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것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그토록 사랑한다는 것이 어려운가 봅니다.

사랑의 관계로 계속유지된다면 모르지만 중간에 얽히는 일이 생기면

가장 힘든 십자가가 되어 안기나 봅니다.

그러기에 사랑이란 그것에 따르는 고통까지도 안을 수 있어야

감히 사랑이라 말할 수 있나 봅니다.

어젠 볼일을 보러 남편이랑 차를 타고 가는데

도로가에 뒹구는 노란 은행잎이 얼마나 이쁘던지요.

절로 감탄사가 나오면서 아름다움을 만끽했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이 \”단풍구경가고 싶다.\” 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지금봐요.\” 라고 했더니 이게 좋으냐고…. 특이하다고… ㅎㅎ

주어진 여건을 일으켜 가면서도 눈만 돌리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고 했지요.

바쁜 일상을 쪼개서 찾아다니는 것도 좋지만

그것이 안된다면 있는 위치에서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으면 된다고…..

그랬더니 남편은 가서 보는 것보다 훨 못하다고 하면서 투덜거리더군요.

아마도 보는 관점이 다르기에 그런 것인가 봅니다.

제 마음의 눈과 방향표가 어디로 향해 있는지가 중요함을 실감합니다.

남을 사랑한다는 것은 율법을 완성한 것이라 하는 것처럼

사랑보다 더 어려운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한배를 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다른 점을 보게되고

타협보다는 자신의 소리만을 높여가다보니 무뎌진 관계로 변화면서

의무로 책임감으로 살아가는 부부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의 짙은 색이 살짝 바랬을 뿐, 또 다른 사랑을 만들어 내지요.

자식에게로…..

그러면서 작은 가정의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면서 울타리도 새우고

무너지면 고치면서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가운데 자신의 많은 것을 버리고 복잡하게 얽혔던 마음을 비우게 됩니다.

그 진리를 깨달으면 세상의 이치에도 흔들리지 않고

변화는 자연과도 친구되어 함께 호흡하고 함께 고뇌하면서

더 넓은 저가 됨을 알았습니다.

믿음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제가 제 마음을 비우고

제 마음이 화가나면 정리할 줄도 알게 되었지요.

아버지께서 늘 함께 해 주셨기에 그런 변화속에서 버림으로서

행복을 안을 수 있었을 겁니다.

다른 많은 사람도 저처럼 덤으로 행복의 길을 걸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믿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랍니다.

아버지! 어떻게 하면 이들이 같이 걸을 수 있을까요? ㅎㅎ

전 대나무도 갈대도 참 좋아합니다.

사시사철 푸르고 곧은 대나무, 그리고 세찬 바람에도

꺽어지지 않고 자신을 세우고 있는 갈대!

신앙생활을 하면서 제가 서야 할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몇일전엔 저녁노을에 살짝 마지막 빛을 발하면서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모습을 창을 통해 보았습니다.

어찌나 가슴이 짠하던지요.

그날은 살짝 힘든 날이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서 저의 작음을 생각했지요.

자연이 자아내는 아름다움보다 못한 저의 사랑이 부끄러웠습니다.

주어진 여건에서 꿋꿋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그 모습이 얼마나 당당해 보이던지요.

신앙생활을 하면서 조금만 힘들어도 \”왜 제게 이리 무거운 십자가를…\” 하면서 푸념했지

더 무거운 십자가에 비교하지 못했던 저는 아니었는지요.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아버지를 따른다 고백하지만

\”예\” 하는 모습으로 순명한다는 것이 역부족임을 압니다.

이것저것 따지고 계산하느라 대답을 미루며 뒤로 빼다가 아픔이 오면

뒤로 뺐던 발을 다시 집어 넣으며 아예 빼지 않은 것처럼

자리를 잡고 있는 저는 아닌지요.

아버지를 따름에 가족과 형제와 지신의 모든 재산을 버리고

오로지 맨몸으로 아버지를 따르라 하심이 아님을 압니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형제나 재물 때문에 아버지를 향한 발걸음에 문제가 된다면

다 버리라 하심이지요. 비우라 하심이지요.

그리될 때 진정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음을 알면서도 ….

첫 자리에 아버지를 모시고 지혜로이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따를 때

늘 함께 하시어 지켜주심이지요.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몸을 다하여 열정으로 아버지를 사랑하며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이의 모습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해 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은 버림과 따름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없다.\” 라고 하신 말씀이 와 닿았습니다.

그런게 어딨어.. 라고 했던적도 있었지만 이젠 그 말씀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때론 무뎌진 마음에

잠시 잊고 사는 저를 깨워주시는 것같아서입니다.

아버지의 가르침이 사랑이심을 알지만 제가 원하는 사랑을 하진 않았는지요.

사랑할 수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으로 안아야 하는 것인데 그리하지 못한 저를 반성해 봅니다.

제가 원하는 사랑을 하면서 감히 사랑을 베푼다고 큰소리 친적은 없었는지요.

당연한 것을 큰 일이나 한것처럼 내세우며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들을려고도 하지 않았던 저는 아니었는지 돌이켜 봅니다.

아버지를 따름에 저의 모든 것을 버리고 나설 수 있어야 함인데 다 버리지 못하고

아직도 마음 한구석엔 많은 그물들이 얽혀져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오는 모든 십자가까지도 기꺼이 안고 갈 수 있어야만이

아버지를 따를 수 있음을 가슴에 다시 새깁니다.

봉사를 하면서 아주 가까운 가족에게까지 심한 말을 듣는다 할지라도 좌절하지 않고

지혜로이 대처하면서 저만이 아니라 그까지 설득하여 아버지께로 가야 함을 압니다.

그게 바로 지혜로운 이가 사랑의 십자가를 지고

미소를 머금고 아버지를 따르는 것임을…

그리고 저를 미워한다는 것은 그만큼 저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요.

저를 사랑해야 사랑을 나눌 수 있음도 알고 있답니다.

아버지!

아직 많이 부족한 저이지만 사랑의 힘으로 십자가를 기꺼이 지게 하시어

지혜와 슬기와 인내의 지팡이를 잡고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 쉬지 않고 걷게 하소서.

제 삶의 중심에 아버지를 모시고 모든 삶의 희망과 살아가는 이유의 첫 번째가

아버지의 사랑때문임을 잊지 않게 하시어 더 큰 사랑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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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에 1개의 응답

  1. ^*^ 님의 말:

    가자면 가주는 것도…좋지 않을까요? ㅎㅎ
    한 곳을 바라본다는 것…참 중요한 것 같아요…

  2. 샘지기 님의 말:

    《Re》^*^ 님 ,
    그렇겠지요. 그 한번에 고마움을 갖기보다는 당연함이 되고
    나아가서는 자신의 생각이 절대적이 되어 상대를 누르려 함을 미리 걱정하는 것인지도… ㅎㅎ
    살아감에 있어서 지혜를 쌓는 것이 두루두루 기쁘게 살아가는 지름길인거 같습니다.
    자생력이 강한 삶의 식물….. 저를 내어놓을 때 잃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돌아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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