 합니다. 이 제자는 아버지를 묻으러 가게 해 달라고 청을 합니다.
죽은 자를 장사지내는 일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중대한 의무였습니다. 시체를 만져 부정을 타는 일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는 사제나 레위인이라 할지라도 친척들의 장례는 치러야만 했습니다.
이 의무를 진 사람은 율법의 다른 모든 의무에서 면제되었습니다. 따라서 그 사람의 연기 요청은 대단히 타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60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인간을 죽음에서 생명에로 변화시키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사람, 예수님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죽음의 상태에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자신을 예수님께 내맡기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관한 예수님의 메시지의 힘을 통하여 생명에로 건너온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 제자가 세속의 근심에 사로잡혀 온전히 예수님께로 향하지 못할 것을 염려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거룩하고 중요한 것이라 생각된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위해 희생으로 바쳐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이 세속에 대한 모든 배려에서 벗어나야 하고 가족조차도 무시해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완전히 세속에 죽지 않는다면 완전한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참된 제자가 된 사람은 하느님 나라의 선교라고 하는 한 가지 일에만 마음을 쓰고, 그것을 모든 일보다 앞세워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에게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한 가지 일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일은 다른 모든 일보다 우선권을 가지며 일각의 지체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영적으로 죽은 자들에게 생명을 선포하며 그들을 소생시키는 일은 죽은 자들의 시신을 묻는 일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61 또 다른 사람이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면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고백을 합니다. 첫 번째 사람은 예수께서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다고 하였고, 두 번째 사람은 생명과 활력을 주시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사람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알아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은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자신을 온전히 맡겨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예수님을 기꺼이 따르고자 하였지만 그 역시 한 가지 일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는 가족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는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한 것과 같은 요청을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를 거절하십니다. 엘리야가 엘리사를 불렀을 때, 엘리사는 소를 잡아 쟁기를 부수어 대접을 했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를 따라갔습니다.
62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세속에 대한 집착. 과거를 돌아보고, 자신의 삶의 자리에 연연하게 되면 그것 때문에 다른 것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은 모두 인간이 이 세상에서 갖게 되는 가정을 포기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가정은 가족 구성원들에게 편안한 거처를 제공합니다. 가정은 가족 안에서 누리는 안전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머리 둘 곳조차 없는 예수님의 삶이 내 삶이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것에도 구애됨이 없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은 죽임만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영광과 예수님의 영광이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 또한 그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내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지금 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② 신앙생활 하면서, 단체 활동 하면서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행위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미 신앙의 옷을 입었다면 후회하지 않고 그 옷을 더 빛나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단 한벌뿐인 멋진 옷을 더럽힌다면 차라리 입지를 말았어야 겠지요.
불편해서 벗어 던지고 다른 옷을 입기도 하겠지만 벗지 않으려는 마음이 우선임을 압니다.
늘 무엇이 부족하여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 허덕이고 있지만
마음이 정리되지 않으면 어렵다는 것을 신앙에서 깨달았습니다.
한번에 달음박질을 못하지만 연습과 노력을 통해 가능하듯이
믿음의 강도도 하루아침에 깊어지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그리고 단시간에 아버지께 올인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전 지금도 걸음마를 배운다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이 그렇고….. ㅎㅎ
제가 선택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마음으로 기도할 때
나아가서는 자식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참고서를 남겨주고 가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삶의 참고서에서 지혜를 얻고 힘을 얻어 삶에서 패배하지 않음을…..
그래서 전 기본에 충실하려 노력합니다.
제게 가장 소중한 기본을 갖추어 주는 것이 바로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씀의 힘과 지혜를 빌어 저를 만들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닮은 딸로 서기위해서…
허긴 그러기에 너무나 부족하지만 사랑에서 기쁨이 오고 그 기쁨에서 살아가는 힘이 생기고
그 힘에서 희망이 섭니다.
그리고 그 희망이 제 마음속에서 소망의 씨앗이 되어 싹을 틔우기 위해
미사에 참례하고 기도속에서 아버지를 만납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말씀에서 저의 부족한 모습을 봅니다. 형식적인 고백이 아니라 마음의 고백이 될 때
이미 아버지의 마음을 담고 한걸음을 떼고 있는 자신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 기보이 설 때 아버지를 따라 걷고 있는 저의 모습을 보게 되겠지요.
두가지가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봉사자한테 말도 안되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리 잘났으면 혼자 해봐.” 라고 할 때…. ㅎㅎ
그때 세상을 살짝 그리워하기도 하였습니다.
다른 맥락일 수도 있겠지만 집착이 아니라 차라리…. 라는 심정이었지요.
공동체에서 마음으로 제것을 내어 놓을 때 다른 봉사자는 막습니다.
청구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리하지 않으면 살짝 고개를 틀어 그를 봅니다.
그래도 한 공동체인데….. 본당것으로 하고 생색을 내려는 이들의 모습에서
되려 세상이들이 더 좋아 보였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봉사이기에 더 열심히 더 조심스레 해야 함인데
자신들보다 나은 사람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뒤로 물러나 뒷짐을 지고 “혼자해봐” 라는 식으로 늑대의 웃음을 짓습니다.
그럴때 솔직히 아버지께 등을 보이려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세상사에서는 능력대로 인정을 받고 하고자 하는 것은 눈치를 보진 않으니까요.
그리고 열심히 한만큼 칭찬을 받지요.
어떻게 보면 슬픈일이지만 현실이랍니다.
하지만 아직 어슬프긴 하지만 기본기는 익혔기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운동을 하면 알려준다는 이들의 말이 다 다릅니다.
어떤 이는 이렇게.. 또 어떤이는 저렇게….
기본을 모를 때는 혼동에 정신이 없지요.
하지만 기본을 익혔을 때는 제 나름대로의 폼이 있기에 그들의 말이 틀렸다는게 아니라 담지 않게 되거든요.
이젠 아버지의 옷자락을 잡았으니 모든 집착과 세상것들은 다 버렸습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는 어리석음은 가지고 있지 않답니다.
제가 돌아보는 만큼 제 색깔이 바래지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