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제자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아 사도라고 부르셨다. ”


 

으스름한 달빛에 외로이 떠있는 별을 바라보며

시간을 가진자의 여유를 생각해 봅니다.

오늘은 성 시몬과 성 유다 사도 축일이지요.

예수님께서 뽑으신 제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떠 올려 봅니다. 베드로, 안드레아,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토마스, 마태오, 소야고보, 타대오, 시몬, 마티아.

화려하지도 특별한 직업도 가지지 않은 정말 평범한 사도들의 삶에 저를 비추어 보면서

그들이 추구하였던 이상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자신의 욕심도 권위도 명예도 아니고 오로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의로운 이들의 모습에

저를 비추이니 제 모습이 너무나 작아 보였습니다.

아버지의 일을 하는 이들의 자세!

\”아버지의 크신 뜻을 위해 부족한 저를 써주십시오.\” 라는 순명의 자세여야 하는데…

그치요?

예수님의 뜻을 알고 그저 순명하는 그들의 순수한 모습처럼,

지금의 저도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려 저를 던져야 했지만

과연 그런 삶을 살아왔는지 되돌아 봅니다.

그들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예수님을 따라 나섰던 것처럼

저도 공동체에서

\”예\” 하는 자세로 작은 교회의 바탕이 되어야 하지만

저를 먼저 생각했기에 \”아니오\” 라고 하면서

아버지의 뜻과는 멀리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저와 맞지 않다고 해보지도 않고 고개를 흔들며 저 멀리 사라져 버리는 낙엽처럼

제가 그랬던 것은 아닌지요.

아버지의 일을 함에 있어 저를 드러내려 함이 아니라 그저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며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뿐이라는 자세로 늘 기도하며

저를 좀더 의로운 신앙인으로 성숙시키며 주위에서 뭐라고 하든 신경쓰지 않고

제가 가야 할 길을 걸어가면 되었을텐데…

아마도 제가 아버지의 말씀에 귀기울이지 않았기에 지혜롭지 못하고

의롭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부족한 신앙생활이지만 원칙이 있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원칙이 없었음은 아니었는지..

아버지의 뜻을 기준으로 실천하는 저가 되어 제 삶의 중심에 아버지를 모시고

사도로서 살아갔어야 했지만 많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요.

욕을 먹을까 두려워하면서 사라져 버리는 이가

저의 모습인거 같아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의로운 신앙인이라면 두려움에 몸을 사리면서

아버지를 증언하지 못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을텐데요.

언젠가 신부님께서 그랬습니다.

많은 개들이 짖어댄다고 다 죽일순 없지 않냐고…

그리고 무지 많은 개들에게 에워쌓인 한 마리의 개가 있었는데, 너무나 당당했다고 합니다.

근데 알고보니 \’귀먹은 개\’ 였다고 합니다.

봉사를 하면서 나도 내 이름이 올려짐에 두려워하지 말고

앞에서 뭐라고 하든 귀먹을 개처럼 꿋꿋이….

자그맣게 적혀있는 성경의 그 구절을 보노있노라니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짐을 느낍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작은 사도로 당당히 서야 함을 다짐해 봅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 그저 묵묵히 아버지의 뜻만을 헤아리며

그 뜻을 실천하는 저가 되려 가슴깊이 다짐해 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성 시몬과 성 유다 사도 축일에 교회의 기초였던 그들의 삶에 저를 비추어 봅니다.

아버지의 작은 사도로 살아가면서 무엇을 실천하였으며

무엇을 이루려 움직였는지 되돌아 봅니다.

큰 무엇을 바라심이 아니라 그저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 움직이는 저이길 바라셨을텐데

제가 그 마음에 합당하게 움직였는지 반성해 봅니다.

제가 하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아버지께서 더 부여해 주심을 알면서도

두려움에 몸을 사리면서 아버지의 뜻을 묻어버린 적은 없었는지요.

그저 해야할 일을 했다는 마음으로 늘 겸손되이 사랑을 실천하면서

늘 기도하는 저가 되었어야 함인데

많이 부족했음을 고백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우선인데 사람을 먼저 생각하면서

미리 해석하고 미리 판단한 저는 아니었는지요.

그러면서 사도로 살아가는 것처럼 의기양양한 저는 아니었는지요.

아버지!

아버지께서 선택된 이들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그 선택이 실망으로 안기지 않게

부족한 저를 기도에서 돌아보게 하시어 지혜로움으로 늘 새로나게 하소서.

언제 어디서나 아버지의 뜻을 먼저 헤아리는 저가되어 누가 뭐라든 아버지의 바램이시라면

먼저 움직이는 저가 되어 의로운 신앙인으로 서게 하소서.

말씀과 사랑에서 제 마음을 다스려 늘 깨끗한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시어

사도로서의 바른 삶을 살아가는 저가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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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제자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아 사도라고 부르셨다. ”에 1개의 응답

  1. ^*^ 님의 말:

    귀 먹은 개…참 멋있네요…그래요. 귀 먹은 개 처럼 남들이 뭐라 하든 말든…
    부르심 받은 사람답게 “예”하면서 살아가야겠지요.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음을 주님께서 말씀하셨지요.
    소금은 소금 다워야 합니다. ^*^

  2. 샘지기 님의 말:

    《Re》^*^ 님 ,
    “소금은 소금다워야 한다.”
    잊지 않겠습니다.
    소금이면서 설탕의 맛을 내려했던 저가 아니었나 갑자기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에 답글 남기기 응답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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