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


 

바쁜 하루가 지나고 저만의 시간입니다.

갈망하던 시간이 주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방황하는 아이의 모습처럼 지금 제가 그러고 있답니다. ㅎㅎ

감사하고 감사하면서 또 다른 희망이 제게 안겨 바쁜 시간속에서도 많은 일을 하게 되지만

가끔씩 주어지는 시간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가 되어

그저 멍하니 있는 저를 보기도 합니다.

자유를 완전히 안지 못해서 그렇지요? ㅎㅎ

아버지의 지혜를 머금고 사는 이는 무엇이든 가능함을 생각해 봅니다.

지혜는 혼자이면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자신 안에 머무르면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며 대대로 거룩한 영혼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하느님과의 벗과 예언자로 만든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지혜와 함께 사는 사람만 사랑하신다고 지혜서에서 말합니다.

해보다 아름답고 어떠한 별자리보다 빼어나며

빛과 견주어 보아도 그보다 더 밝음을 알 수 있다지요.

지혜!

오늘을 살아감에 지혜와 함께 머물 때 모든 것이 가능함을 새로이 되새겨 봅니다.

주어질 일을 미리 겪어보는 어리석음보다는

사랑의 기다림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현명함이지요.

하지만 그것을 안이한 자세로 기다린다면 그에게 일이 닥쳤을 때 어떤 심정일까요?

아무리 말을 하고 비유를 주어도 알아듣지 못하고 그저

\”오늘만 편안히..\” 라는 자세로 생활하는 조카가

저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밤입니다.

무엇이 잘못인지는 모르겠지만 급박한 시기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조카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먼저 맞아보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인지라 마음만 탈 뿐이지요.

힘들고 아픈 것을 알기에 미리 긴장감을 주는 것인데

자신만 모르고 느끼지 못하고 있음에 부모와 가족들은 애만 타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사랑의 보따리를 안고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랑의 보따리를 가지고 있다면 이리 바쁘지는 않을것입니다.

사랑을 품고 있는 이는 지혜가 있으니까요.

당연히 다가옴인데 그 시기가 언제냐고 묻는 바리사이들의 모습에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기가 중요한게 아니라 당연히 올 아버지의 나라를 맞이하기 위해 깨어 기다리며

준비하는 자세로 삶의 중심을 아버지께 두고

선택된 이의 자세로 지혜로이 살아가면 되는 것인데

한탕주의도 아니고 시기를 묻는 이의 무리속에 저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요.

자신의 앞날에 어떤 문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임시의 기쁨을 위해

\”뭐가 그리 중요해 그냥 하면 되지\”

라고 말하는 조카와 다를바가 없는 것은 아닐런지요.

제 영혼이 자유롭게 될 때 아버지와 함께 하나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사방이 밝아올 때 아버지께서 오심을 기다리며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자세로 깨어 준비하며

 사랑의 인내로 불을 밝혀 들고 기다리렵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바리사이들의 질문에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라고 하신 말씀이 와 닿았습니다.

단순히 바리사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한탕주의를 생각하고 있는 저를 돌아보게 하시는 말씀같았습니다.

오랜 시간을 두고 말없이 사랑을 머금은 채로 기다림으로 준비하기보다

때를 기다려 나가 기다렸다가 아버지의 실세를 업으려는 저는 아니었는지요.

이방인보다 못한 삶으로 살아가면서

기회를 노리는 저는 아니었는지 반성해 봅니다.

저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실 아버지시건만 부족한 저는

오늘도 한탕의 기회를 노리는 하늘의 독수리가 되어

먹이를 사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아버지!

부족한 저이지만 제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사랑의 말씀에서 지혜를 얻게 하시어

아버지와 하나되게 하소서.

그 사랑의 힘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자유로워지게 하시어

작은 사랑부터 행하며 아버지를 기다리게 하소서.

화해의 손을 내밀고 사랑을 나누면서 겸손한 자세로 아버지를 기다리게 하소서.

오심이 아니라 오실 것에 대한 사랑의 기대와 희망으로

주어진 하루에 최선을 다하며 불을 밝히게 하소서.

언제 어느때 오시든 그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오실 것이기에

밤새 기다리는 어여쁜 저가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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