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리고의 소경(바르티매오)을 치유하시는 예수님

 

예리고의 소경을 치유하시는 예수님

1.말씀읽기: 루카18,35-43

예리코에서 눈먼 이를 고치시다 (마태 20,29-34 ; 마르 10,46-52)



2. 말씀연구

한 소경이 있었습니다. 그의 소원이 있다면 눈을 뜨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고, 하느님께서 아름답게 창조하신 모든 것들을 직접 바라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그런데 어느 날 그 앞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35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의 일이다. 어떤 눈 먼 이가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다가,

 예수님께서는 지금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중에 예리코에 들르십니다. 예루살렘에서는 당신의 수난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리코는 헤로데가 쾌락의 도시로 만든 곳으로서 많은 저택이 즐비하고 극장과 경마장, 그리고 수영장이 있었습니다. 그 환락의 도시 안에 고통 받고 있는 소경이 있었는데 마르코(10,46)에서는 그의 이름을 바르티매오라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36 군중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37 사람들이 그에게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 하고 알려 주자,

눈먼 사람들의 치유. 사실 그 당시의 의료 기술로는 그 사람이 어떻게 해서 눈이 멀었든지 간에 치료라는 것은 기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로 인해 고통을 받은 이들의 운명이라는 것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참혹한 것이었습니다. 평생을 장님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렇게 사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 고통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는 보고 싶었습니다. 하루하루 구걸을 하면서 살아가던 그는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 오천 명을 먹이시고, 모든 병자를 낫게 하시고, 새로운 가르침으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신 다는 그분. 소경은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이시라면 자신의 눈을 뜨게 해 줄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소경이니 예수님을 찾아 나선다는 것은 무리였고, 어쩌면 포기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이 지금 자신의 앞으로 지나가고 계신 것입니다.



38 그가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하느님께서 내리신 기회였습니다. 그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구세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를 조용히 시키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더 큰 소리로 예수님께 자비를 청합니다.



39 앞서 가던 이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호칭은 많은 사람들에게 위험하다고 느끼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로마의 식민지인 이스라엘에 메시아가 나타났다면 로마 군인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지도층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한다는 것을 “율법도 모르는 하찮은 존재들”의 외침이었습니다. 좌우지간 사람들의 귀에는 이 소경의 외침이 귀에 거슬렸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는 소경이었으니.



40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분부하셨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눈 뜬 사람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고 있지 못하지만 보지 못하는 소경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한다는 것입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말씀 안에 등장하는 사람들이고, 이 말씀을 듣고 믿음을 실천하지 못하는 나 자신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부르십니다. 그분은 결코 청하는 사람의 마음을 외면하신 적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끊임없이 청한다면 반드시 들어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계십니다.



41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그가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소경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무엇을 해 주었으면 좋겠느냐고…,”. 바르티매오는 기적을 요구합니다. 본질적인 것을 요구합니다. 먹어서 없어질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어도 도움이 안 되는 그런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는 눈을 뜨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음만 먹으시면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는 그것을 청한 것입니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42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믿음을 보인 소경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즉 그의 믿음대로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청하는 이에게 그 청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 매달리면 나는 내가 청한 모든 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굳은 믿음을 가지고 매달립시다.



43 그가 즉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랐다. 군중도 모두 그것을 보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다.

소경은 굳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믿음대로 되었습니다. 이제 그 소경은 소경이 아닙니다. 그는 너무도 기뻐서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 소경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어야 하겠습니다.

군중도 모두 그것을 보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립니다. 나 또한 나의 굳은 믿음을 통해서 사람들이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내가 그 소경처럼 그렇게 간절하게 예수님께 청하는 것이 있습니까?



② 소경은 예수님을 자신을 치유해 주실 수 있는 분이라고 굳게 믿었고, 그 믿음대로 치유를 받았습니다. 만일 내가 그 소경이였다면, 그래서 내 믿음대로 될 것이라면 나는 과연 치유를 받을 수 있었을까요? 혹시 내 마음 안에는 “설마 예수님이 나를 고치실수 있겠어?”라는 의심이 조금도 없었을까요?

이 글은 카테고리: TN-lectiodominus-C2, 복음 나눔(주일)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예리고의 소경(바르티매오)을 치유하시는 예수님에 1개의 응답

  1. 샘지기 님의 말:

    처음엔 청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이 없이는 청할 수 없음을…
    자신을 위한 청이라 할지라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하지 못함을 알았습니다.
    아무리 미천하게 살지라도 그는 본연의 자기 모습을 사랑하는 이였을 겁니다.
    그러기에 확실한 믿음으로 매달릴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늘 청하고 또 그들을 위해 저를 봉헌하면서 아버지의 마음에서 머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찬미와 감사를 드리면서…
    단, 소경이었을 때의 답답함을 깊이 새기지 않는다면 눈을 뜨고서도 보지 못하는 저가 될 수 있음이겠지요.

    영세를 받고 얼마동안은 늘 의문의 꼬리를 붙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깜깜한 밤에 뒤에서 지켜보고 계시는 아버지를 믿지 못하는 꼬마가 수없이 뒤를 돌아보며 볼일을 보는 그런 모습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젠 믿기에 뒤를 돌아보며 확인하는 수고는 들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랑을 알기에 턱없는 청을 하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도 않지요.
    사랑하는 자식의 마음을 아시기에 제가 무엇을 받고자 하는지도 알고 계신 아버지!
    살아가는데 있어서 제게 가장 필요한 은총을 주시는 아버지시랍니다.
    말하지 않아도 청하지 않아도 주실것이기에 저역시 연연해 하지 않는답니다.
    절실한 것을 가장 적절한 시기에 주실 것이기에….
    그저 저의 작은 사랑을 드릴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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